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석영 작가가 기내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젊은 시절 황석영의 소설들을 읽으며 감탄도 많이 하고, 부러움 속에서 내 한계에 대한 절망감 때문에 많이 괴로워하기도 했다. 나보다 대여섯 살 많을 뿐이지만, 그는 까마득히 먼, 그저 망연히 우러러보아야 할 작가였다.
그러나 나이 들어가면서 그의 문학에서 쇠락의 기미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인생 연륜에 비해 문학의 중후함이 떨어진다는 느낌이었다. 가치 인식이 보수이기보다는 수구 쪽으로 경도되어 있는 이문열과는 차별화되는 듯이, 자못 대립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고맙긴 하면서도, 왠지 불안한 느낌을 가져왔던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변절 지식인들이 차고 넘치는 현실 속에서 작가 황석영도 무사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끝내는 노추(老醜)의 경지 속으로 편입되고 말 거라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단지 기우이고, 상상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불안한 느낌을 떨치지는 못했다.
결국 내 불안이 현실이 되는 상황이 빚어졌다. 예상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내가 모호함 가운데서도 내밀히 지녀왔던 작가 황석영에 대한 불안이 드디어 그 실상을 드러낸 셈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로 쉽게 얘기하는 것에서 무례와 경망함을 읽는다. 지금까지 자신을 분장해왔음을 실토하면서 본색을 드러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우리만 광주사태가 있는 게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같은 나라들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면서, 영국 대처 정부 시절 광산노조 파업과 시위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한 것을 예로 들었다.
황석영이 광주민중항쟁과 관련하여 영국의 광산노조 파업사태를 예로 든 것은(그는 광산노조 파업이라는 말은 하지 않고 "시위 군중에 발포하여 30, 40명의 사상자가 났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완전히 언어도단이다. 최재천 변호사가 자세히 적시해 놓은 글을 보면, 영국 광산노조 파업과 시위 실태에 대한 황석영의 무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황석영은 그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함부로 광주와 연결시켜 말한 것이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을 가리켜 '중도실용'이라는 말로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보는 이유를 어떤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단지 이명박 대통령과 몇 차례 사담을 나누어본 결과 그런 심증을 얻었다는 식이다.
적어도 영향력 있는 한국의 대표급 작가 중의 한 사람이라면 그런 식으로 어설프게 말을 해서는 안 된다.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저 1970년대와 1980년대로 돌아가고 있는 사회 풍경들이 어떤 성격에서 비롯되고 있는지를, 또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보인 행보들이 어떻게 중도일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도' 성격을 갖는다면, 뉴라이트도 조중동도 모두 중도일 수밖에 없다.
황석영은 "(진보 측으로부터) 욕먹을 각오가 돼 있다"는 말도 했다. '나는 이제 이만큼의 배짱을 갖게 됐으니 욕을 할 테면 해 보라'는 식의 되바라진 말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이제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선언이기도 할 터이다.
그는 진보 쪽만을 의식하고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전체 국민의 가치관을 헤아리는 시야가 필요하다. 그는 '큰 틀'이라는 말로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는데, 오늘 그의 언행은 그대로 변절, 야합, 비굴의 성격을 띤다. 그런 처신이 국민들의 가치관에 어떤 작용을 낳을 것인지도 깊이 생각하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하는 '획기적인' 일을 하면서 자신의 과거와 문학까지 송두리째 부정하는 식의 발언을 했다. 그것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자 귀국과 함께 자신의 발언들에 대한 해명에 나섰다. "작가는 사회적 금기를 깨는 사람"이며 "제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사과한다"는 말도 했다.
그의 블로그에 오른 장문의 해명 글은 너무 장황하고 구차스러운 느낌을 준다. 자신의 언행이 가져올 파장에 대해서는 별로 예상을 하지 못했다는 태도다. 이미 충분히 예상을 한 나머지 "욕먹을 각오가 돼 있다"는 말까지 한 사람치고는 해명이 너무 옹색할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면"이라는 표현에서는 더욱 어처구니없는 심정을 느끼게 한다.
그는 장문의 해명 글에서도 다변가다운 기질을 유감 없이 발휘한다. 그의 '다변'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불안'을 느껴온 사람들이 주변에는 많다. '이명박 중도실용'과 '광주사태'라는 간단한 말로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명료하게 천명해버린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구구한 해명은 평소의 '다변'을 또 한번 확인시킬 뿐 별다른 설득력이나 진실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게도 장문의 해명이 필요한 언행을 왜 그토록 손쉽게 결행(?)해 버렸는지 우습기까지 하다.
'이명박 중도실용' 발언과 관련해서 "이 정부가 중도실용을 구현하기를 바라는 강력한 소망 때문이었다"고 한 말에서는 자신의 비중이나 역할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듯한 낌새를 읽는다.
그의 해명은, 널리 알려진 만큼 사회적 책무도 크기 마련인 비중 있고 영향력 있는 지식인이나 문인의 처신과 언행이 얼마나 중요하며 신중해야 하는가를 다시 한번 반추케 하는 효과만이 있을 것 같다. 그에게서는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은 형국을 볼 수밖에 없다.
황석영은 1990년대 초 방북 문제로 공주에서 4년 동안 수감생활을 할 때 당시 이명박 의원이 두 번이나 면회를 와주었는데도 2007년 대선 때는 손학규 편을 들고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는 길을 막기 위해 애를 쓴 전력이 있다. 그럼에도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가서도 그를 잊지 않고 사람을 보내주니, 크게 감읍했는지도 모른다.
그게 인지상정의 범위 안에서는 이해가 가는 일이기도 하지만, 큰 틀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작은 인지상정 따위는 초극해야 한다. 탁류 같은 현실 속에 몸을 밀어 넣기보다는 초연히 탁류를 굽어보거나 지속적으로 저항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진정한 지성인이요 문인일 수 있다.
작품도 무겁고 향기로우며, 작가의 삶 자체도 무겁고 향기롭다면 금상첨화일 터인데, 그것이 작가 황석영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나 보다. 또 한 사람의 비중 있는 작가가 가벼운 처신으로 세상의 탁류에 부합해 가고자 하는 현실, 또 자신의 언행에 대해 해명이라는 말로 구구하게 변명을 늘어놓는 상황이 슬플 뿐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