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개똥폼' 잡지 말고 광주에서 내려오라
[주장] '광주가 나'라고? 민주화 이후 가장 황당한 말
▲ 이명박 대통령이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국립대한민국관 건립위원들과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석영(소설가), 김종규(박물관협회 명예회장), 이명박 대통령, 김진현 위원장(세계평화포럼 이사장),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 ⓒ 청와대 제공
2007년 2월 5일, 황석영은 <오마이뉴스>에 '개똥폼 잡지 말고 현실의 저잣거리로 내려오라!'라는 글을 기고했다. 다소 선동적인 제목의 이 글에서 황석영은 조정래와 고은의 문학 권위주의를 겨냥하여 "개똥폼 잡지 말라"고 힐난했다.
1) "큰 목소리를 내던 내 동년배의 작가를 지난 위기의 시대 어느 현장에서도, 어느 글귀의 서명란에서도, 심지어는 회비 목록에서조차 본 적이 없다. 우리가 광화문의 빌딩에서 그 바로 위층에 군사정권 당시 제도권의 문협 사무실이 있다는 이유로 김지하와 양성우 시인의 석방과 긴급조치 철폐를 부르짖으며 시위했을 적에, 모두 잡혀가고 계단에 있던 염무웅과 몇몇이 문협 사무실에 몰려 올라갔을 때에 난색을 표하던 사무국장이 누구였던가."
- 황석영의 글 <개똥폼 잡지 말고 현실의 저잣거리로 내려오라!> 중에서
황석영은 윗글 1)에서 조정래를, 2)에서는 고은을 교묘히 비판했다. 조정래는 문협 사무국장을 지낸 적이 있으며, 2)의 글 끝에 있는 '먼 산에는 거짓이 많다'는 고은의 시구를 따서 쓴 것이다. 당시 황석영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명칭에서 '민족'을 빼자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조정래와 고은은 반대 의사를 표명했었다. (* 1)의 주장은 황석영의 착오라는 반론이 있고, 2)의 주장은 고은이 노벨상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점을 비판한 것인데 황석영도 노벨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는 주장이 있다.)
황석영의 작품, 그에 대한 기대
나는 작가 황석영을 높이 평가해 왔다. 그의 소설 <객지>나 <한씨연대기>, 그리고 <장길산> 등은 널리 알려지고 읽힌 작품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의 단편 <삼포 가는 길>을 좋아하며, 특히 거의 안 알려진 작품이지만, 중편 <섬섬옥수>라는 소설을 읽은 감명은 지금도 선명한 물감처럼 남아 있다.
흔히 황석영의 강점을 민중문학적 관점에서 말하고는 한다. 그의 소설은 이 사회의 '소외된 자'와' '뿌리 뽑힌 자', 간단한 말로 '없는 자'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예술가의 강점이 되지 못한다. '없는 자'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은 예술가가 아닌 운동가나 정치가도 얼마든지 가질 수가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석영의 소설에는 확실히 예술적인 '임팩트'가 있었다. 그는 없는 자를 옹호하되, 이광수처럼 그들을 섣불리 동정하거나 시혜하지 않았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있는 자'보다 '없는 자'의 삶이 여실히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없는 자'들은 박력과 인간 정신을 함께 갖추고 있었다. <삼포 가는 길>의 막노동꾼 '영달'과 술집 작부 '백화', 그리고 <섬섬옥수>의 보일러공 '상수'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아울러 황석영은 한국의 '있는 자'들이 얼마나 치사하고 저열한지를 아주 그럴 듯하게 '보여'주었다. 게다가 예술을 떠난 실천적 삶의 면에서도 황석영에게는 (제 깜냥으로) 조정래나 고은을 얕잡아 볼 만한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 들었다.
황석영을 둘러싼 불길한 주장들
▲ 소설가 황석영씨 ⓒ 권우성
그는 20여 년 전에 자기가 쓰지도 않은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수기 소설에 자신의 이름을 달아 베스트셀러로 만든 적이 있다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었다.(이후 <어둠의 자식들>은 원래 작가 이철용의 이름으로 다시 발간되었다.) 또한 1980년 당시 광주를 증언했다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도 그가 쓴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당시 나는 그가 '광주'를 가지고 장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나는 더 이상 진상을 알아보지 않았다. 왜냐 하면 좋은 작가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2007년 2월 8일, 황석영의 '개똥폼 잡지 말고 현실의 저잣거리로 내려오라!'를 보고, 황씨의 말을 직접 들었다는 후배 시인 이승철(당시 민족문학작가협회 이사)이 <오마이뉴스>에 아래와 같은 반박글을 기고했다.
