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선배님,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대통령이십니다"

[현장-봉하마을] 3천배로 아침 맞은 시민... 천막 정비로 분향 1시간 반 중단 뒤 재개

등록|2009.05.25 09:48 수정|2009.05.26 11:39
[특별취재팀 : 봉하 현장]

취재 : 윤성효 김영균 최경준 안홍기 선대식 기자 / 총괄 : 김병기 기자
사진 : 유성호 기자 / 총괄 : 권우성 기자
동영상 : 김호중 기자 / 총괄 : 이종호 기자

▲ 고 노무현전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열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6일 새벽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마련된 분향소에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선배님,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대통령이십니다"
진영중학교 후배들의 집단 참배..."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6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노 전 대통령의 모교인 진영중학교 학생들이 조문을 마친뒤 분향소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선배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진영중학교 3학년 채국진 학생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26일 오전 9시께 경남 김해 진영중학교 학생 40여 명과 교사 6명이 봉하마을을 찾아 노 전 대통령 영정 앞에 헌화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진영중학교 16회 졸업생이다. 진영중학교는 26년 동안 폐교 상태였으나 지난 2007년 다시 학생을 받았다. 현재 3학년 학생들이 졸업을 하면 제61회 졸업생이 된다.

봉하마을을 찾은 채국진 학생은 "1학년(2007년) 때 노 전 대통령이 직접 학교를 찾아왔는데, 그때 악수하고 사진도 찍었다"며 "토요일 소식을 듣고 놀랐는데,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고 슬픈 마음을 나타냈다.

학생들과 함께 온 이영애 교사는 "노 전 대통령의 뜻을 기리기 위해 교사 6명과 학생대표 40명이 함께 왔다"고 밝혔다. 이 교사는 방명록에 "당신은 우리의 진정한 대통령이십니다, 사랑합니다, 부디 편히 잠드십시오"라고 적었다.

이밖에 26일 오전 8시께부터 봉하마을에는 다시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조문객들은 봉하마을에서 약 4~5km 떨어진 곳에서부터 걸어와 헌화하고 있다.

[33신 : 26일 오전 8시 30분]

천막 정비로 분향 1시간 반 중단... 새벽 6시부터 분향 재개

밤새 이어지던 조문객들은 26일 새벽 3시를 넘어서며 숫자가 줄었고, 마을 밖까지 길게 늘어져 있던 조문 행렬도 사라졌다. 장례 주최측은 1시간 반 가량 분향을 중단하고 분향소를 정비한 뒤 새벽 6시부터 분향을 재개했다.

새벽 4시 30분경부터 분향을 중단한 장례 주최측은 우천에 대비해 분향소 천막 지붕에 방수천을 덧입히고, 천막 뼈대를 보강하고, 시든 조화를 교체했다. 주최측은 분향 중단을 수차례 알렸지만 이때 도착한 조문객들은 아랑곳 않고 분향을 이어갔다.

일부 조문객들은 대형 스크린에 비춰지는 노 전 대통령 관련 동영상을 보며 밤을 새웠고, 일부는 조문객 대기소 깔개를 몸에 두르고 누워 잠을 청하기도 했다.

함세웅 "검찰권 독립 보장 고귀한 뜻 깨달아야".. 3000배로 아침 맞은 시민

이에 앞서 새벽 3시 20분 경에는 함세웅 이사장을 비롯한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임직원과 이해학 이사장을 비롯한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임직원, 효림 스님 등이 분향소를 찾았다.

함 신부는 "역사는 뜻밖의 사건으로 변화하고 진전돼왔다"며 "이번 사건으로 우리는 하늘의 큰 섭리를 짚어보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훈에 담긴 깊은 뜻 되새기며 절제된 유훈을 되살려 검찰권 독립을 보장했던 그분의 고귀한 뜻을 검찰이 잘 깨닫고 다시 태어나는 자정의 계기가 돼야 한다"며 "전직 대통령이 검찰로부터 모욕을 당했다면 보통 사람들이야 어떻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어슴푸레하게 동이 터오던 시각, 장장 10시간여에 걸친 조문을 마친 이도 있었다. 대구에서 온 38세 정아무개씨는 전날 저녁 7시 30분부터 분향소 앞 조문행렬 옆에 자리를 깔고 3000배를 시작했다.

정씨는 "원래 노 대통령 힘내시라는 의미에서 3000배를 하려고 했는데 바쁜 일들이 있어서 미루다가 다음 주쯤 하려고 했다"며 "그런데 결국 가시고 난 다음에 하게 됐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이제는 좋은데 가시라고 하는 3000배"라며 절을 계속했고, 몇몇 조문객들은 정씨를 응원화기 위해 옆에 스티로폼을 깔고 번갈아가며 정씨와 같이 절을 하기도 했다.

