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산참사 현장 도착제105일차 오체투지 순례 오후 구간인 용산참사 현장을 지날 때 순례단은 분향소 안에 들어가 조문을 하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유족들을 위로하면서 전종훈 신부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지요하
5월 18일(월)의 제105일차 오체투지 순례는 서울의 '이촌 지하차도' 입구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이촌 지하차도와 용산로 용산2가 남영역 사이, 중간 지점에서부터 순례에 참여했다. 그러니까 오후 2시에 재개된 오후 순례에 제대로 온전히 참여한 셈이다.
나는 먼저 용산참사 현장으로 갔다. 이 날도 참사 현장을 지키는 이강서 신부님(서울대교구 빈민사목 담당 겸 장위1동 선교성당 주임)과 여러 자원봉사 형제님들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그곳에 잠바를 맡겼다. 카메라와 휴대폰도 맡겼으니, 온전히 오체투지에만 열중할 수 있을 터였다.
오후 순례의 중간 지점은 '용산참사' 현장이었다. 순례단이 참사 현장에 도착하니 이강서 신부님이 순례단 세 분 성직자를 한 분 한 분 뜨거운 포옹으로 맞았다. 세 분 성직자는 참사 현장의 분향소에 들어가 조문을 하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유족들을 위로하면서 전종훈 신부님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세 분 성직자는 분향소 밖으로 나와 오체투지로 '108배'를 했다.
모든 참가자들이 징 소리에 맞추어 함께 108배를 했다. 무릎 꿇고 절을 올리는 사람들과 오체투지로 예를 올리는 사람들 사이에 허리 굽혀 반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한동안 오체투지로 절을 하다가 자리도 비좁고 너무 힘들어 반배 형식을 취했다. 그것도 108번을 하자니 허리가 아팠다.
▲ 오체투지 108배순례단은 용산참사 현장 분향소 앞에서 108배를 했다. 108배는 세 구간 오체투지에 해당하는 수였다. ⓒ 지요하
천주교 신자들 중에는 내 글에 대해 오체투지가 불교 수행법이라며, 천주교 신자로서 불교 식을 따르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108배도 예불 방법이라며 비난을 할 것이다. 그들의 속내는 오체투지 순례의 이유와 목적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임이 뻔하다. 불교 식을 따른다는 비난은 그저 핑계일 뿐이다. 그들은 '차라리 십자가를 지고 가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만약 그런 고행을 택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이런저런 말로 비난을 할 것이다.
오체투지는 가장 낮은 자세이다. 온몸으로 하는 기도이다. 가장 겸손한 자세를 무수히 반복하며 나아가는 고행 속에서 참회와 속죄, 그리고 참된 기원이 절절히 발현한다. 그것이 설령 불교의 수행 방법이라 하더라도, 그것 역시 하느님 안에 존재하는 행위이다. 인간이 절대자 앞에 지속적으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경천(敬天) 행위이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신 지혜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것에 굳이 종교적 관점을 결부시킨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안타까워하신 '율법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느님은 종교를 구분하는 인간들의 낮은 사고범위 안에 계시지 않는다. 천주교 신자인 우리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하느님께 바치는 오체투지 기도를, 인간들의 종교적 관점을 결부시켜 하느님께서 거부하실 리 만무하다.
▲ 유족들의 순례 참여오체투지 순례단이 용산 땅을 지날 때는 용산참사 희생자 유족들도 순례에 참여했다. ⓒ 지요하
용산참사 현장에서 108배를 마친 순례단은 휴식도 없이 다시 오체투지 순례를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2Km 가량 나아간 용산2가 국민연금공단 건물 맞은편 남영역 부근에서 105일차 순례를 종료했다. '오늘 한 생명을 지키지 못한다면, 내일 또 다른 생명 역시 지킬 수 없습니다'라는 오늘 순례의 기도 지향을 참가자 모두 가슴에 되새기며….
70여 분의 사제와 함께 한 좁은 골목의 거창한 미사
용산참사 현상으로 걸어서 되돌아온 시각은 5시 20분쯤이었다. 손부터 씻고 나서 국수 대접을 받았다. 맡겼던 잠바를 찾아서 입고, 미사 준비를 돕기도 하며, 미사 시간을 기다렸다. '광주 민중항쟁 기념 및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미사'였다.
▲ 골목 안의 거창한 미사용산참사 현장 골목 안에서 거행된 '5.18민중항쟁 29돌 기념 및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미사'에는 70여 분의 사제들이 참석했다. ⓒ 지요하
7시쯤 사제 일부가 분향실 안으로 들어가 연도의 일부분을 마치고 제대 앞으로 나오자 입당 성가 '새로운 계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70여 명 사제들의 입장이 시작되었다. 사제 10여 분 정도만 제대 주위로 가 서고, 60여 명 사제들은 제대 앞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영정을 든 유족들의 뒤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60여 명 사제들이 제의를 입은 채 땅바닥에 앉아서 미사를 지내는 것은 나로서는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 땅에 앉은 사제들많은 사제들이 제의를 입은 채 땅바닥에 앉아 미사를 지내야 했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 지요하
미사는 서울교구 나승구 신부님의 사회와 청주교구 김인국 신부님의 주례로 진행되었다. 주례 사제 양옆에는 오체투지 순례 중인 문규현 신부님과 매일 같이 용산미사를 집전하시는 문정현 신부님과 이강서 신부님, 그리고 서울교구의 안충석 신부님 등이 자리했다.
