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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은 흉년, 양파는 풍년

<질매섬 농사일기 -1>

등록|2009.05.23 15:34 수정|2009.05.23 15:34
지난해 심은 마늘을 뽑기 위해 고향에 갔습니다. 마늘을 뽑으려고 하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가슴이 막혔습니다.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 모두가 안타까워했습니다. 하지만 마늘을 뽑아야 하고, 양파도 뽑아야 합니다. 사람 살이가 이런가 봅니다.

마늘은 지난해 9월 22일 심었는데 가뭄이 심해 씨알이 작습니다. 다른 동네는 어떤지 몰라도 우리집 양념도 안 될 만큼 마늘 농사는 흉년입니다. 어머니와 내가 마늘 심는 모습을 보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품앗이까지 하면서 심었는데 마음이 무겁습니다.

"마늘이 너무 안 됐다 아이가. 양념이 될지 모리겠다."
"모자라면 사 먹어면 되지요."
"그래도 마늘 농사 짓는 집이 사먹는기 우습다 아이가."
"비가 안 오니 어떻게 할 수가 있나요."

▲ 지난해 가을 동네 아주머니들이 품앗이로 마늘 심는 모습 ⓒ 김동수



▲ 올해 마늘 농사는 별로입니다. ⓒ 김동수



▲ 올해 마늘은 씨알이 작습니다. ⓒ 김동수



마늘은 흉년이지만 양파는 풍년입니다. 씨알이 큽니다. 양파가 값이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를 만큼 가격차가 많이 납니다. 텃밭 한쪽에 심었는데 이놈들이 마늘보다 훨씬 잘 되었습니다. 옆에 있던 마늘이 미안할 정도로 말입니다.

"마늘이 안 되니 양파가 잘 되었다 아이가."
"올해 양파는 많이 먹겠네요."
"하모. 양파 사묵지 마라. 알겄나. 양파가 몸에도 좋다는데 많이 묵어라."


▲ 올해는 양파 농사가 풍년입니다 ⓒ 김동수



▲ 양파 뽑기 ⓒ 김동수




▲ 양파 씨알은 큽니다 ⓒ 김동수



마음이 아파 정리가 잘 되지 않아 동네를 한바퀴 돌았습니다. 옆집에 사는 사촌 형수님이 고추밭에서 김매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든을 앞두고 있고, 골다공증으로 허리를 잘 펴지 못하는데도 일을 하는 모습이 안타깝지만 건강한 모습이라 보기 좋았습니다. 올여름 무덥고 비도 많이 온다고 했는데 고추는 잘 될지 궁금합니다.

▲ 옆집에 사는 사촌 형수님이 고추밭에서 김매기를 하고 있습니다. ⓒ 김동수



우리 동네는 지난해 여름부터 비다운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모내기철 코앞인데 걱정을 많이 했지만 그제 100mm가 넘는 와 모내기 걱정을 들었습니다. 동네 아저씨가 모내기를 준비를 위해 논둑 정리를 한창하고 있습니다. 비가 많이 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 이것이 농부가 살면서 경험하는 이치입니다. 아무리 첨단 농법이 동원되어도 농사는 마지막에 하늘에 맞길 수밖에 없지요.

▲ 동네 아저씨가 모내기를 위해 논을 물을 대고 있습니다. ⓒ 김동수




▲ 메말랐던 논에 많은 비가 내려 모내기 준비가 끝났습니다. ⓒ 김동수


이미 논물을 잡은 곳은 물이 가득합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논에 물을 잘 가두는 것만으로도 홍수 예방과 기온을 조절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농민들이 한 해 동안 벼농사를 아예 짓지 않으면 먹을거리 뿐만 아니라 홍수 조절 능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물론 물 없는 논 때문에 기온도 올라갑니다. 이런 좋은 선물을 사람들은 공장 짓고, 아파트 짓는다고 합니다.

마늘이 잘 되지 않아 마음이 아프지만 비가 와서 모내기도 할 수 있고, 양파가 풍년이라 봄농사는 그럭저럭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욕심 너무 내지 말라고 마늘을 이렇게 만드신 것 같습니다. 주신 것도 감사해야지요. 그리고 '질매섬 농사일기'라고 했는데 질매섬은 우리동네 이름입니다. 올해 질매섬 농사일기를 몇 번이나 쓸지 모르겠지만 가을걷이가 끝나면 넉넉한 마음으로 농사 일기가 마무리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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