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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찌개는 죽을 때까지 끓일 거예요"

[맛집소개] 50년 전통 된장찌개 군산 '영화식당'

등록|2009.05.22 11:28 수정|2009.05.22 11:28


▲ 군산 월명공원과 마주하고 있는 수덕산에서 여성회관 쪽으로 내려오면 만나는 첫 번째 사거리. 비교적 한적한데요. 영화식당과 월명동사무소가 마주하고 있습니다. ⓒ 조종안




봄이면 벚꽃이 장관을 이루는 군산 월명공원 동쪽 숲에서 여성회관 방향으로 내려오면 인적이 드문 사거리가 나오고, 월명동사무소가 입주해있는 누런 타일 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월명동사무소를 등지고 금강이 흐르는 부둣가를 바라보면, 붉은 벽돌로 지은 작고 아담한 건물에 '영화식당'이라고 적힌 간판이 걸려 있는데,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된장찌개 백반' 전문 식당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테이블이 5-6개 있고, 작달막한 키에 깔끔하게 차려입은 아주머니가 "어서 오세요!"라며 반깁니다. 충청도 억양에 서울 말씨를 쓰는 아주머니는 칠순 할머니인데요. 노화방지와 피부미용에 좋다는 된장찌개를 오랫동안 드셔서인지 말씨뿐 아니라 피부도 곱습니다. 

영화식당 된장찌개 백반은 깔끔하고 간단하게 차려나오는데요. 벽에 걸린 메뉴판도 반찬만큼이나 간결합니다. 음료수나 술 종류는 보이지 않고, 된장·김치찌개 5천 원, 동태찌개 6천5백 원, 이렇게 3가지 메뉴와 가격만 적혀 있거든요.

▲ 40년 전부터 단골이었다는 두 부부는 맛은 물론, 소화가 잘되고 뒷맛이 좋아 자주 찾는다고 하더군요. ⓒ 조종안





마침, 연세가 지긋하게 보이는 두 부부가 식사를 하고 있기에 "이곳에 자주 오시나요?"하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안사람이 저녁밥하기 싫다고 할 때는 저 친구하고 된장 먹으러 옵니다."라며 부인을 쳐다보았습니다. 80이 넘었으면서도 차를 몰고 김제로 출퇴근한다는 손님은 40년 단골이라고 하더군요.  

음식이자 보약인 된장찌개

된장찌개는 육수에 된장을 풀고 육류나 어패류, 호박 두부, 버섯 등 각종 채소를 넣고 끓인 찌개로 우리의 전통음식입니다. 멸치 몇 마리만 넣고 끓여도 잘 익은 김치만 있으면 밥 한 그릇을 뚝딱으로 해치우는 게 된장찌개이지요.

▲ 보기만 해도 구수한 된장찌개, 펄펄 끓는 된장찌개에 뜨거운 밥을 말아 먹고 나면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지요. ⓒ 조종안




된장찌개에 육류와 해산물을 함께 넣으면 맛이 떨어진다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영화식당 된장찌개는 쇠고기와 오징어가 함께 들어간 게 특징입니다. 고소한 쇠고기와 시원한 맛을 내는 오징어는 찰떡궁합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오묘한 맛을 더해줍니다.  

반찬은 철따라 바뀌어 나오는데요. 무말랭이 고춧잎 무침은 어머니 손맛을 떠올리게 합니다. 꼬들꼬들한 느낌과 개운한 맛이 환상적이거든요. 고춧잎을 넣고 무친 이유를 물었더니, 무말랭이와는 실과 바늘 사이라며 예전부터 음식궁합이 으뜸으로 소문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맛깔스럽게 차려나오는 밑반찬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돌솥에서 팔팔 끓는 된장찌개를 먹고 나면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무더운 여름밤에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것처럼 입안이 개운하고 시원합니다.

끓는 물에 살짝 데친 양배추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양념간장에 찍어 먹으면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입니다.

퍼주기 인심과 부둣가 식당답게 된장찌개 하나를 시켜도 작지만 고소한 참조기 한 마리가 꼭 따라나오는데요. 주문할 때 양을 많게 해달라고 하거나 밥을 더 달라고 해도 싫어하는 기색 없이 퍼줍니다. 

예전에는 메주를 진안·장수 농민들에게 부탁해서 국산 콩으로 담갔는데, 수입 콩이 들어오고 농촌 일손이 달리면서 콩을 심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스님들에게 부탁해서 100% 국내산 콩으로 된장을 담근다고 하더군요.

