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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체감 경기? '가스 귀신'에게 물어봐

안성 가스 배달의 달인들, 새로운 세상을 향해 도전장

등록|2009.05.20 17:53 수정|2009.05.20 17:57
'가스귀신'들이 안성 하고도 산골인 상중리에서 일을 저질렀다. 과연 '가스귀신'들이 어떤 일을 내버렸을까.

"아따, 형님이나 저나 '가신'이 다 돼버렸지유. 그 있잖유. '가스 귀신' 하하하하"

'가신' 중 한 명인 최장선(48)씨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입을 열었다. 어떤 일을 기가 막히게 잘해내는 사람, 눈 감고도 척척 해내는 사람 등을 가리켜 '달인' 또는 '귀신'이라고 한다. 그들이 말한 '가스 귀신', 그런 뜻이다.

동지자타가 공인하는 '가스 귀신'들이다. 왼쪽은 최장선(48세)씨이고, 오른쪽은 김문호(52세)씨 이다. 이들이 뜻을 모아 6월 부터 안성 상중리에 '삼성종합가스'라는 이름으로 가스 집을 오픈한다. 요즘 현장에서 준비가 한창이다. ⓒ 송상호



'가신'들의 활약

그렇다면 그것이 근거 없는 자화자찬에 불과할까.

김문호(52)씨, 가스배달 경력 20년. 최장선(48)씨 가스배달 경력 15년. 동일한 일을 10년 넘게 하면 도가 트기 마련.

가정, 식당, 공장 등에 배달되는 소용량 약 50kg, 대용량 약 100kg. 50kg짜리 가스는 어깨에 둘러메고 고층 아파트도 옥상도 척척 올라간다. 100kg짜리도 힘겹지만, 어떻게든 올라간다.  

약 50kg 되는 가스통을 메고 옥상까지 올라갔는데 가스가 아직 남아 있어서 그 통을 메고 다시 내려와야 하는 경우, 아파트 호수를 착각해서 다른 라인으로 가스통 메고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올라가야 하는 경우 등이 가장 지치는 경우다.

20년 동안 가스 배달하면서 집을 못 찾아서 가스를 배달하지 못한 경우는 거의 없다. 어떻게든 찾아가고야 만다. 단지 시간이 좀 늦어질 뿐. 그래서 모르는 길을 찾아 가는 것은 거의 귀신 수준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모르는 길을 안내해주는 것도 귀신 수준.

간혹 눈이 엄청 많이 오는 날, 교통이 두절돼도 가스가 없어 밥 못 해먹을까봐 어떻게든 가정에 가스를 배달해준다. 그러다가 가스 차가 빠져 '렉카'를 부른 경우도 간혹 있다. 그날은 경제적 수입 차원에서 '마이너스'다. 그래도 한 가정 구원(?)했다는 맘에 뿌듯하다.

'가신'들의 애환

사람들이 가스 시키는 것은 경기의 '바로미터'. 식당이나 공장에선 경기가 좋으면 아무래도 많이 시키지만, 좋지 않으면 적게 시키는 것. 또는 가스 값 떼먹고 사라지는 경우나 가스 값 외상이 밀리는 경우. 그것은 경기가 좋지 않다는 명백한 증거.

애마김문호 씨가 평소 타고 다니는 애마와 함께 포즈를 잡았다. 저 차는 '가신'들을 먹여 살리는 소중한 친구다. ⓒ 송상호





90년대가 가스배달 업계의 최고 전성시대였다. 그 때가 전국에 가스레인지가 확대 보급되던 시절. 요즘과 달리 거의 모두 현금으로 수금하던 시절이었다. 만약 가스 배달하던 사람이 돈을 많이 벌어 성공했다면 바로 이 시기라는 것. 가스배달 하는 상황을 잘 살펴보면 그 시대의 경기상황, 문화, 사람들의 인심 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2000년 들어서면서 차츰 하향세. 경쟁업체도 많아지고, 외상 거래가 많아진 것. 그래서 김문호씨는 2002~2004년 잠시 식당을 운영하는 외도도 해봤다.

"이때까지 떼인 돈(가스 외상값) 다 합치면 몇 천 만 원 되지유. 하지만 나는 저 친구(최장선씨)에 비하면 양반이여 양반. 저 친구는 가스 집 하다가 떼인 돈이 자그마치 2억 5천이라니께. 허허허"

그들이 거래하는 곳 중 중국음식점 등을 포함한 식당과 공장 등이 부도가 나거나 망해서 잠적해버리면 꼼짝없이 밀린 외상값을 못 받게 된다. 때론 종업원(가스 배달)이 수금한 돈을 들고 튀어버린 경우도 있고, 종업원이 갑자기 그만두더니 경쟁 업체로 이적하면서 단골도 야금야금 빼가는 경우도 있다. 역시 사람 다루는 게 제일 애로 사항.

"아, 가스 가져 올 때 담배랑 술도 좀 사오라구"

시골에서 가스배달하면 이런 일이 종종 있다. 어르신들이 가스를 시킬 때 심부름도 함께 시킨다. 시골 마을엔 가게가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고, 김문호씨의 고향인 안성 어르신들이 시키니 기꺼이 들어주는 것도 있다. 도시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 시골에는 종종 있다. 그래서 이들에겐 영업행위가 따로 없다. 신속, 정확, 친절하게 가스만 배달 잘 하면 그게 바로 영업행위다.

'가신'들에겐 또 다른 아픈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위장병이 있다는 것. 고객들이 가스를 쉴 새 없이 주문하고, 빨리 갖다 달라고 재촉하면 끼니 때를 놓치는 것은 다반사고, 빵과 같은 간식으로 식사를 대충 때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제일 황당한 경우는 가스를 시켜 놓고 얼마 되지 않아 늦게 온다고 나무라더니 현장에 도착하면 다른 가스 차와 동시에 도착한다. 알고 보니 조금 늦게 온다고 이중으로 시킨 경우다. 업체끼리 서로 민망하고 화나는 경우다.

'가신'들이 손님들에게 바라는 것은 첫째도 둘째도 "조금만 여유를 가져 달라"는 것. 주문이 밀리거나 사정이 있어 조금 늦어지는 것이지 놀면서 늦게 가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위험물을 실고 다니는 차로서 안전이 제일인 것을 감안해 달라는 이야기다.

현장요즘 새로 오픈하려고 열심히 공사 중이다. 6월이면 시작이다. 공사 진행도, 정리도 모두 '가신'들의 몫이다. 앞으로 기력 있을 동안 열심히 가스통을 모아 배달해야할 본부다. ⓒ 송상호





이들이 이제 또 다시 삶의 승리를 위해 안성 금광면 상중리에 '삼성종합가스'라는 깃발을 내걸고 도전에 나섰다. 6월부터 오픈이다. 가게와 창고 등의 건축과 정리도 고스란히 그들의 몫이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도전하는 '가신'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브라보 유어 라이프"
덧붙이는 글 이 인터뷰는 지난 19일 삼성종합가스(031-675-7300) 공사 현장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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