중간중간 아픈 무릎을 주물러가며 절을 하던 정씨는 결국 새벽 5시 15분경 3000배를 다 마칠 수 있었다. 마지막 절을 마친 그는 ""내 마지막 선물을 드렸으니 대통령님은 이제 내게 빚을 지신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 선 함세웅 신부의 기도
거룩하신 하느님.

사랑하고 존경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매우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느님의 역사는 뜻밖의 사건으로 이루어져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말씀, 그 큰 뜻을 마음에 새깁니다. 자신의 삶을 집약하는 열네줄의 유훈은 우리들에게 반성과 성찰의 계기가 됩니다.

인권과 민주화 운동을 위해 온몸을 던져 불의한 권력자 검찰을 무릎 꿇게하신 당신의 그 뜻을 하느님이 확인하셨습니다.

운명이다라는 마지막 말은 철학과 신학과 인간적 고뇌가 담긴 말씀입니다. 인간이 정의롭게 살고싶어도 살 수 없는 한계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몸을 던졌습니다.

그 고귀한 뜻 국민 모두의 길잡이의 뜻으로 새기겠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정화의 계기가 되게 하시고 은총의 삶을 살게 하십시오.

새시대를 밝힌 선구자처럼 저희들 살겠습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인 25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은 한 조문객들이 땅바닥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32신: 26일 새벽 2시 55분]

봉하마을을 지키는 2000개의 새벽 별들

26일 새벽 1시경, 경남 김해 봉하마을 합동분향소에는 밤이 깊어가면서 조문객의 수가 다소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2000여명의 시민이 자신의 조문 순서를 기다리며 길게 줄을 서 있다.

밤이 깊어 기온이 떨어지자, 미리 준비해온 두터운 옷을 걸치는 조문객이 눈에 띄기도 하지만, 추워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분향소 옆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생전 영상을 보는 조문객들의 얼굴은 붉게 상기됐다.

분향소에는 노 전 대통령의 유가족과 측근들이 번갈아 가며 상주 역할을 하고 있다. 26일 새벽 1시 현재 영화배우 명계남씨를 비롯해 이호철 전 민정수석 등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노 전 대통령을 보필했던 비서관들이 조문객을 맞고 있다. 장례준비위측은 "(25일) 밤 12시 현재 봉화마을에 34만명의 조문객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가 됐다"고 밝혔다.

장하성 "외신은 정치적 사안으로 보는데, 한국 언론만 아니다?"

새벽 1시 10분경, 숨을 헐떡이며 분향소 앞에 도착한 진성자(54)씨와 조규숙(52)씨가 길게 늘어선 조문객의 가장 뒷 줄에 바짝 붙어섰다. 진씨는 부산 서면 시장에서 칼국수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진씨는 "밤 11시 30분에 문을 닫고 이제 오는 길"이라며 "내일 오전 9시에 식당 문을 열어야 하지만, 오늘 밤에 잠을 자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조씨 역시 같은 시장에서 횟집을 운영하고 있다. 조씨는 "부산에도 분향소가 있기는 하지만, 가기가 싫고 여기만 오고 싶더라"며 "(노 전 대통령이) 살아계실 때 우리 식당에 한 번 오셔서, '너무 맛있다'고 했던 일이 생각난다"고 안타까워 했다. 두 사람은 "이제 국민들끼리 싸우지 않고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노 전 대통령이) 돌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도 새벽 1시 30분경 분향소를 찾았다. 장 교수는 "중국에 있다가 외신을 통해 소식을 접하고 귀국해서 곧장 오는 길"이라며 "처음 소식을 듣고 순간 멍했다. 농담인줄 알았다"고 안타까워 했다.

장 교수는 특히 "외신들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정치적 사안으로 해석하고 있었는데, 한국 언론들은 이 사안을 정치적으로 보지 않고 있는 것이 더욱 놀랍다"며 "우리 사회는 갈 길이 아직 멀다. 보듬어줄 줄 모르고, 상대를 인정할 줄 모르고, 끊임없이 갈등적 상황으로 몰고가는 현실을 다시 보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을 부정하고 있다"며 "이제 사회가 한 단계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쉽게 과거로 돌아갔다"고 탄식했다.

전인권 "검찰이 심했다"... 임수경 "사랑한다는 말 외에는..."

▲ 25일 저녁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 앞에 먀련된 빈소에서 임수경씨가 잔을 올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앞서 가수 전인권씨와 들국화 팬클럽 회원 5명도 조문을 했다. 전인권씨는 "(머리가) 멍하다"며 "검찰이 너무 심하게 하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전씨는 이어 "그 당시(참여정부)에는 몰랐는데,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 경제와 자유를 위해서 굉장히 노력했다"며 "아껴야 할 말도 서슴없이 뱉어서 보기가 좋았다"고 회상했다.

