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고 노무현! 그를 애도하다

등록|2009.05.23 15:03 수정|2009.05.23 16:45
비통하다! 참흑하다! 하늘이 원망스럽다.
기득이 득세하고 비뚤어진 힘이 창궐하여 사람과 세상을 죽이고 있다.

2400여년 전 아테네 아고라의 한 법정에서 70세 노인이 피고석에 서서 500여 명의 시민을 향하여 완벽한 논리와 화려한 독설을 퍼붓고 있다. 시민 500여 명은 아테네 시민 배심원단으로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결할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들창코의 일흔 노인은 거침없이 자신의 변호를 한다. 이름이 소크라테스인 노인의 죄목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신을 믿지 않는 불경죄요, 하나는 청소년의 정신을 타락시킨다는 것이다.

고소한 사람들은 멜레토스와 리콘과 아니토스, 이들 모두 아테네의 유력한 지도층이었다. 멜레토스는 문학계를, 리콘은 논술계를, 아니토스는 정계를 대표했다. 한마디로 힘을 가진자들이었다. 살아 있는 권력이라고 말한다. 작금의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권력이랄까!

당시의 아테네 청년들은 정계에 입문하기 위해 소피스토로부터 변론술을 배웠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평생 돈을 받고 지식을 가르쳐준 적이 없으며 오직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하지만 그날의 재판은 아니토스에 의해 사주된 배심원들에 의해 예정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아테네의 지도층 인사들은 소크라테스가 눈에 가시였을 것이다. 존경받는 일에만 익숙해있는 사람들, 인생에 진지한 고민이 있을 턱이 없는 사람들에게 지혜를 사랑하는 노인은 정의와 덕성, 지혜에 대해 논의하면서 패배와 상처를 안겨주었고, 지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은 델피의 신탁으로 나온 아테네의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타이틀도 부담스러웠을 게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기득은 그 기득을 유지하기 위해 민중들이 현명해지는 걸 무서워했다.
법정에서 청소년을 타락시킨 것과 신을 부정했다는 죄목에 대해 당당하게 변론하는 소크라테스를 보면서 정계의 거물이었던 아니토스는 철학하는 일만 그만두면 무죄로 하겠다고 말한다.

500여 명의 배심원 앞에서 아니토스는 흥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재판정에 들어서면 모두 유죄를 피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거나 동정을 구하는 데 비해 들창코 노인은 너무나 당당하게 당신들이 나에게 사형을 구형한다고 해도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노회한 정치인 아니토스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타협과 흥정을 얘기하는 것이다.

진실하게 살아온 우리 시대의 진정한 정치인 노무현! 꺼벙이처럼 어리숙하게 보이지만 치밀하고 논리적이며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하려 애쓴 진실한 참사람! 아고라의 법정처럼 짜고치는 고스톱판 속에서 적잖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대권력과 사회기득권자들의 야비하고 집요한 그물망을 피해가지 않았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법정을 나가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했던 갈릴레이와 노무현은 대비된다.

그저 참정치를 하고 싶었을 뿐인 그는 고향에 내려가 작고 소담스런 정치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솥뚜껑에 놀란 어리석은 지도층은 불안하고 초조했을 것이다. 작지만 참하디 참한 한 사람의 힘이, 그리고 그 뜻과 함께하는 시민들의 힘이, 그 올바르고 진보적인 변화가 무서웠을 것이다.

아니토스와 당시의 아테네의 한심한 지도층이 소크라테스를 욕보였듯 노무현 그도 치욕스럽고 낭패스러웠을 것이다. 그에게도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살려주겠노라는 흥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노사모니 뭐니 그런 거 손떼고 인터넷 봉하정치같은 거 안하고 그냥 죽은 듯이 살면 가족들과 수족들을 쇠꼬챙이처럼 엮어놓은 형틀을 풀어주겠노라고 협상을 했을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의 혐의처럼 노무현을 묶고 있는 것들은 무수한 말의 혐의였다.

소크라테는 아니토스에게 매수된 배심원들 앞에서 아니토스의 제안을 단숨에 거절한다.

"아테네인이여! 나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복종하지 않습니다. 신에게 복종합니다.
나는 내 목숨이 붙어있는 한 진리를 사랑할 것이며 여러분에게 충언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아침이면 일어나 광장에 나가서 젊은이들과 이야기하는 오랫동안 내가 해오던 일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보시오 그대들은 위대하고 지혜롭고 씩씩한 나라 아테네의 시민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그렇게 나라를 세웠고 일구웠으며 그런 자랑스런 나라를 우리에게 물려주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정신상태는 어떻습니까? 장사꾼처럼 온통 돈벌이에만 눈이 멀지 않습니까 참된 명예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그리고 고매한 영혼에 대해서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일 아니겠습니까?"

