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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아들이 팔극권 사부님께 드린 편지

등록|2009.05.19 10:23 수정|2009.05.19 10:23
서울에서 아들 영대와 함께 이틀을 보냈던 처가 스승의 날 다음날, 아들의 부탁으로 팔극권 사부님께 전할 편지 한 통을 갖고 파주로 왔습니다. 스승의 날에 감사편지를 한 통 전하고 싶었던 영대는 아마 최근 새로 이사하신 스승님 집 주소를 알지 못하지만 스승님께 직접 주소를 알려달라는 전화를 드릴 용기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대신 헤이리로 오는 엄마에게 케이크를 하나 사서 이 편지와 함께 전해달라는 부탁을 했던 것입니다.

▲ 모티프원에서 영대의 편지를 사부님께 전하는 자리에서 이웃들과 함께한 정성운 사부님. ⓒ 이안수


영대는 오래전부터 운동에 큰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축구를 위해 집을 나가면 9시간이상 학교운동장을 뛰어다니다 늦은 귀가를 하곤 해서 엄마에게 지청구를 듣기 일쑤였습니다. 저는 저와는 딴판으로 운동을 좋아하는 영대가 싫지가 않았고, 또한 나무람을 잘 타는 아이이기도 해서 엄마의 꾸지람을 말리는 쪽이었습니다.

영대의 운동에 대한 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축구에 대한 흥미가 한때는 농구로 넘어갔다가 헤이리로 이사 와서는 이곳 시골학교 특별활동의 하나였던 승마에 빠져 휴일이면 아예 인근 승마장에서 말을 돌보면서 말 타기를 즐겼습니다.

▲ 3년전 승마에 빠져지낼 때의 영대 ⓒ 이안수


여러 무술을 섭렵하고 팔극권에 깊은 조예를 가진 정성운 사부님을 만난 것은 그즈음이었습니다. 정성운 사부님과 대면하고 그분의 출중한 무예뿐만 아니라 깊은 심지에 반해 팔극권에 먼저 입문한 사람은 저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잦은 여행과 부정기적인 일상사로 인해 수련이 계속되지 못했고, 저의 짧은 수련을 지켜본 영대가 오히려 큰 흥미를 가졌습니다.

사물의 이치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성숙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것은 자칫 해악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부님은 어른이 아닌 이에게 팔극권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영대의 발원發願을 지켜본 사부님은 '영혼이 맑고 심성이 곱다'는 근거를 바탕으로 팔극권 수련을 허락했습니다.

동물을 유달리 좋아하는 같은 공통점을 더해 사부님과 영대의 사제師弟로서의 관계는 근 2년 동안 계속 깊어져왔습니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한 가문을 통해 비전되어온 팔극권 무술의 특성상 무술을 수련하는 과정에서 옛 선인들의 사람의 도리에 관한 다양한 지침과 해석을 사부님으로부터 전해 받으면서 이즈음 청소년들에게 부족하기 쉬운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가치를 깨달아 가고 있는 모습이 대견했습니다.

정성운사부님은 작년에 영대를 대동하여 팔극권의 발생지인 중국 창저우滄洲 멍춘孟村을 방문하여 팔극권의 가문에 들이고 그 비술을 전했으며, 현존하는 무림의 지존이기도 하신 오련지(吳連枝 우롄즈) 노사님을 뵙게 하여 무술 하는 이의 겸손과 우의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않토록 했습니다.

▲ 오련지노사님께서 영대에게 내려준 무술 수련의 마음가짐에 관한 금언들. 영대는 오련지노사님께서 직접 쓰주신 이런 금언들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습니다. ⓒ 이안수


정성운 사부님은 최근 몇 개월 영대의 무술동작이 점점 현란해져서 겸손이 빠지고 근본에서 멀어지는 듯하다며 영대를 꾸짖었고, 영대는 열심히 한 것이 되레 꾸중의 언턱거리가 된 것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때에 스승의 날을 맞았고 영대는 아마 정성으로 사부님께 편지를 쓴 모양입니다.

처는 영대의 부탁을 완수하기위해 사부님께 전화를 드렸고 어제 저녁 정성운 사부님과 최효수 사모님이 함께 모티프원에 들리셨습니다. 그리고 영대의 편지를 함께 보고 대견함과 우려를 함께 나타내었습니다.

"예부터 학문하는 사람은 '묘심猫心'을 닮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고양이의 '호기심Curiostity'이지요. 학문을 탐구하는 사람이 고양이의 왕성한 호기심으로 임하지 않는다면 사물에 대한 그 많은 의문들을 어떻게 풀 수 있겠습니까?

다음은 고양이의 '자존심Self-respect'입니다. 개의 습성과는 달리 고양이는 주인의 명령에도 바로 반응하지 않지요. 자신의 마음이 움직여야 쥐도 잡습니다. 자존의 마음이 없이는 먹은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없습니다.

셋째는 고양이의 '고독solitude'을 향유하는 것입니다. 창틀 위에서 사람들의 분주함에 연연하지 않고 미동하지 않는 고양이의 자태는 여지없이 철학자의 모습입니다. 홀로 사유하는 시간 없이는 수많은 지식이 무용일수 있습니다. 무술도 매 한가지입니다. 영대는 또래에 비해 모자람이 없지만 이 묘심에 초지일관하는 의지를 더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정성운 사부님은 영대의 편지를 잃고 영대에 대해 더욱 욕심내는 말씀을 이었습니다. 무리한 욕심을 내는 모습은 참 흉합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아름다운 욕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스승이 제자에게 욕심을 내는 것입니다. 제자에 대한 무관심은 가르치는 사람의 가장 큰 책무의 해태이기 때문입니다.

▲ 팔극권의 발상지인 중국 멍춘에서의 영대 ⓒ 이안수


아래는 정성운 사부님이 보여주신 영대의 편지입니다.

존경하는 사부님께,

사부님, 작년에도 이렇게 쓴 것 같은데 멍하니 있는 동안 어느덧 1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동안 제 팔극권 실력이 오히려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죄송스럽습니다. 고1이 되어 첫 시험을 치른 후 모든 일에는 쉬운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희 아빠가 하시던 '누워서 떡 먹는 것조차 쉬운 게 아니다'는 말씀도 새삼 깨닫게 되구요. 저에게는 호흡조차도 힘들어서 '울버린'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으니 보통 사람보다 2-3배는 힘들게 모든 것을 행하여야 될 것 같습니다.

헤이리에 가서 많이 해보았지만 집중을 해서 팔극권을 하니 시선과 자세가 많이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모든 일에 신중해지는 제가 되겠습니다.

사부님을 뵌 지가 벌써 2-3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부님 댁에 가서 운동도 배우고 사모님께서 해주신 맛있는 밥을 먹으면서 해주신 수많은 말씀과 덕담을 머릿속에 새겨가며 모든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부님을 만나기 전에는 항상 학교를 다닐 때나 평상시에도 생각 없이 다닌 것 같은데 사부님을 뵙고 팔극권을 접하고 덕담을 들은 후부터는 싸우지도 않고 모든 일에 생각을 해보며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라는 마음으로 항상 다니고 있습니다.

엄마가 항상 저에게 '철이 들고 나면 항상 사부님께 큰절 하거라'하시지만 전 언제나 사부님을 뵈면 큰절하는 마음으로 대하곤 합니다. 엄청난 연습과 노력으로 공부와 운동을 해가며 다음번 사부님을 뵐 때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팔극권이 모든 이에게 알려지기를 기원합니다.

스승의 날을 축복하며
항상 사부님을 존경하는 <성실한 제자> 영대올림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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