전씨는 조문을 마친 뒤, 분향소에서 나와 노 전 대통령의 사저 뒷편으로 발길을 옮겼다. 뒷산인 봉화산 중턱 부엉이 바위를 보기 위해서다. 부엉이 바위는 나흘 전 노 전 대통령이 생을 마감한 곳이다. 전씨는 "들국화 팬클럽 회원은 대부분 노사모"라며 "그의 죽음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해 '통일의 꽃'으로 불렸던 임수경씨도 노 대통령의 영전에 잔을 올렸다. 사고로 아들을 잃었던 2005년 경남 합천 해인사에 머물 때, 노 전 대통령 내외가 방문해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번엔 그가 위로하는 입장이 됐다.

임수경씨는 "'사랑합니다'라는 말 외에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며 "이번 기회에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되돌려진 민주주의와 인권, 인간의 존엄성이 새롭게 되살아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울먹였다.

그는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모두에게 알려주신 것 같다"며 "정말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이 있는데 그 안타까움을 말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권 여사님의 아픔의 깊이를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 했다. 

[31신 보강: 25일 밤 9시 20분]

열한살 아이부터 팔순 노인까지 끊이지 않는 촛불조문

▲ 25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친 여고생들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삼일째인 25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꼬마 어린아이가 분향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저녁 7시 30분경 초등학생 열다섯 명은 가슴에 근조 리본을 달았다. 이 학생들은 경남 함안에 있는 사랑샘지역아동센터공부방에서 왔다.

이아람(11)양은 여기가 어딘지 아느냐는 질문에 "노 대통령이 서거하신 곳"이라고 말했다. 이양은 "억울하게 돌아가셨지만…"이라며 말을 맺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민화(11)양은 "뉴스에서 봤다. (노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하신 분이고, 우리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신 분이다. 하늘나라에서 오래오래 사시라고 말씀드리러 왔다"고 말했다.

이 아이들은 국민생활보호수급대상자와 결손가정가족위탁 아이들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이은경(43)씨는 "아이들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난하게 자라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수많은 역경이 있었지만 본인이 노력하면 자기가 어렵더라도 충분히 가치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왔다. 실제 보여주기 위해서 왔지만 아마 지금은 못 느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라도 영향을 받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함께 온 정인옥(65)씨는 "열심히, 정직하고 씩씩하게 자라 반드시 대통령이 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에 보탬이 되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남자든 여자든, 알았지"라며 리본을 달아주었다. 이에 아이들은 "네"라고 답변했다.

부산대 학생 80여명 등 대학생들과 종교단체 시민단체 등 시간이 갈수록 단체조문객들이 늘고 있다. 안득균 부산대 부총학생장은 "노 대통령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애도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단체조문을 가자는 요구가 많아서 학생회에서 버스를 빌려서 같이 왔다"고 말했다.

저녁 8시가 넘어가면서 주변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곳곳에서 촛불이 켜지고 있다. 앞서 7시경 분향소 앞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생전 강연 모습이나 노 대통령의 생애를 다룬 언론사 프로그램들이 방영됐다. 분향을 마치고 나온 시민들이 스크린 주변에 모여 들여 영상을 보며 곳곳에서 흐느끼기도 했다.

밤이 깊어질수록 조문객들의 숫자는 오히려 더 늘고 있다. 일을 마치고 오는 직장인들이 늘어난 탓으로 보인다. 장례식 관계자들은 지난 주말에 이어 오늘까지 조문객이 4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주말과 달리 지금 현 시각까지는 사람들 늘어난 것 빼고는 굉장히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조문이 진행 중이다.

"병사 포옹하는 노 전 대통령, 최고의 지도자였다"
예비역 해병대 중위의 뒤늦은 전역신고

▲ 25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분향소에서 해병대 손영광 중위가 조문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새하얀 예복에 빨간 명찰. 25일 오후 해병대 예복을 입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을 든 조문객도 봉하마을 분향소에 나타났다.

지난해 6월 중위로 해병대를 전역한 손영광(29)씨는 노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서 뒤늦은 전역신고를 했다.

그가 들고 나온 사진은 노 전 대통령이 2004년 12월 자이툰 부대를 전격 방문, 한 병사와 포옹하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

당시 아세안+3 정상회의 참석과 유럽방문을 마친 노무현 대통령은 비밀리에 공식 일정을 변경, 쿠웨이트를 거쳐 이라크 아르빌에 주둔하고 있던 자이툰 부대를 방문했다.

당시 이 병사는 "대통령님 한번 안아보고 싶습니다"라며 갑작스럽게 달려들어 포옹했고 그 장면이 그대로 사진에 담겼다.

손씨는 "노 전 대통령이 병사를 안고 안았을 때의 표정과 미소를 봤을 때 존경할 만한 최고의 지도자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한발한발 행보가 너무나 의미 있었다"며 "그것이 어떻게 해석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자주 국방을 위한 민족을 사랑하는 정신이었다는 것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30신 보강 : 25일 오후 6시 45분]

민가협 가족 조문... "노무현 전 대통령, 민주화운동의 선봉"

"노무현 변호사, 종철이 죽었을 때 투쟁 지휘"
민가협 가족들 조문 "검찰 수사는 합법적 살인"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인 25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 앞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오른쪽에서 첫번째), 고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씨(왼쪽에서 첫번째)와 민주화실천가족운동연합회 회원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 유성호


25일 고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씨와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 등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 가족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았다. 1987년 6월 항쟁에 앞장선 노 전 대통령과 깊은 인연을 가진 이들은 깊은 슬픔을 표현하면서 그의 죽음을 '타살'로 규정했다.