최후의 변론을 하면서 자신을 좋은 말에 붙어 있는, 피를 빠는 등에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좋은 말도 게으르면 소용없는 것이다. 등에가 귀찮게 해야 자주 뛰어 빠르고 훌륭한 말이 되는 것이다.

첫 번째 판결에서 유죄 280표로 유죄를 받는다. 두 번째는 형량을 선고하는 재판이 열린다. 여기서 아니토스는 사형을 주장한다. 죽기 싫으면 추방령을 선택하라는 압박이다.

어쩌랴! 들창코 노인, 지혜의 길을 걷는 현자는 오히려 그런 아니토스를 비웃으며 죽음을 찬미한다. 삶을 구걸하지 않고 철학자답게 죽겠다고 내 배를 째라고 통렬하게 웃는다.

"죽음은 영원한 잠이지, 죽어서 詩人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를 만나 담소를 나눌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탐구한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겠지..... 내 아이들이 속물이 되어 산다면 내가 여러분을 괴롭혔던 것처럼 내 아이들을 꾸짖어 주십시오 이제는 떠날 시간입니다. 나는 죽기 위해 여러분은 살기 위해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아테네의 긴 하루의 해는 저물어 가고 있었다.

크리톤은 어릴 적부터 소크라테스의 친구였고 후원자였다.
크리톤은 간절한 마음으로 사형 하루 전 탈옥을 권유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선택은 추방이나 망명이 아닌 올바른 사유를 통한 훌륭한 아름다운 올바르게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죽지 않으려면 이미 재판정에서 아테네를 버리면 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자신은 철학하는 자유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의 이성이었노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독미나리즙을 한 사발 들이킨 들창코노인은 담담하게 욕정의 덩어리인 몸으로부터 이성적 사유의 날개인 영혼이 자유로워짐을 말한다.
사람은 모름지기 조용히 죽는 것이야 조용히 그리고 의젓하게.....
그의 죽음은 그의 말대로 의젓하고 깨끗하고 평화로웠다.

파격적인 변화에 불평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조금 적게 먹더라도 함께 나눠먹으면서 살자는 그의 말에 남에게 베푼 적이 없는 사람들은 그리고 조금 베풀고 더 많은 명예와 이익을 탐내는 사람들은 화를 냈다. 사회의 여기저기서 불만의 소리가 고조되었지만 변화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테네 시민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주었듯 우리도 그에게 죽음을 주었다.

정치를 하고 싶었고 정치만을 했고 서로 함께 잘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큰 사람을 우리는 잃었다. 이제는 죽은 권력인 그의 수족을 묶고 그의 아내와 자식들과 그의 명예와 그간의 도덕성을 난도질하며 감히 평민 주제에 귀족들을 능멸하고 훈계한 죄를 하루도 빠짐없이 중계했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는 혐의를 가지고 마치 상처난 곳을 파고드는 식인어처럼 매일매일 국민들에게 그의 부도덕함을 공지했다. 매일 달랐고 매일 새로웠지만 식상했고 너무 뻔했다. 그의 죄는 들창코 노인이 철학한 것처럼 정치한 것일 뿐이다.

앞으로는 일반시민들은 정계에 나가서도, 지도력이 있어서도, 현명해도, 지도자들에게 과감한 충언을 해도 안될 것이다. 살아 있는 권력, 그 권력과 함께 춤추는 종교의 수장들, 그리고 절대권력의 마녀사냥이 계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현상의 해석을 맡아야 할 신문은 더 이상 신문(새소식)이기를 포기하고 시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새로운 권력의 태동과 그 진부한 힘을 말이다.

현대판 아니토스는 누구인가? 그는 쾌재를 부르고 있을까!
노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건 사형판결을 한 아테네의 배심원들이었다.
생중계하듯 진행하던 검찰은 눈치 빠르게 죽음 이후에 수사종결을 선언했다.

그의 의젓한 죽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솔직히 내 자신도 크리톤처럼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도망가라고 비열하고 야비한 웃기는 정치놀음에서 살아남아 그냥 숨죽이며 살라고 하고 싶었다. 지켜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울혈이 숨을 막히게 했다.

오늘 우리는 그를 잃었다. 우리가 그를 밀었고 우리가 그를 통곡하게 했다.
왕생극락하시기를 발원한다. 그곳은 최소한 진실되고 소박하고 현명하다라는 이유로 평민이 귀족에게 훈계했다고 괘씸죄를 적용해 사람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힘들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책을 읽을 수도 없다. 삶과 죽음은 하나다. 화장해 달라.
마을주변에 작은비석하나 세워 달라."

그의 마지막 말..............유언이란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통곡한다.
돌아가신 노무현 전대통령 왕생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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