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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가 '준헌법기관'이자 '무소속 독립기관'인 까닭

[법학 교수 릴레이 기고 ⑤] 인권위의 역할과 헌법적, 법적 지위

등록|2009.05.19 12:04 수정|2009.05.19 12:05
이명박 정부는 국가인권위와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 직제령을 개정해 조직 및 정원을 21% 감축하는 계획을 강행했습니다. <br> <br>인권위는 "입법, 행정, 사법 3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관이라서 '정부 차원의 조직개편'의 대상이 되는 행정부처가 아닐뿐더러 조직 축소는 독립성을 훼손시킨다"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에 인권위는 직제개편을 단행하는 한편,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조직 감축안에 대한 대통령령 효력정지가처분신청과 권한쟁의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바 있습니다. <br> <br>시민단체는 정부의 이번 조치가 인권위가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결정을 내린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촛불 노이로제에 걸린 이명박 정부가 인권위를 길들이기 위한 '힘 빼기' 차원에서 조직을 축소한 것이라는 시각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인권위의 핵심 가치 및 제자리 찾기를 조명하는 법학 교수들의 릴레이 기고를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 행정안전부가 국가인권위원회 조직 21% 축소를 통보한 가운데, '인권위 축소 철회 공동투쟁단' 소속 시민단체 회원과 장애인들이 지난 3월 24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노숙농성 돌입 및 행정안전부 장관 그림자 투쟁 선포식을 열고 있다. ⓒ 권우성


2001년 4월 30일에 야당이 반대표를 던진 가운데 3표 차로 아슬아슬하게 국회를 통과한 법이 있었다. 인권단체들도 실효성 미흡을 이유로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촉구했던 법이었다. 이렇듯 정치권과 시민사회 어느 쪽도 지지와 축복을 보내지 않는 상태에서 국회를 통과한 법이 바로 국가인권위원회법이다.

2001년 11월 25일, 이 법에 근거해 이 땅에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세워진 지 어느덧 약 7년 반의 세월이 흘렀다. 인권위는 우리 사회의 인권보장 요구를 제도적으로 수렴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긍정적 의의를 찾을 수 있는 기구다. 일도 열심히 해서, 설립 이후 올해 3월 31일 현재까지 인권위에 접수된 총 사건 수는 3만8342건에 달하고 이 중 96%인 3만6813건이 처리되었다.

지난 7년 반 동안 인권위는 수없이 많은 결정들을 내렸다. 그중에서 상당수의 결정은 우리 사회에 인권과 관련한 신선한 논쟁들을 불러 일으켰고, 그러한 사회적 공론화의 과정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우리 국민들의 의식구조나 우리 사회 자체에 크고 작은 변화를 이끌어왔다.

인권위, '차별' 시정권고로 한국 사회의 평등감수성 고취

▲ 최초의 양심적병역거부자로 한국사회에 화두를 던진 오태양씨. ⓒ 이종호

특히 인권위의 몇몇 결정들은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보지 않고 인권침해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평등과 관련해 사회 전반의 평등감수성을 고취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권위는 2005년 12월 26일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대체복무제 입법을 국회의장과 국방부장관에게 권고하였다.

우선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헌법 제19조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8조의 양심의 자유의 보호 범위 내에 있음과, 병역의 의무가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한 국민의 필요적 의무임을 확인했고 인권위는 이 양심적 병역거부권과 병역의무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자 당시 양심의 자유가 국가에게 개인의 양심을 고려해 보호할 것을 요구하는 권리일 뿐 양심상의 이유로 법적 의무 이행을 거부하거나 법적 의무를 대신하는 대체복무 제공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아니라고 판시한 헌법재판소 입장과 상반되는 것이라는 반대의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그 후 헌법재판소도 또 다른 양심적 집총거부 사건에서 대체복무법안을 조속히 마련할 것을 국회에 촉구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인권위의 결정이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 관점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있는 것으로 안다. 인권위 권고가 정부 입장과 일치되지 않는 측면이 있음을 지적하는 주장도 크게는 이러한 주장과 닿아있다. 인권위가 작년 촛불시위 진압과 관련해 경찰에 의한 인권 침해문제를 제기한 것이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번에 직제령 개정에 의해 정부에 의한 인권위 축소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실제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야기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인권위가 한국사회의 인권보장 영역을 독점하는 기관인 것은 아니다. 법원과 헌법재판소도 재판을 통한 헌법상의 기본권 보장기능으로 인권보장 영역에 깊이 간여한다. 인권위 설립도 어떻게 보면 보다 확실한 '인권 보장'을 위해 법원과 헌법재판소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에서 추진되었다.