'박종철군 고문 치사 사건'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박종철군의 아버지 박정기씨는 "6월 항쟁때 부산 대각사 앞 등 남포동 거리에서 노무현 변호사와 투쟁을 같이 했다"며 "노 변호사가 중앙교회를 중심으로 한 거리 투쟁 일선에서 직접 지휘하고 투쟁했던 게 생각난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문재인·노무현 두 변호사가 우리 집에 찾아와 조문을 하고 위로의 말을 전했던 일도 생각난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서 있었고 그 분의 뜻을 우리가 착실히 이행할 것을 다짐한다"며 "가시는 길 영면하시길 기도한다"고 노 전 대통령을 애도했다.

박씨는 "그동안의 검찰 수사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금 정부는 경제 살리기에 치우쳐 있는데 더 중요한 것은 인권 아니냐, 인권과 경제살리기를 동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6월 항쟁의 와중에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검찰과 언론의 합작품"이라며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것이 분하고 원통하다"고 힘겹게 말했다.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이었던 박형규 목사는 이날 민가협 가족들과 함께 조문했다. 박 목사는 "살인이란 것은 흉기로 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을 상하게 해서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정권과 검찰이 노 대통령 일가에 대해 벌인 수사를 보고 이것은 '합법적 살인'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나라도 그런 수모를 겪었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겠느냐"며 "신문 기사를 보며 잘 견딘다고 생각했는데, 상상하지 못할 만큼 괴로운 심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 분도 울분을 터트릴 방법이 없어 택한 것이 자신을 희생시켜 부당한 당국, 검찰의 압박을 국민에게 알리려고 한 것 아니었겠느냐"며 "그런 의미에서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독재에 희생된 희생자의 한 사람으로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 25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분향소를 방문한 고 건 전 부총리가 조문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25일 오후부터는 참여정부에서 총리와 국무위원들 지냈던 인사들의 분향이 이어졌다. 고건 전 총리와 현재는 한나라당 의원인 김장수 전 국방장관, 임동원 외교안보특보와 이종석 통일부 장관 등이 빈소를 찾았다.

오후 4시경 참여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냈고,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노 전 대통령을 수행했던 김장수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았다.

다른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들에 대해 보였던 반응과는 달리 조문객들은 김 의원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김 의원은 임태희, 김광림 의원에 이어 3번째로 봉하마을 조문에 성공한 한나라당 의원이 됐다.

분향을 마친 김 의원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라를 위해 앞으로 할 일이 더 있었는데…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서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참여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냈고 탄핵 정국에서 대통령 직무대행을 수행한 바 있는 고 건 전 총리는 이날 오후 5시 50분쯤 이달곤 행자부 장관과 함께 분향소를 찾았다.

고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정치개혁을 추진했다"며 "참으로 비통하다"고 말했다.

이미 도착해 있는 국민장 공동위원장 한명숙 전 총리와 장례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은 이달곤 행안부 장관은 분향 뒤 아무런 말도 없이 비서관 숙소로 들어갔다. 이 장관은 먼저 도착한 한명숙 전 총리와 만나 국민장 절차에 대해 협의를 시작했다.

임동원·이종석 전 통일장관 조문... 박주선 "심적 고통 심했을 것"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인 25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영화배우 문성근이 상주 역할을 대신해 조문객을 받고 있다. ⓒ 유성호

국민의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과 국정원장을 지냈고 참여정부에서는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를 지낸 임동원 전 장관, 참여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전 장관도 이날 오후 늦게 봉하마을을 찾았다.

임 전 장관은 "애통함을 금할 수 없다"며 "고인은 민주화와 국가 발전을 위해 큰 업적을 남겻고, 그 업적은 역사에 길이 남으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으로 3번의 검찰 수사를 받아 구속됐지만 모두 무죄 판결을 받은 바 있는 박주선 민주당 최고위원도 분향은 마친 뒤 "앞으로 정치 보복이라는 말이 제도적으로 사려지길 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상중에 정치적인 이야기를 안 했으면 한다"면서도 "그 부분(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선 할 말이 많고 (노 전 대통령이) 심적으로 고통이 심했을 것이다. 무리하게 진행된 면이 있는데 차차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김완주 전북도지사를 비롯한 전북지역 기관장과 도의원 등 30여 명도 봉하마을을 찾아 조문했다. 김 지사는 "고인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너무 애를 쓰셨다"며 "200만 전북도민과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29일 새벽 6시 운구행렬 출발할 듯... '비석 쓸 돌 주겠다' 제의 쇄도