된장은 비린내를 없애고 여러 냄새를 흡착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아귀탕이나 복어탕 등에 된장을 푸는 이유도 비린내와 독성을 없애고 전통 맛에 길들여진 우리 입맛을 살리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영화식당 된장찌개 모태는 삼승식당

직장인들과 나이가 든 어른들이 주 단골인 영화식당 된장찌개 모태는 지금은 사라진 개복동에 있던 삼승식당이 되겠습니다. 영화식당 주인아주머니가 삼승식당 큰 며느리가 되어 시아버지(백 사장)에게 요리법을 전수받았거든요. 
함경도 청진에서 식당을 운영할 때 기차에서 파는 도시락을 납품할 정도로 요리솜씨를 인정받았던 백 사장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남으로 내려와 군산 개복동에 한식, 양식, 일식을 겸하는 삼승식당을 개업합니다.

백 사장은 가게가 한창 번성하던 50년대 후반에 '된장찌개 백반'을 개발해서 손님들에게 인정받고 공식메뉴에 올렸다고 하는데요. 특히 일식과 양식에 매료되어있던 단골들에게 갈채를 받았다고 합니다. 

'외식'이라고 하면 갈비탕이나 곰탕 등 비싼 음식을 사먹는 것으로 알았던 시절에 일식과 양식이 주 메뉴였던 식당에서 '된장찌개 백반'을 선보이다니, 획기적인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백 사장의 전통음식 사랑과 용기가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영화식당 아주머니는, 일본에서 출판된 음식에 관한 월간지가 매달 식당으로 배달되는 걸 보고 놀랐다고 하는데요. 백 사장은 일본 음식점 주인들과 음식관련 도서출판사 임원들이 찾아와 토론도 하고 의견을 나눌 정도로 음식에 관심이 많았고, 식당운영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도 대단했다고 합니다. 

서울 새댁 된장찌개 끓이는 법을 배우다

앵두나무 우물가에서 빨래하던 처녀들도, 사랑방에서 새끼 꼬던 총각들도, 너도나도 서울로 올라가던 시절인 45년 전에 영화식당 아주머니는 서울에서 시골로 시집을 옵니다. 당시 명성을 떨치던 군산 개복동 '삼승식당' 큰며느리가 된 것이지요.  

삼승식당 큰며느리가 된 아주머니는 시아버지에게 음식 조리법을 하나씩 배우게 되었고, 시아버지에 이어 남편까지 일찍 세상을 뜨자 '된장찌개백반'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을 영화동에 개업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단골손님도 적잖은 것 같은데 시내 중심가에 개업하면 좋겠네요."라고 했더니 웃으며 "이 나이에 무슨 큰돈을 벌고. 좋은 꼴을 보겠다고 식당을 늘리겠어요. 대신 잊지 않고 찾아주는 손님들을 위해서라도 된장찌개는 죽을 때까지 끓일 거예요."라며 옛날을 회상했습니다.

"서울에서 시집오던 날 주방하고 가게를 보고 놀랐어요. 주방에 들어가니까 가운데에 냉면 빼는 기계와 가마솥이 있고, 그 옆으로 나란히 있는 7-8개의 32구공탄 화덕에서 불꽃들이 올라오는 걸 보니까 얼마나 겁이 나던지···."

"거기에다 손님 받는 방이 1층하고 2층 합해서 20개가 넘는 것을 보고 또 놀랐어요. 그래도 신혼여행 다녀오던 날부터 시아버지에게 음식 만드는 법을 하나씩 배워나갔습니다. 주방장도 한식, 일식, 양식 세 명이 있었어요."

"양식이 한참 유명했을 때였어요. 돈가스를 시키면 스프가 먼저 나오잖아요. 그런데 스프만 먹고 나가버리는 손님이 종종 있어 마음이 안타까웠어요. 붙잡을 틈도 주지 않고 쏜살같이 나가버렸습니다. 굉장한 것으로 알고 시켰는데, 밀가루 죽 같은 것이 나오니까, 화가 나서 말도 못하고 나가버렸던 것 같아요. 아니면 다 먹은 것으로 알고 나갔던가." 

"그렇게 하고 나간 손님들은 거의가 다시 오지 않거든요. 손님이 남기고 나간 돈가스는 주방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이 '오늘은 재수가 좋은 날이다!'라며 맛있게 먹었어요. 이제는 다 옛날이야기죠. 뭘···."

예술문화가 다른 도시에 비해 일찍 정착한 군산의 모더니스트들은 상승식당으로 돈가스와 비프스틱을 먹으러 다녔고,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사업가와 관공서 임원들은 오뎅(꼬치백반)에다 백화수복(청주)을 즐겨 마셨는데요. 돈부리(장어덮밥) 맛이 그만이라는 소문을 듣고 침만 삼키다가 3년 만에 사먹으며 행복해했던 그때가 새롭습니다.

이제는 삼승식당 백 사장도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문을 닫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된장찌개 백반'만큼은 큰 며느리인 영화식당 아주머니가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해독·해열 작용과 항암효과가 탁월하다는 된장찌개의 깊고 오묘한 맛을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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