제1독서로는 고 김남주 시인의 시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마라'의 일부가 여성 봉사자에 의해 낭송되었고, 화답송으로는 '민중의 아버지'라는 노래가 불려졌다. 제2독서로는 송경동 시인이 자신의 시 '너를 죽이고 가마'의 일부를 낭송해서 비장하고도 숙연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루카 복음 9장 23-26절의 말씀이 봉독된 데 이어 서울교구 일원동성당 주임 안충석 신부님이 강론을 했다. 독일 나치스 정권 때 여러 명 유대인들의 목숨을 구한 독일인 교수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인간의 양심과 선한 마음에 대해서 감동적인 말씀을 들려 주셨다. 인간의 양심과 선한 마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말하면서, 인간의 양심과 선한 마음이 조금만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결코 용산참사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외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로 또 한차례 박수를 받았다.
▲ 감동적인 미사 강론서울교구 일원동성당 안충석 신부님이 감동적인 강론으로 신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 지요하
봉헌 노래로는 '아침이슬'이 불려졌고, '평화의 인사' 시간에는 문정현 문규현 신부님이 제대 앞의 여러 신부님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 성체 성가로는 '민들레처럼'이 불려졌다. 영성체 후 기도 다음에는 문화행사가 진행되었다. '미사 속의 문화행사'는 짧은 시간 속에서도 다채롭고 풍성했다. 매주 월요일마다 용산참사 현장에서 음악을 선사하는 부부가수 김정은과 엄광현이 이날은 '오월의 노래' 원곡을 연주했다. 프랑스 가수 미셸 폴라레프(Michel Polnareff)가 부른 '누가 이 할머니를 죽였나?(Qui a tue grand maman)'였다.
이어서 충북 단양에서 올라온 '예수살이공동체'의 김강산 어린이가 기타를 치면서 용산참사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위로하는 노래를 세 곡이나 불러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 어린이의 노래이날 '미사 중의 문화행사'에는 충북 단양에서 온 이강산 어린이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세 곡이나 불러 갈채를 받았다. 오늘의 용산참사와 용산미사를 오래오래 기억하는 세대로 자라날 것이다. ⓒ 지요하
이날 미사에도 유가족 발언 시간이 마련되어 고 이상림 열사의 부인이자 구속된 이충연 위원장의 어머니인 전재숙씨가 유족들을 대표하여 발언을 했는데, "이렇게 많은 신부님들이 관심을 갖고 도와주시니 더욱 큰 용기를 갖고 하느님께 의지하여 물러서지 않고 불의와 맞서 싸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면서, 검찰이 공개하지 않고 있는 조사기록 3천 페이지를 내놓아야 올바른 재판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2009년 아시아주교회의연합(FABC) 총회 준비 국제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가 이날 미사에 참석한 인도의 데스몬드 신부(Fr. Desmond de Sousa)는 "하느님은 늘 가난하고 억울하고 핍박받는 사람들 속에 계신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이미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고 있는 여러분은 곧 하느님의 크신 위로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데스몬드 신부는 FABC-OHD(아시아주교회의연합 인류발전위원회)의 총무를 지냈고, 현재 고아 국내/이주 노동자 포럼(Goa Domestic & Migrant Workers Forum)의 지역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다고 했다.
▲ 인도에서 오신 신부님 '2009년 아시아주교회의연합(FABC) 총회 준비 국제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가 이날 미사에 참석한 인도의 데스몬드 신부는 오늘의 용산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는 말로 인사를 했다. ⓒ 지요하
이강서 신부님은 자신을 '남일동성당'의 주임 신부로 소개했다. 용산참사 현장은 용산구 남일동에 속해 있는데, 남일동에는 성당이 없지만 이렇게 매일같이 남일동에서 미사가 열리니 남일동본당이 존재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 신부님은 문정현 신부님을 남일동성당 보좌신부로 소개하여 더욱 웃음을 샀다.
이강서 신부님은 마무리 인사말을 하면서 "역사의 유물로만 남은 줄 알았던 5·18광주민중항쟁이 30년 후인 오늘 용산참사를 통해 부활하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30년 전의 군사독재와 오늘의 재벌독재가 마주치는 현상을 느낀다"는 말도 했다. "5·18민중항쟁이 국가 기념일이 되고 명예회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 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고 목숨을 잃어서이기보다도, 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80년 5월의 광주를 기억하고 정의를 추구하는 뜨거운 마음을 가졌기에 가능했다"면서 "2009년의 용산참사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정의로운 마음을 지닐 때 올바른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미사에 함께 하시는 신부님들이 워낙 많아 일일이 소개하지 못하는 대신 교구 소개와 수도회 소개를 해주었는데, 서울교구, 청주교구, 의정부교구, 안동교구, 원주교구, 광주교구, 부산교구, 마산교구, 전주교구, 수원교구, 인천교구와 예수회, 골롬바노회, 메리놀회 등이었다.
▲ 골목 안을 가득 메운 신자들옆 골목들에도 신자들이 많아 제대를 보지 못하는 가운데 미사를 지낸 이들도 많았다. ⓒ 지요하
이날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은 천 명이 넘어 보였다. 일부 인터넷 매체에서는 500여 명이라고 했는데, 제대 앞 땅바닥에 앉으신 사제들의 수를 헤아려본 다음 눈대중으로 골목 안에 꽉 들어찬 신자들을 보니 천 명은 넘을 것으로 보였다.
문정현 신부님의 인사말을 끝으로, 제대 주위의 사제들이 함께 '축복기도'를 했다. 그리고 '파견 노래'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려졌다. 사제들과 신자들 모두 큰 소리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두 시간 넘게 진행된 미사를 기쁘고 뜨거운 마음으로 마칠 수 있었다.
용산참사 현장 골목을 가득 메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가 된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 영정을 든 유족들이 날의 미사에도 용산참사 희생자 유족들은 지아비의 영정을 품에 안고 미사에 참례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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