장례 지원 업무를 맡은 전 청와대 관계자와 민주당 당직자들에 따르면, 영결식을 위해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29일 새벽 6시경 봉하마을을 출발해 오전 11시경 서울에 도착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화장을 하기로 했지만, 화장을 어디서 할지, 최종적으로 유골을 어디에 안치할지 등에 대해서는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종 장지 선정이 늦을 경우, 봉하마을에서 가까운 암자인 정토원에 임시로 안치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또 봉하마을 장례지원처에는 노 전 대통령의 비석으로 쓸 돌을 보내주겠노라는 제의가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졋다. '작은 비석 하나 남겨달라'는 고인의 유언에 각계 각처에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서거 3일째 오후를 지나 저녁이 됐지만 봉하마을을 찾는 조문객들은 전혀 줄지 않고 있다. 이날 30도에 육박하는 최고 기온과 뙤악볕에도 조문객들은 마을 입구에서 차를 내려 걸어서 분향소로 향했다.

김해 세영병원과 김해소방서는 공중보건의를 배치한 응급의료센터를 마을 입구에 열어 환자 발생에 대비하고 있다. 센터에 따르면, 25일 오후까지 찰과상이나 탈수로 인한 환자 10여 명이 응급의료센터를 찾았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인 25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 앞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29신 : 25일 오후 3시 10분]

이해찬 "MB, 봉하 오는게 제일 좋지만 불미스런 일 생길 수도"

▲ 25일 오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분향소에서 두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양이 오열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 장의위원회 고문을 맡고 있는 이해찬 전 총리는 25일 기자들과 만나 이명박 대통령의 조문에 대해 "여기(봉하)로 와서 조문하는게 제일 좋지만 지금은 장의위원회가 (상가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불미스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봉하마을에 올 경우 흥분한 사람들에 의해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어 안 오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밝힌 셈이다.

이어 그는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도 못 들어오고 돌아가지 않았느냐"면서 "서울에서 영결식이 열리면 불미스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양측이 노력하겠다"고 말해 이 대통령이 봉하 빈소에는 오지 않았으면 한다는 뜻을 거듭 내비쳤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모시고 같이 일을 했는데, 진실하시고 좋으신 분"이라고 회고한 뒤 "사태가 여기까지 와서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앞서 이날 오후 2시 30분께 김원웅 전 의원이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김 전 의원은 조문길에 모친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때문에 그는 황급히 헌화만 하고 상경해야 했다. 이 전 총리는 김 전 의원을 만나 "드릴 말씀이 없다"며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국민장' 현수막으로 교체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인 25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절차가 국민장으로 확정됨에 따라 분향소 현수막이 '국민장'이 표기된 현수막으로 교체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인 25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 앞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28신 대체 : 25일 오후 1시 33분]

박희태 등 한나라당 대표단, 조문 저지당해 무산
일부 시민들, 박 대표에 물 뿌려... 경찰, 폴리스라인 설치 

박희태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대표단이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조문하려 했지만, 시민들의 반대로 조문이 무산됐다.

한나라당 대표단은 25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에서 비행기로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차량으로 봉하마을에서 1.5km가량 떨어져 있는 산본공단까지 온 한나라당 대표단은 걸어서 마을로 향했다. 봉하마을에서 1km가량 떨어져 있는 삼거리에서 한나라당 대표단은 조문을 반대하는 시민들에 의해 막혔다.

봉하마을은 이날 오전 11시경부터 박 대표 등이 방문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술렁거렸다. 봉하마을에 있던 일부 시민들은 마을 입구에서 "한나라당 최고위원들은 돌아가라"거나 "살인마 한나라당은 여기 왜 오느냐", "목숨을 걸고 저지할 것이다"고 외쳤다.

이날 낮 12시경 경찰들이 검정색 옷을 입고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일부 시민들이 "경찰은 관여하지 말라"고 외쳤다. 이에 일부 경찰관들은 시민들에 밀려 마을입구에서 500m가량 떨어져 있는 봉하경비숙소로 이동하기도 했다.

박희태 대표 등은 봉하마을에서 1km가량 떨어져 있는 삼거리에서 조문에 반대하는 시민들과 마주쳤다. 시민 20여 명은 도로에 앉아 구호를 외치도 했다. 조문하기 위해 마을로 들어오던 상당수 시민들도 함께 가세했다.

경찰이 이들 시민들을 막으면서 몸싸움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봉하마을 앞 도로에는 경찰관들이 '폴리스라인'을 설치하기도 했다.

박희태 대표 일행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시민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런 속에 일부 시민들은 물을 뿌리기도 했고, 박희태 대표 등이 서 있는 곳에서는 우산이 펼쳐지기도 했다.

