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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에 갇힌 한자말 (32) 해박(該博)한 학식

[우리 말에 마음쓰기 649] '문명개화(文明開化)와 민권론(民權論)'이란?

등록|2009.05.25 10:59 수정|2009.05.25 10:59
ㄱ. 문명개화(文明開化)와 민권론(民權論)

.. '오랑캐'와 교섭할 뿐만 아니라 문명개화(文明開化)와 민권론(民權論)까지 이어지는 대목이 독특합니다 .. <번역과 일본의 근대>(마루야마 마사오, 가토 슈이치/임성모 옮김, 이산, 2000) 24쪽

 '교섭(交涉)할'은 '만날'이나 '어울릴'로 다듬고, '독특(獨特)합니다'는 '남다릅니다'로 다듬어 줍니다.

 ┌ 문명개화(文明開化) : 낡은 폐습을 타파하고 발달된 문명을 받아들여 발전함
 ├ 민권론(民權論) : 민권 운동의 지도 원리인 정치 사상. 국민의 권리와 자유가
 │    보장되어야만 국가의 권력이 신장된다고 주장한다
 │
 ├ 문명개화(文明開化)와 민권론(民權論)까지
 │→ 새 문명에 눈을 뜨고 백성들 권리를 키우자는 데까지
 │→ 새 문명과 백성들 권리 찾아주기까지
 └ …

 '문명개화'나 '민권론' 같은 말은 지난날 흔히 외치던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이와 같은 말을 외치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우리 삶터가 흘러온 발자취를 더듬는 자리라 한다면 이와 같은 말을 넣어야 한결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이와 같은 말을 쓸 때에는 쓰더라도 "문명개화와 민권론"이라고만 적으면 되지, 구태여 한자로 어떻게 적는지를 하나하나 밝히지 않아도 됩니다.

 ┌ 우리 삶을 북돋우고 우리 권리를 지키자는 데까지
 ├ 우리 삶과 권리를 지키고 북돋우자는 데까지
 ├ 우리 삶터를 새롭게 가꾸고 우리 권리를 튼튼히 지키자는 데까지
 ├ 우리 삶터를 일으키고 우리 권리를 찾자는 데까지
 └ …

 '문명개화'를 한자로 어떻게 적는다고 보여준다면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 줄을 한결 잘 알게 될까 궁금합니다. '민권론'을 한자로 어찌 적는가를 모른다면, 이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 줄을 하나도 모르게 될까 궁금합니다.

 따지고 보면, '문명개화'이든 '민권론'이든, 한문으로 지식을 익히고 한문으로 생각을 하던 사람들이 지어낸 말입니다. 여느 사람들 말이 아니요, 여느 사람들이 알아차릴 글이 아니며, 여느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 생각이 아닙니다.

 ┌ 문명개화 → 문명을 꽃피우기 / 문명을 북돋우기 → 우리 삶 가꾸기
 └ 민권론 → 백성으로서 누릴 권리 지키기 → 사람 권리 찾기 / 우리 삶 지키기

 우리는 우리 삶을 어떻게 가꾸면 좋을까 헤아려 봅니다. 우리는 우리 터전을 어떻게 일구면 좋을까 곱씹어 봅니다. 우리는 우리 삶과 터전을, 그리고 우리 말과 글을, 나아가 우리 넋과 얼을 어찌어찌 가꾸어 나가면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 내 이웃과 두 손 맞잡고 사이좋게 펼쳐 나갈 일, 너나없이 다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즐겁게 이루어 나갈 일이란 어떻게 다스려야 더없이 좋을까 되돌아봅니다.

ㄴ. 해박(該博)한 학식

.. 남부럽지 않은 족보가 말해 주듯 넉넉한 가산과 함께 해박(該博)한 학식, 그리고 고상한 인격은 비록 외딴 산골에 산다 하여도 늘 남의 존경을 받아 왔었다 .. <기독교의 전교자 6인>(신구문화사, 1976) 30쪽

 "고상(高尙)한 인격(人格)"은 "훌륭한 됨됨이"나 "훌륭한 마음씀"으로 다듬습니다. "남의 존경(尊敬)을 받아 왔었다"는 "남한테 우러름을 받아 왔었다"나 "사람들이 높이 섬겼다"로 손질하고, '가산(家産)'은 '집안 살림'이나 '집살림'으로 손질해 봅니다.

 ┌ 해박(該博) : 여러 방면으로 학식이 넓다
 │   - 해박한 지식 / 법률 상식에 해박한 사람 /
 │     서당에서 한학을 익힌 종혁 부친은 책 장사로 다진 만큼은 해박했다
 │
 ├ 해박(該博)한 학식
 │→ 빼어난 학식
 │→ 높은 학식
 │→ 엄청난 학식
 └ …

 "학식이 넓다"를 가리키는 한자말 '해박'이라 한다면, "해박한 학식"으로 적을 수 없습니다. 엉터리 겹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해박'이 무엇을 뜻하고, '학식'은 또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살피지 않습니다. 찬찬히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처럼 얄궂게 겹말을 쓰고 맙니다. 겹말을 쓰고도 겹말인 줄 느끼지 않고, 좀더 슬기롭게 쓸 줄을 모르며, 한결 부드럽고 손쉽게 쓸 생각을 안 합니다.

 ┌ 법률 상식에 해박한 사람 → 법률 상식에 밝은 사람 / 법률 상식을 꿰는 사람
 └ 해박했다 → 똑똑했다 / 잘 알았다 / 널리 알았다

 '학식(學識)'이란 "배워서 아는 일"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해박한 학식"이라고 할 때에는, "많이 배워서 많이 알고 있음"을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많이 배워서 널리 알고 있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어요.

 ┌ 집살림도 넉넉하고 많이 배워 똑똑하고 됨됨이마저 훌륭하여
 ├ 집에 돈도 넉넉하고 많이 배워 세상에 밝은 데다가 사람됨 또한 훌륭하여
 ├ 집안은 잘살고 많이 배워 슬기로운 한편 마음그릇까지 훌륭하여
 └ …

 한 마디 말이 꼬이면 뒤따르는 말이 함께 꼬입니다. 한 줄 글이 뒤틀리면 잇따르는 글이 나란히 뒤틀립니다.

 한 마디 말을 아름다이 가꾸면 뒤따르는 말이 함께 아름답기 마련입니다. 한 줄 글을 알뜰히 보듬으면 잇따르는 글은 함께 알뜰하게 간수하기 마련입니다.

 말마디마다 어떤 느낌을 담으려 하는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우리가 펼치는 말마디를 사람들하고 어떻게 나누고 싶은지 생각할 일입니다. 우리가 담아내는 글줄에 우리 넋과 얼을 어느 만큼 싣고 어떤 사랑과 믿음을 함께하고 싶은가를 곰곰이 짚어내야지 싶습니다.

 옳게 쓰고 바르게 쓰는 일에도 틀림없이 마음을 쏟으면 좋겠습니다마는, 살뜰히 쓰고 맑고 밝게 쓰는 일에도 차근차근 마음을 쏟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말마디는 지식쪼가리가 아닌 사랑이고, 글줄은 지식덩어리가 아닌 믿음입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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