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불이익 없다면 '성착취' 폭로 봇물 터질 것"

[현장] 여성연예인 인권지원 서포터즈 '침묵을 깨는 아름다운 사람들' 발족

등록|2009.05.22 14:33 수정|2009.05.22 14:33

▲ 22일 오전 11시 30분,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앞에서 열린 여성연예인 인권지원 서포터즈 '침묵을 깨는 아름다운 사람들' 발족식에서 참가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권박효원


▲ ⓒ 권박효원


"장자연씨가 살아있다면 어땠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지금처럼 분노하고 그를 지지했을까요? 아마도 '뭘 잘했길래 (성접대를) 공개하냐'는 악의적 댓글이 이어졌을 테고, 장자연씨는 죽음과 같은 고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22일 오전 10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성착취 침묵의 카르텔 어떻게 깰 것인가' 토론회 참석자들은 일반 대중들에게 고 장자연씨 죽음의 책임을 물었다. 성접대 의혹에 연루된 연예제작사나 사회 권력층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침묵을 깨는 아름다운 사람들' 발족... 여성연예인 인권 보호

이날 인권단체들은 이같은 내용의 토론회를 열고 여성연예인 인권지원 서포터즈 '침묵을 깨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발족했다.

서포터즈에는 고 장자연씨 사건에 대응하는 것은 물론, 이후 성착취에 내몰리는 여성연예인들을 위해 '여성연예인 인권 SOS센터'를 만들어 상담과 지원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서포터즈에는 28개 인권·여성·문화단체가 참여했고, 개인 참여도 112명에 이른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공통적으로 여성 연예인들의 섹스·성형 스캔들을 즐기고 관련 기사에 악성댓글을 다는 누리꾼들, 여성연예인들에게 '마르면서 풍만하고 섹시하면서 청순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지적했다.

키라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다이어트에 성공한 개그우먼이 흡입했다고 방송에 못 나오고, 시사프로그램 여성 진행자가 체중이 늘어서 퇴출되는 상황이 고 장자연씨 죽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여성연예인들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 이를 위한 직접 소통의 자리를 시도할 생각인데, 현실적으로 어떻게 가능할지는 고민이 남는다"고 말했다. 기획사에 발이 묶인 데다가 이미지로 먹고사는 연예인들이 성착취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여성연예인들은 이같은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 서포터즈 참여를 고민했지만 결국 동참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학자 오한숙희씨는 "많은 여성연예인들이 발족식에 나가거나 이름이라도 넣을까 고민하면서 어제까지 내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이들을 보호하자는 생각에서 만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이 자리에 나와도 표적이 되지 않는 수준까지 운동을 끌어가야 한다"고 결의를 밝혔다.

▲ 22일 오전 10시 30분,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장자연씨를 죽음으로 내몬 성착취 침묵의 카르텔 어떻게 깰 것인가' 토론회. ⓒ 권박효원


예술인노조 "인권위에 연예인 인권실태조사 의뢰"

▲ 문제갑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 정책위원장 ⓒ 권박효원

문제갑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아래 한예조) 정책위원장은 보다 구체적으로 연예인들의 현실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매해 대중문화 관련 학과와 각종 교육기관, 기획사에서 배출되는 인원까지 포함하면 스타가 되기 위한 경쟁률은 크게는 3만대 1 수준이라고 한다. 한예조 조합원 중 몇몇 스타들은 억대 수입을 올리지만, 전체 69%는 1년에 1천만원도 벌지 못한다. 이같은 경쟁구조 때문에 여성연예인들이 성착취 상황을 폭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문 위원장은 "캐스팅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해줄 수 있는 기관이 있다면 봇물처럼 (성착취)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이같은 생각에서 한예조는 문화관광부와 문화콘텐츠진흥원에 연예인 법률지원센터 설립을 제안했다.

이와 함께 한예조는 연예인 노예계약을 공정거래위원회에 표준약관 제정을 요구했고, 국가인권위에 연예인 인권실태조사를 의뢰했다. 문 위원장은 "실태보고서에는 충격적 내용이 많을 것이다, 아픈 구석을 국민들에게 드러내고 질책도 도움도 받겠다"고 말했다.

한편, 유지나 동국대 영화영상학부 교수는 "한국 여자가수들 노래 잘 못하고 한국 여배우 연기력 모자란다"면서 "성형하고 (성착취로) 불려나가고 실력을 위해 노력할 시간이 없다"면서 "실력으로 승부하도록 여성연예인들의 자긍심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이런 일을 참고서 성공한 뒤 자살한 여배우들도 있지만 장씨와 달리 유서는 남기지 않았다, 장자연씨가 (성착취를 당하고 스타가 되는) 다른 선배들을 봤을 텐데도 성착취를 참지 못한 것은 자긍심이 뛰어난 여성이기 때문이다"이라면서 "제가 보기엔 제2의 나혜석"이라고 고인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장영화 변호사는 "'장자연 리스트'에 연루된 본인들이 무차별적으로 진행하는 명예훼손 소송에 오히려 희망을 건다, 소송하려면 리스트의 진실에 대해 법적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 땅에 떨어진 상황이지만 젊은 판사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으니 조금 더 지켜보자"고 말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