시민들은 "돌아가서 좌파가 그랬다고 해라"거나 "죽을 때까지 노사모 할 것이다", "이명박 똘마니 박희태는 물러가라", "우리는 노사모도 아니고 김해시민이다", "국민 없는 정치가 어디 있나. 국민이 오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아야지"고 외쳤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인 25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초입에서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정몽준 최고위원을 비롯한 의원들이 조문하기 위해 들어서자 시민들에게 저지되어 되돌아 가고 있다. ⓒ 유성호


한나라당 조문단은 박 대표와 정몽준, 공성진 최고위원, 권경석(창원갑), 김정권(김해갑), 이주영(마을갑), 김재경(진주을), 최구식(진주갑) 의원 등이었다. 또 김태호 경남지사를 비롯한 경남지역 일부 단체장들도 동행했다.

대치 상황이 계속되던 상황에서 이날 낮 12시 50분경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나왔다. 박 대표는 문 전 비서실장을 만나 조문의 뜻을 전달한 뒤 돌아섰다.

한나라당 조문단이 발걸음을 돌리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삼거리 옆 야산에 올라가 있던 수십 명의 일반 조문객들도 박수와 함께 환호를 지르기도 했다.

김해가 지역구인 김정권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충격적이고, 믿기지 않는다"면서 "홈페이지에도 추모의 글을 올려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나름대로 노 전 대통령의 극렬한 지지자들이 흥분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안타깝지만 조문할 수 있었으면 했는데, 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한나라당 관련자 중에는 임태희 전 정책위 의장이 지난 24일 새벽에 조문했고 김광림 의원(안동을)은 25일 이헌재 전 부총리와 함께 다녀갔다. 박근혜 전 대표는 24일 낮에 조문하기 위해 김해공항을 거쳐 오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생태환경마을 조성 등 사업, 계속될까
김해시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뒤 생태환경마을 조성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지 여부에 관심이 높다. 고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을 전후해 김해시는 일부 사업을 재검토할 뜻을 밝혔다.

김해시는 고 노 전 대통령의 생가 복원사업과 숲 가꾸기 사업, 화포천 정비사업 등을 계획했다. 생가 복원사업은 현재 진행 중이다.

김종간 김해시장은 25일 오전 시의원과 기관단체장 등 50여 명과 함께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김 시장이 분향을 마치고 나온 뒤 일부 시민이 다가가 물었다. 그 시민은 "시장님, 개발 사업 계속할 겁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김 시장은 "계속합니다, 잘 하고 있습니다"고 대답한 뒤 걸어갔다.

봉하마을을 지역구로 포함한 최철국 의원(민주당, 김해을)은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향에 내려와 숲 가꾸기와 오리농법, 화포천 정비사업 등을 하면서 마을이 많이 달라졌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시고 나니 그 빈자리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 당시 김해시에서 계획했던 여러 사업들을 계속할지 고민했던 것으로 안다"면서 "당시에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돌아가신 분의 뜻을 이어받는다는 차원에서 사업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봉하마을 가꾸기를 위해 지역구 의원으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며, 주민이나 저도 노 전 대통령께서 돌아가시기 전에는 말을 하지 못했는데 조만간 김종간 시장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27신 : 25일 낮 12시 30분]

장례식, 서울에서 치른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사흘째인 25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 앞에서 농업인들이 보낸 화환 속 '문조' 뒤로 노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이 보이고 있다. ⓒ 유성호


김해시 진영읍 김해공설운동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서울로 옮겨져 치러지게 됐다.

25일 노 전 대통령의 유족은 영결식과 노제를 서울에서 치르기로 결정한 뒤 정부측 장례위원장인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공식 협조를 요청했다. 서울에서 영결식이 열릴 경우 장소는 청와대 인근 경복궁 앞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봉하마을 장례위원회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은 25일 오전 공식브리핑을 통해 "유족의 뜻에 따라 영결식을 서울에서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족과 장례위원회가 영결식을 서울로 옮기게 된 이유는 국민의 추모 열기가 매우 뜨겁기 때문이다. 애초 유족들은 노 전 대통령의 뜻에 따라 장례를 가족장으로 치를 예정이었지만, 국민장으로 바꾸기로 한 만큼 더 많은 국민들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봐야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천 전 대변인은 "국민의 추모 열기가 예상외로 뜨겁다"면서 "가능한 국민들이 많이 참여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해 영결식장을 서울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봉하마을 장례위원회는 유족의 결정을 곧바로 정부에 전달했다. 천 전 대변인은 "실무적으로 벌써 이야기를 했고, 오전 중 문재인 전 비서실장과 이달곤 행정안전부장관이 전화통화를 했다"면서 "이 장관도 적극 공감한다는 취지로 답변을 하셨다"고 밝혔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인 25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 앞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을 하기 위해 국화꽃을 들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다음은 천 전 대변인과의 일문일답.

- 서울에서 영결식을 한다면 장소는 어딘가.
"장소는 최규하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경복궁 앞뜰이 바람직하지 않나하는 생각이다."

- 결정하기까지 진통은 없었나.
"이번 결정에는 유가족의 뜻도 반영됐다."