나는 진보진영의 대표적 작가로 일컬어지는 황씨가 보수언론사 대표들을 만났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황씨가 몇년 전 '동인문학상' 문제를 둘러싸고 <조선> 보도 태도에 반기를 든 칼럼을 써서 '안티조선' 작가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후 그가 <조선>과 화해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명망높은 작가라고 해도 조중동 3개 언론사 사주를 잇따라 회동했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무슨 일로 만났는지 묻자 황씨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중앙일보> 사주를 만났고, 얼마 전 <조선> <동아> 사주도 만났지. 한국문학의 발전, 아니 세계문학의 부흥을 위해 큰 그림을 한번 그려보라고 권유했지. 예컨대 노벨문학상 상금이 현재 100만달러인데, 당신들이 나서서 300만 달러의 상금을 주면 세계 최고의 문학상을 만들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래서 프랑스의 르 끌레지오 같은 작가를 제1회 수상자로 하고, 나를 2회 수상자로 한다면 노벨문학상에 필적하는 세계 최고의 문학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냐고 권했지. 그러면서 나는 <조선> 사주에게 내가 이름 팔 일이 생기면 이제 글을 써주겠다고 했어."
'안티조선' 작가로 세간에 알려진 황씨가 <조선>에 자청해서 기고문을 쓰겠다는 말에 나는 귀가 번쩍 열렸다. 그렇다면 작가로서의 그의 용기에 박수를 친 사람들에게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 이승철 시인의 "작가 황석영은 진실의 광장으로 나와라!" 중에서
나는 이런 말이 사실이 아니기를 정녕 바랐다.
'광주가 나'라고? 민주화 이후 가장 황당한 말
최근 그는 이명박 대통령을 수행해 카자흐스탄에 갔다 왔다. 그는 이 대통령이 중도 실용주의자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냉전으로 인한 남북 대치 국면의 '중도'와 지금 보수 정당 체제의 '중도'를 혼동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여전히 '아까운 작가' 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파문이 확산되자 <한겨레> 지면을 이용해 자기변명을 시도했다. 그런데 긴 인터뷰 기사에서 내 눈에 띈 것은 단 두 가지뿐이었다. 그는 14일 귀국한 날 걱정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다고 했고, 자기 부인의 말을 빌려 세상일에 모두 간섭하고 다니는 자기를 은근히 변명했다.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한 비판을 여전히 유보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는 과거에 매력 있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7일 운전 도중 MBC 라디오를 듣다가 나는 깊이 놀라고 말았다.
"내가 광주 중심에서 뼈를 깎은, 그걸 다 겪은 사람이다. 광주가 나고, 나의 문학이다."
황석영은 분명히 '광주가 나'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니 '광주가 나'라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망언이었다. 그것은 민주화 이후 내가 들어본 말 중에서 가장 황당한 말이었다. 나는 '짐이 곧 국가'라고 한 프랑스 절대왕정의 군주가 떠올랐다. 광주는 이 나라의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용어이다. 결국 황석영은 '민주화운동이 곧 나'라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이 들렸다.
그러고 보니 다음 날이 바로 5월 18일이었다. 황씨는 '민주화운동'이라는 녹슨 훈장을 이용해먹고 있었다. 그것도 한껏 부풀려서 써먹고 있는 것이었다.
황석영은 18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제가 이명박 정부를 중도실용이라고 한 것은 이 정부가 말 그대로 중도실용을 구현하기를 바라는 강력한 소망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 그의 소설 <장길산>을 읽고 김일성 주석이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동무는 어찌 그리 말재간이 좋소?"
나는 이명박 정부의 특임대사로 내정되었다는 황석영을 성의 있게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단순하고 무식하게 비난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가 일전에 조정래와 고은에게 했던 말을 조금 각색하여 되돌려주기로 했다.
"황석영이여! 개똥폼 잡지 말고 광주에서 내려오라."
덧붙이는 글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전쟁과 사람>을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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