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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00)

― ‘내 삶’, ‘내 생애 마지막 말’, ‘나의 유언’

등록|2009.05.23 17:03 수정|2009.05.23 17:03

- 내 삶, 나의 유언

.. 간혹 이제 내 삶이 다 하고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내 생애 마지막 말, 즉 나의 유언이 된다면 어떤 말을 할까 생각해 본다 ..  《장영희-문학의 숲을 거닐다》(샘터사,2005) 82쪽

 '간혹(間或)'은 '때로'나 '때로는'이나 '때때로'로 다듬습니다. '생애(生涯)'는 '삶'으로 손보고, '즉(卽)'은 '곧'으로 손봅니다. 보기글을 보면 가운데쯤에서는 '마지막 말'이라 하고 끝에서는 '유언(遺言)'이라 합니다. 두 자리 모두 '마지막 말'로 맞추면 한결 낫습니다.

 ┌ 내 마지막 말 (o)
 └ 나의 유언 (x)

 이 글을 쓰신 분은 "내 삶", "내가 하는 말", "내 생애 마지막 말"이라고 죽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나의 유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내 생애 마지막 말"이라 한 다음 곧바로 '즉'이라 하고서 "나의 유언"이라 했으니, "내 마지막 말"과 "나의 유언"은 같은 말인 셈입니다.

 글쓴이는 왜 같은 말을 되풀이했을까요. 아니, 같은 말을 하면서 앞에서는 올바르게 잘 쓰다가 뒤에서는 왜 어이없이 굴러떨어질까요. 스스로 싱그럽게 빚어낸 '마지막 말'을 어이하여 내버리고 '遺言'이라는 낱말을 불러왔을까요.

 ┌ 내 삶 (o)
 └ 나의 생애 (x)

 보기글을 다시금 살피면, 앞쪽은 "내 삶"이라 하고 가운데에서는 "내 생애"라 합니다. 그나마 "나의 생애"라 안 하고 "내 생애"라 해 주었습니다. 이나마 적은 글월은 반갑습니다.

 그런데, "내 삶"이라고만 쓰면 어딘가 모자랐을까요. "내 삶"이라고 적는 글투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을까요. "내 삶"이라고 쓰는 글월과 "내 마지막 말"이라고 쓰는 글월은 문학이 될 수 없는가요.

 ┌ 내 삶 마지막말
 ├ 나 사는 동안 남길 마지막말
 ├ 내 삶에 남기는 마지막말
 ├ 나 살다 남길 마지막말
 └ …

 문득문득, '마지막 말'처럼 띄어서 써야 할 까닭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첫말'과 '마지막말'은 마땅히 한 낱말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하게 됩니다. 국어사전을 들추면 '첫말'은 실립니다. 그러나 '마지막말'은 안 실립니다. 왜지요? 왜 '마지막말'은 안 실리지요? '마지막말'은 한 낱말로 대접을 못 받으면서 '遺言'만 한 낱말 대접을 받으며 국어사전에 실려야 할 까닭은 무엇이지요?

 ┌ 첫말 / 처음말
 └ 막말 / 끝말 / 마지막말

 우리가 우리 말을 가꾸어야 우리 말이 살아납니다. 우리가 우리 말을 가꾸지 않는다면 우리 말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우리 손으로 보듬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손으로 깎아내리기도 하는 말입니다. 우리 마음이 일으켜세우는 말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 마음이 내치기도 하는 말입니다.

 '마지막말'은 넉 자이고, '유언'은 두 자이기 때문에 '마지막말'은 올림말로 삼지 않겠다고 이야기한다면 억지입니다. '유언'은 옛날부터 써 왔고 '마지막말'은 쓴 지 얼마 안 되었다고 말한다면 순 거짓말입니다. '유언'은 사람들 쓰임새가 많으나 '마지막말'은 보기글을 찾기 어렵다고 하면 엉터리입니다.

 글자수가 걱정이라면 '막말'이나 '끝말'을 함께 올림말로 삼으면 됩니다. 그리고, 글자수가 짧아야만 올림말이 되어야 하지 않는 한편, 글자수가 넉 자가 아닌 여덟 자라 하여도 뜻과 느낌이 싱싱하게 살아 있으면 마땅히 올림말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말'을 한 낱말로 삼지 않아 왔기에, 책이고 신문이고 잡지이고 이 낱말을 '마지막 말'로 띄어서 적기 마련입니다. 이리하여 '유언'은 쓰임새가 많이 보이지만 '마지막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띄어서 쓰도록 묶어 놓았기에 보기글을 찾기 어려울 뿐, '마지막말'을 올림말로 삼지 않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 사람들은 입으로는 으레 '마지막말'을 이야기해도 글로 옮길 때면 어김없이 '유언'으로 고쳐적는 얄궂은 버릇이 있습니다.

 덧붙여, '유언'이라는 말만 쓴 우리들이 아닙니다. '마지막말'도 익히 써 온 우리들입니다. 그저 지난날 자취를 돌아볼 '글로 적힌 자료'는 한문으로 글을 나누던 사람들이 남겼기 때문에 옛 자취에서 '마지막말'이 쓰였음을 찾아낼 길이 없습니다.

 이렇게 보고 저렇게 보아도, 우리 스스로 가로막는 '토박이말 쓰임새'입니다. 우리 스스로 꽃피우지 않던 '토박이말 문화'입니다.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속속들이 젖어들고 찌들은 채 우리 스스로를 업신여긴 우리들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업신여긴 발자취란,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업신여긴 발자취이며, 바야흐로 우리 스스로를 우리 손발로 짓뭉개거나 짓밟은 발자취입니다. 우리는 다른 이 손이 아닌 우리 손으로 우리를 바보로 삼으며 살아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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