- 지금 유가족들 상태는 어떤가.
"(25일 새벽) 권 여사님은 입관식 때 봤다. 상상하실 수 있는 그런 상태지만, 꿋꿋이 버텨내고 계시다. 장례 문제를 냉정하게 판단하고 집행하실 생각을 갖고 있다."

- 북측 조전은 받았나. 또 조문단을 보낸다면.
"지금부터는 장의위원회가 구성됐기 때문에 그 차원에서 결정할 것이다. 조전을 그 쪽에서 보냈다는 것이고, 정부가 그 내용을 발표했다. 우리는 그것을 봤을 뿐이다. 받은 것은 없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조문하기로 결정했는데 일정은 어떻게 되나.
"우리는 책임 있게, 공식적으로 이 대통령이 봉하 빈소를 방문하겠다는 뜻을 들은 바가 없다."

- 영결식을 서울에서 한다면 전체 절차는 어떻게 되나.
"고인의 유언에 따라 화장할 예정이고, 화장하면 산골을 하게 된다. 또 고인의 유언에 따라 비석을 세우는데, 그 외 봉분을 만든다던지, 봉분 안에 유골을 안치할 것인지 결정은 안했다. 매장은 영결식 당일 해야 하지만, 전문가들에게 문의해 본 결과 화장은 반드시 당일날 (산골)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러면 서울 가서 영결식 하고 노제를 지내도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또 영결식을 한 뒤 당일날 바로 봉하로 내려오는 것도 가능하다."

- 화장은 어디서 하나.
"화장은 가능한 일반 화장장에서 할 것 같다. 영결식을 서울에서 하면 서울 부근의 화장장에서 화장하게 될 것이다."

[26신 : 25일 오전 11시 25분]

원불교-기독교 조문 행렬... '근조' 리본 60만개 동나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인 25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노 전 대통령 아들 노건호씨가 원불교 중앙총부 교무들의 조문을 받고 있다. ⓒ 유성호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인 25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 통도사 스님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25일 오전 10시 55분, 봉하마을회관 앞 분향소에서는 원불교 이성택 교정원장 외 50여 명의 원불교인들이 고인의 명복을 비는 천도독경을 시작했다. 원불교는 이미 전북 익산의 중앙총본부를 비롯해 전국 각 교당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24일에는 전국 50여 교당에서 추모식이 봉행됐다.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노 전 대통령과 평양을 방문했던 이성택 원장은 "노 전 대통령은 국가와 민족, 세계를 위해 일생을 헌신하고 가신 분"이라며 "원불교는 삼세윤회를 믿는데, 노 전 대통령은 민족과 국가를 위해 쌓은 공덕을 고스란히 안고 후생에 가실 것으로 본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원장은 또 "지난해 10.4 정상회담 1주년 기념행사 때 노 전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만났다"면서 "(최근 검찰 수사 등으로) 마음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고, 그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가신 것 같다"고 아쉬운 한숨을 쉬었다.

이 원장 등은 천도독경이 끝나면 권 여사를 따로 만나 위로의 뜻을 전할 예정이다.

기독교도 조문 행렬에 동참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권오성 총무 등 목사 20여 명은 오전 11시 20분께부터 분향소 오른쪽 마당에서 추모 예배를 시작했다. 권 목사는 "고인이 이루고자 했던 한국 사회와 민족의 발전은 이제 남은 국민들의 몫"이라며 "하나님이 그분을 지켜주시도록 기도한다"고 말했다. 이어 권 목사는 "한국 교회도 모두 다 추도 예배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오랜 지인으로 노무현 정부 시절 농업정책특보를 지낸 이봉수씨는 조문을 마친 뒤 "노건평씨가 구속집행 되던 날 사저에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났고, 그 뒤에도 가끔 전화를 드렸다"면서 "친환경인증 받은 산딸기를 700평 정도 경작하고 있는데, 이번 주말 첫 수확해 사저를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너무 안타깝다"는 심경을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지인으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지낸 조성래 전 의원도 "모두가 죄인"이라며 "정직하고 소탈하고 신념 있는 분을 우리보다 앞서 보낸 것이 안타깝다"고 고개를 숙였다. 조 전 의원은 조문 직전 방명록에 '편히 가십시오'라고 짧게 적었다.

일반인들의 조문 행렬도 다시 늘어나고 있다. 신옥윤(73, 경기도 오산)씨는 "집에 있으면 눈물이 나던데, 여기 와서 보니 사람도 많고 해서 그나마 기분이 낫다"고 울적한 마음을 토로했다. 하루 결석을 감수하고 분향소를 찾은 권진은(평택 진의초교 6년)양도 "노 전 대통령은 민주화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셨다"면서 "친구들도 노 전 대통령을 좋아하는데, 내일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이곳 분위기를 전하겠다"고 말했다.

조문 행렬이 이어지면서 갖가지 물자부족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애초 장례위원회는 가슴에 다는 '근조' 리본을 60만개 준비했으나 사흘 만에 거의 동났다. 장례위원회는 부랴부랴 새로 주문에 들어갔다.