사법부와 인권위, 국민 인권보장 놓고 선의의 경쟁해야

인권보장기관의 역할을 인권옹호자로서의 역할과 심판자로서의 역할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때 법원은 옹호자적 색채, 정책적 색채를 최대한 없앰으로써 기성법질서의 정의를 옹호한다. 하지만 인권위는 반대로 옹호자적 색채, 정책적 색채를 최대한 드러내어 다가올 법질서의 정의를 옹호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인권위와 법원은 서로 다른 관점과 역할을 가지고 '인권 보장'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이중, 삼중의 중첩적 인권보장기관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법부와 인권위는 중첩적 인권보장기관으로서 서로 국민의 인권보장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경쟁기관이어야 바람직한 것이다.

인권위의 결정은 시정권고에서 볼 수 있듯 권고적 효력만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인권위의 결정이 이렇듯 권고적 효력만 가질 때, 그 결정에 이르는 과정의 논리가 교육적 호소력과 도덕적 설득력만 있으면 타당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권고적 효력으로 인해 처분성이 부인되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필요하면 언제든지 법원의 판례에 구애받지 않는 전향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인권위 결정에는 지금처럼 계속 권고적 효력만 인정하되 다양하고 전향적인 결정을 통해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리드해 나가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서 국민 인권보장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인권위는 정부의 직제령 개정으로 그 정원의 21%가 감원될 수 있는 기구가 아니다. 인권위는 비록 헌법에 직접 기관의 명칭이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헌법과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으로서 일종의 '준헌법기관'으로 보아야 한다.

인권위는 '준헌법기관'이자 '무소속 독립기관'

▲ 국가인권위원회. ⓒ 김귀현


인권위가 헌법에 의해 설치된 기관이라는 헌법적 근거는 바로 우리 헌법 제10조 제2문이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국가의 기본권 확인 및 보장의무 규정이 그것이다. 이 규정에 근거해 국가는 기본권 확인 및 보장의무를 부담하게 된 것이고, 이러한 기본권 확인 및 보장의무를 선도적으로 수행할 독립기관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탄생한 것이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는 헌법과 국가인권위원회법에 근거해 설치된 '무소속의 독립기관'이다. 국민의 인권 침해는 정작 많은 경우 국가기관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법은 이러한 국가인권위원회를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무소속의 기관으로 만든 것이다.

직제령은 행정부가 발하는 명령의 일종이다. 복지정책의 시행을 위해 많은 입법들이 필요한 현대 복지국가에서 국회가 만드는 법률은 기본적 사항을 정하고 세부적이고 지엽적인 사항은 이를 행정부의 명령에 위임할 수 있다. 그래서 실제로 법률과 함께 많은 명령들이 하루가 멀다고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법률에 의한 명령에의 위임에도 한계가 있다. 즉, 명령이 헌법과 법률에 합치되는 것이기 위해서는 헌법 제75조에 따라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지엽적이고 세부적인 사항만 명령에 위임할 수 있다는 위임입법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에 인권위 축소를 위해 개정된 직제령은 성질상 국가인권위원회법의 위임을 받아 만들어진 명령이므로 모법인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종속된다. 따라서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부여한 인권위의 독립성을 하위규범인 명령이 뒤집었다면 이것은 법률위반으로 위법이 된다. 나아가 크게는 인권위의 헌법적 근거규정인 헌법 제10조 제2문과 위임입법의 한계를 규정한 헌법 제75조에도 배치되어 위헌적인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정부의 직제령 개정을 통한 인권위 축소 시도는 헌법과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인권위에 부여한 인권위의 헌법적 지위나 법적 지위에 배치된다는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인권위의 고유한 역할은 국가기관 내에서 '인권'의 이름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권위는 권력을 가지려 하기보다는 항상 국민들에 대한 배려에 열심이어야 한다. 국민들도 각자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인권위의 생각과 행동을 폄하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태도는 한국사회의 진정한 인권 향상을 발목 잡는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임지봉은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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