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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 한 번에 메아리가 7번, 이스파한의 불가사의

[이란 여행기 27] 이맘 모스크에서 아리랑을 외치다

등록|2009.05.19 10:47 수정|2009.05.19 10:47

▲ 이맘모스크 중앙신전 까만 돌 위에서 '아리랑'을 열정적으로 부르고 있는 작은 애의 모습. ⓒ 김은주


▲ 쉐이크로폴라 모스크의 벽과 천장을 장식한 노란색 모자이크. ⓒ 김은주


외국인이 우리나라로 여행 와서 보는 건 맨 사찰이지 싶습니다. 그런데 외국인은 의아해할 것 같습니다. 도시 스카이를 가득 메우고 있는 건 교회 십자가인데 유명한 관광지는, 불국사나 해인사,  통도사나 송광사 등 사찰이 태반이니까요. 현재의 한국은 기독교국가처럼 보이는데 어째서 유적지는 불교적일까, 하고 의아해하지 싶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과거와 단절된 현재를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란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과거와 현재가 일치했습니다. 지금의 이란은 누구나 인정하는 독실한 시아 이슬람국가인데 우리가 보러 다닌 이란의 과거 또한 이슬람교 사원인 모스크였습니다.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가장 볼 만한 구경거리는 모스크였습니다. 이곳 이스파한의 대표적인 관광코스도 역시 모스크 순례였는데 우린 숙소에서 좀 떨어져있는 자메모스크는 구경하지 못했고, 이란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라는 이맘모스크와 쉐이크로폴라 모스크는 구경했습니다.

먼저 쉐이크 로폴라 모스크에 갔습니다. 쉐이크 로폴라 모스크는 이름이 좀 길고 유별나 보이는데 이 모스크는 특이하게 첨탑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모스크가 일반 대중을 위한 모스크가 아니라 하렘의 왕족 여자들을 위한 모스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정한 대상을 위한 모스크라서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을 외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첨탑이 없는 것이지요.

세이크로폴라 모스크는 지하로 내려가 꼬불꼬불한 복도를 따라 가면 기도실이 나오는데 이 기도실을 장식한 벽과 천장의 복잡한 모자이크를 감상하는 게 쉐이크 로폴라 모스크의 관전 포인트라고 합니다. 또한 격자무늬 창문으로 투과되어 들어오는 햇빛의 음영 또한 빠뜨릴 수 없는 풍경이라고 하네요.

▲ 이맘모스크 내부 ⓒ 김은주


▲ 이맘모스크의 안마당. 아슈라축제 때 설치했던 구조물을 철거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 김은주


다음으로 우리가 찾은 곳은 이맘모스크입니다. 쉐이크 로폴라 모스크가 여자들을 위한 모스크라면 이맘 모스크는 왕의 모스크라고 합니다. 이맘 모스크는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모스크 중 하나라고도 합니다. 역시 명성에 걸맞게 푸른색 타일의 신비한 빛과 거대한 규모가 압도적이었습니다.

이맘모스크에서 엽서나 책자에 나오는 각도에 맞는 사진을 찍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니다가 우리는 중앙신전으로 갔습니다. 거대한 돔이 천장인 이곳에는 한가운데 까만 돌이 있었습니다.

그 까만 돌 위에서 박수를 치거나 발을 굴리면 이스파한 불가사의 중 하나인 7번의 메아리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소리는 큰 모스크의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둥근 돔에 의해 모아져서 메아리치는 것입니다. 이맘 모스크의 하이라이트는 이 까만 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양이가 생선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놀이에 굶주린 우리 집 애들은 이 돌을 보자 갑자기 얼굴에 생기가 돌았습니다. 아이들은 보는 것보다는 몸으로 체험하는 걸 훨씬 좋아하는 편인데 지금까지는 사뭇 구경만 하다가 비로소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걸 찾아내고 또 신기하기까지 하니까 너무 좋아했습니다.

먼저 내가 나서서 손뼉을 쳤습니다. 소리는 '짝짝' 울리며 공중으로 날아올랐습니다. 이번에는 발을 굴러보았습니다. 역시 '쿵쿵쿵' 하고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메아리가 7번 들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동굴에서처럼 소리가 울리고 크게 들리는 건 확실했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동안 작은 애는 나오라고 안달이었습니다. 빨리 자기도 해보고 싶은 것이지요.

▲ 이맘모스크의 푸른 빛이 하늘 색과 잘 어울린다. ⓒ 김은주


▲ 이맘모스크 내부. ⓒ 김은주


그래서 난 손뼉 한 번 치고 발만 굴리고는 작은 애에게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작은 애는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한 번 잡으면 결코 놓지 않는 그 버릇을 여기서도 보였습니다. 아직 언니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손뼉 한 번 치고 발 한 번 굴리고 비켜줘야 하는데 그럴 기미가 안 보였습니다.

까만 돌 위에 서있을 때의 작은 애는 정말 행복해보였습니다. 큰 선물을 얻었을 때의 표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손뼉을 한 번 쳐보더니 그게 시큰둥한지 돌 위에서 발을 세게 굴리며 막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발소리가 더 강하고 크게 들리니까요. 그러다 흥에 겨워 아리랑까지 불렀습니다.

코란을 암송해서 그 신비한 소리를 즐기는 돔이 갑자기 우리 작은 애의 무대로 돌변했습니다. 방송극 무대도 예술의 전당 무대도 이보다 더 좋은 무대는 없을 것입니다. 7번의 메아리를 울려서 소리를 극대화시켜주고 또한 신비하게 만들어주는 이런 무대를 어디서 찾아보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애는 물 만난 물고기마냥 현재의 그 순간을 최대한 즐겼습니다.

어찌나 열심히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는지 얼굴이 발그레한 게 완전히 몰아의 경지에 이른 느낌입니다. 좀체 흥이 없는 나조차도 작은 애의 열정적인 공연을 보고 있으려니 덩달아 흥이 났습니다. 그래서 동영상을 찍기 위해 다시 한 번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2부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작은 애 하나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태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입니다. 그 중 붙임성 있어 봬는 아줌마는 하나가 부른 아리랑을 듣고는 바로 "코리아"라고 했습니다. 모스크 안마당에서 아슈라 행사에 설치했던 구조물을 철거하던 인부들도 공연을 보기 위해 잠시 일손을 멈추었습니다. 이렇게 관객까지 생기니까 하나는 더 신나서 한바탕 놀이판을 벌였습니다. 아마도 그간 쌓인 스트레스나 고생은 그 순간 다 날아갔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밖으로 나왔을 때 모스크 밖에서 있던 사람들까지 생생하게 들었다고 했습니다. 모두들 하나같이 좋아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첫 해외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마친 것 같습니다.

이맘 모스크의 이 까만 돌은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나름대로 노래를 부르고 장기자랑을 하면서 소리를 즐기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도 원 없이 이곳에서 아리랑을 외쳤습니다. 아마도 나중에 이맘 모스크를 생각하면 하나의 아리랑을 먼저 생각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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