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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쇠에서 예술이 꽃피는 동네

경계없는 예술이 탄생하는 문래동 철공소 골목

등록|2009.05.20 09:31 수정|2009.05.20 09:31

▲ 모두들 쇠를 다루지만 분야별로 다양한 간판을 가진 업체들이 골목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 김종성


철공·주물·판금·연마·밀링·절단... 크고 작은 쇠를 다루는 현대의 대장간이 분야별로 다양한 간판을 달고 성업 중인 동네가 서울 한가운데 버젓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철공소 골목'이라 불리는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 3가 주변이 그 곳입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문래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나와보니 주변에는 높다란 아파트와 대형마트, 오피스 빌딩이 둘러차 있어서 철공소 골목가 있으리라고는 상상이 안갑니다. 그래서인지 문래동 철공소 골목은 마치 도심 속의 섬 같아 보입니다. 이런 이채로운 느낌은 이 골목도 머지않아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지겠구나 하는 직감으로 연결되기도 하구요.

▲ 칼칼한 쇳가루 내음속에서 능숙하게 쇠를 다루는 철공소 아저씨의 모습이 믿음직스럽습니다. ⓒ 김종성


문래동은 광복 후 문익점의 목화 전래지라는 유래에서 이름 지어졌다니 흥미롭습니다. 이 철공소 골목은 1960년대 급속한 공업화로 영등포 일대에 공장들이 몰리면서 형성되었습니다. 공사용 철근이나 난로의 연통부터 놀이터 미끄럼틀까지 온갖 금속 제품을 만들어내 '철강 메카'라 불리며 8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이곳 터줏대감들은 한결같이 "잘 나갈 땐 전국에서 제품을 실으러 몰려드는 트럭들로 새벽부터 붐볐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90년대부터 서울 바깥으로 공장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아파트와 빌딩이 하나 둘 들어섰고, 지금은 139개만 남아 그 명맥을 잇고 있다고 합니다.

▲ 철공소 직원들에게 점심밥을 나르는 아주머니들이 벽화 예술로 형상화 되었습니다. ⓒ 김종성


쇠를 다루는 다양한 이름의 간판들과 쇠를 가공하는 커다란 기계들이 골목마다 꽉 차게 들어서서 이방인들의 접근을 불허하는 듯 보이는 이곳에 몇 년 전부터 예술가들이 보금자리를 찾아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철강 노동자와 문화 예술가의 동거 기간은 5~6년 되었답니다. 예술인들이 이 골목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아주 현실적이면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입니다.

철공소 골목의 건물 1층에는 철재 가공업체들이 남아 있고 비어 있던 2, 3층은 대학로와 홍대 일대의 비싼 임대료를 못 견뎌 옮겨온 가난한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되었다네요. 문래동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각지에서 예술가들이 짐 싸들고 들어와 지금은 60여 개의 작업실에 150여 명의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삭막하고 황량한 골목 분위기지만 차별도 한계도 없는 예술이 숨은 듯 공존하고 있으니 예술가들의 존재가 고맙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 사장님의 고향이 충청도인 작은 가게와 자판기가 참 귀여워졌습니다. ⓒ 김종성


어찌 보면 아주 이질적으로 보이는 철공소와 예술 공작소의 조합이 상상하기에 따라 현대미술의 느낌과 비슷해 보였는지 예술가들이 철공소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물레 아트 페스티벌', '경계없는 예술 프로젝트@문래동' 등의 예술축제를 매년 열고 있습니다. 올해도 다음 달인 6월 하순경에 축제를 펼칠 예정이라고 합니다.

꼭 예술 축제가 열리지 않더라도 문래동 3가 철공소 골목은 구석구석 구경해볼 만합니다. 쇠를 다루는 분야가 다양해서인지 작업장과 쇠의 모양이 각기 다릅니다. 칼칼한 쇳가루 냄새를 그저 공기처럼 마시며 열심히 일하는 빛바랜 작업복의 아저씨들 모습이 들판의 농부들처럼 믿음직합니다.

▲ 삭막한 철공소 대문이 재미있는 그림 병풍이 되었네요..골목 곳곳에 이런 그림들이 숨어 있답니다. ⓒ 김종성


문래동 철공소 골목은 낮과 밤이 다르니 해가 져도 가지 말고 조금 기다려 보세요. 낮에는 철공소에서 나는 쇳소리로 요란하던 거리가 저녁 6시 이후엔 예술가들의 작업장으로 변합니다. 철공소 골목 여기저기에 예쁜 벽화와 알록달록한 계단이 보이고 식당들도 재미있게 꾸며 놓아서 꽤 넓은 동네를 헤매는 즐거움을 주기도 합니다.

은둔을 즐기며 드러내기 꺼리는 예술가들의 특성상 골목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작업실을 찾아보는 것은 보물찾기처럼 재미있습니다. 동네를 닮은 수더분한 식당들도 동네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어 40년 넘게 국수류만 파는 분식집도 있고 집에서 먹는 것처럼 입에 맞습니다.

▲ 쇳문에 이런 벽화들이 그려져 있어 철공소 골목을 돌아 다니는 재미를 줍니다. ⓒ 김종성


다음 달에 열릴 예정인 '경계 없는 예술프로젝트@문래동'은 일상과 예술의 만남을 추구하는 문화운동이며 다루는 장르의 제한이 없답니다. 홍보 포스터를 보니 한마디로 장르 미상의 예술 축제라고 하네요. 거리극·퍼포먼스·현대무용·사진·영상·음악·설치미술 등은 물론 각각을 합치고 버무린 융합예술까지 표현하고 싶은 주제에 어울리기만 하면 뭐든지 창조하는게 쇠를 가지고 뭐든 만드는 철공소 골목 사람들과 닮아있습니다.

작년에 했던 어떤 공연에서는 1930년대의 유랑극단이 시간 여행을 통해 2008년 문래동 거리에 나타나 현대를 살고 있는 시민들과 만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참여 예술가들이 유랑극단이 돼 무대와 객석의 경계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며서 극을 진행해 시민들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비정기적으로 사진전이나 연극공연, 단편 영화제 등을 열기도 하니 문래동 예술공단 공식 카페에 들어가 보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문래동 철공소 골목이 시대의 변화에 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문래동 예술 공단은 남아서 동네 골목을 지켜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래봅니다.
덧붙이는 글 http://miaf.co.kr 물레 아트페스티벌
http://cafe.naver.com/mullaeartvillage 공식카페
http://cafe.naver.com/casf 경계없는 예술센터

'문래동 경계없는 예술 축제'는 6월달에 영등포 구청 홈페이지에도 소개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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