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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동해남부선 추억을 어디서 찾을까

복선전철화, 유네스코 유적 위해 철로 이설 중... 정든 역도 사라져

등록|2009.05.21 14:50 수정|2009.05.21 14:50

▲ 동해남부선을 달리는 통일호 열차. 지금은 없어졌다 ⓒ 이용우


동해남부선을 타보셨는가. 덜컹거리는 기차의 창 밖에는 부서지는 하얀 포말과 기암절벽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게 하지 않던가.

특히 해운대-송정 구간은 우리나라 동해안 기차 풍경 순위 1~2위를 다툴 만큼 아름답다. 1~2위를 같이 다투는 곳은 영동선 동해-강릉 구간. 이 두 곳은 우리나라에서 기차를 타고 가면서 바다가 한동안 제대로 보이는 가장 아름다운 철길이다.

동해남부선이 더욱 정다운 건, 시골 할머니들이 직접 기른 농작물을 도시나 장에 내다 팔기 위해 보따리를 들고 이용한 운송수단이라는 점이다.

동해남부선은 원래 부산진역을 출발해 해운대-기장-좌천-울산-경주-안강을 거치면서 포항으로 이어지는 145.8km의 단선철도다. 하지만 출발지 부산진역은 기능을 상실하고 현재 부전역이 시발지가 됐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풍광을 앞으로는 볼 수 없게 됐다. 2015년 개통을 목표로 부전-울산간 복선 전철화가 진행중이고, 울산-경주 구간도 철로 이설과 역 이전이 진행중이기 때문.

우선 해운대-송정구간은 장산을 관통하는 터널로 이설돼 철로가 완공되는 2015년부터는 이제 그 절경을 볼 수가 없다.

▲ 해운대-송정구간을 달리는 열차 ⓒ 카페 철도동우회


울산-경주간 구간도 그 정다운 모습이 확 바뀌게 된다. 한국철도공사와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2조500여억원을 투입해 동해남부선 울산-포항 간 단선 73.2 ㎞를 이설하는 복선전철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때문에 기존 동해남부선의 모화, 죽동, 불국사, 동방, 나원, 경주, 사방, 양동, 청령, 부조 등 10개 역은 폐지되고, 입실과 부조, 나원, 안강역은 이전된다.

신라 천년 도읍지답게 신라건축양식을 잘 갖추고 있는 경주역 증기기관차 급수탑과 불국사역, 입실역, 모화역은 물론 철로를 따라 늘어선 유서 깊은 철도 관련 건축물도 모두 사라지게 된다.

동해남부선의 복선전철사업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역사지구를 효과적으로 보전하기 위해 경주시내 중심지를 관통하고 있는 현재의 철로 이설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철도공사의 설명이다.

장년층 "아직도 동해남부선 눈에 선해"

동해남부선은 특히나, 배고픈 시절을 살았던 50대 이상의 장년층에게는 애환이 깃든 추억으로 오랫동안 남아 있다.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가 고향인 이영우씨의 말을 빌어보자. 그는 지난 1950년대 동해남부선을 타고 통학했다고 한다. 그는 "동해남부선은 한때 통학생들과 울산, 경주 등지의 번개시장에 농산물을 수송하던 유일한 철로였다"면서 "연도에 흩어져 살던 순하디 순한 무지렁이들의 삶과 애환이 담겨 있던 길이기도 하다"고 회상했다.

그는 경주 외곽 외동중학교에 다녔는 데, 경주 괘릉리, 신계리, 불국사 앞 진현동 등지에 살던 학우들과 읍내로 통학하기 위해 입실역에서 수시로  '도둑 차'를 타곤 했었단다.

한 학생은 표 검사를 받지 않기 위해 기차가 달리던 도중에 뛰어내렸는 데, 한 날은 뛰어 내리는 시기를 놓쳐 낭떠러지나 마찬가지인 언덕에 굴러 다치기도 했다고 한다. 또 한 학생은 무서워서 뛰어 내리지 못하고 불국사역까지 그냥 실려 갔다가 역무원에게 잡혀 곤욕을 치르기도 했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이 동해남부선은 그 자체가 고향과 추억으로 각인되어 있다"며 "지금도 새벽에 잠이 깨면 그 시절 동해남부선 '웽고개'를 힘겹게 기어오르며 내뱉던 증기기관차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곤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날마다 입실역 측백나무 울타리를 뚫고 들어가 불국사역까지 도둑차를 타던 외동중학교 시절의 아리디 아린 추억이 사라져 간다"며 "수많은 경주인들과 외동인들의 애환과 추억을 담아 온 또 하나의 고향 동해남부선이 그립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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