이날 오전 분향소를 찾은 김종간 김해시장은 "(장례 물품을) 지금도 다 지원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인 25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 유성호


[25신 보강 : 25일 오전 10시 14분]

통도사 주지 "노 전 대통령 얼굴 평안해보인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인 25일에도 새벽부터 조문객이 밀려들고 있다. 24일 자정 주말이 끝나면서 조문객은 점차 줄어들었으나, 25일 새벽 출근을 앞두고 조문하려는 시민들로 봉하마을은 다시 붐비고 있다. 봉하마을로 들어오는 입구는 아침 7시 전부터 차량이 줄을 지어 선 상태다.

이날 새벽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과 이태식 전 주미대사도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미국에 머물고 있던 이종석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자 곧바로 귀국, 25일 새벽 3시 인천공항에 도착해 봉하마을로 달려왔다.

또 조계종 최대 사찰 중 하나인 양산 통도사 주지 정우스님 외 250명의 스님들도 오전 8시30분께 줄지어 꽃을 들었다. 정우스님은 이날 새벽 노 전 대통령의 입관식을 집전했다.

정우스님은 "입관식을 1시 30분부터 2시 30분까지 했는데 노 전 대통령 얼굴을 보니 평안해 보이더라"면서 "유족들도 초연한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다만 권양숙 여사는 매우 힘들어 보였다고 밝혔다.

정우스님은 "앞으로 또다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국민이 선택해서 국가를 5년간 맡긴 분인데 결과가 이렇게 된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조문을 마친 통도사 스님 250명은 분향소 왼쪽에서 '반야심경'을 독경하고 있다. 오전 9시10분 현재 분향소에는 목탁과 독경소리가 낭랑하게 퍼지고 있다.

한편 정우 스님은 노 전 대통령의 화장을 통도사에서 맡고 싶다는 뜻을 유족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통도사에는 스님들의 열반에 대비한 다비장이 2개 있다. 하나는 그 동안 사용해 왔지만, 나머지 하나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정우 스님은 "사용하지 않은 다비장은 큰 어른이 돌아가실 때를 대비해서 마련해 둔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께서는 큰 어른이신 만큼, 통도사 다비장에서 모실 수도 있다는 뜻을 장례위원회를 통해 전해드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다. 정우 스님은 "모든 것은 유족과 장례위원회가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날 새벽 입관식과 독경을 집전한 정우 스님은 오전 중 노 전 대통령의 사저를 방문해 권양숙 여사 등 유족들을 다시 만날 예정이다.

[24신 : 25일 오전 7시 50분]

새벽에도 끊이지 않은 조문행렬... "출근해야 하지만 '국민 된 도리'가 먼저"

밤새 조문행렬이 끊이지 않은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세 번째 하루가 밝았다. 이 시각 현재 자욱한 안개에 둘러싸여 있는 봉하마을을 찾는 조문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선민(34)씨는 "경남 마산시에서 새벽 5시 20분에 출발, 오전 6시에 도착해 조문을 했다"며 "바로 출근하러 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가 아니지만, 국민 된 도리로 이곳에 왔다"며 "애통하다"고 밝혔다.

경기 안산시에서 온 박정학(29)씨는 "자동차를 끌고 밤 12시에 출발해 새벽 5시에 도착했다"며 "일요일 낮에 오면 북적거리니, 이른 새벽 조용한 때에 애도를 표하기 위해서 잠을 자지 않고 달려왔다"고 전했다.

그는 "이제 곧 올라가 오늘 오후에 출근하기로 했다"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충격이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으니 이젠 편하게 쉬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원 강사인 김선영(가명)씨는 "경북 구미시에서 기차로 새벽 2시에 출발해 이곳에 새벽 4시에 도착했다"며 "일요일 낮에 개인적인 일이 있어 장례기간 중에 월차를 내서 올 생각도 했지만, 마음에 부담이 가시지 않아 오늘 새벽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2002년 대선 때 노 전 대통령을 찍은 평범한 지지자"라며 "그의 임기 중 실망도 많이 했지만, '인간 노무현'을 좋아했기에 피곤함을 무릅쓰고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새벽 4시 무렵부터 봉하마을 곳곳엔 '추모물결이 이어지고 있다'는 머리기사를 담은 <한겨레>·<경향신문>·<경남도민일보> 등의 월요일치 신문이 무료로 배포됐다. 특히, <경남도민일보>는 이날 개최예정이던 창간 10주년 기념 리셉션을 취소한다고 알렸다.

[23신 : 25일 오전 7시 15분]

김형오 국회의장, 새벽시간에 조문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조문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던 25일 새벽 5시께 김형오 의장이 3명의 수행원과 함께 헌화후 짧게 조문했다.<사진제공 미디어 한글로> ⓒ 미디어 한글로 제공

전날 조문을 거부당한 김형오 국회의장이 사람들이 없는 새벽 시간을 이용해 조문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조문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던 새벽 5시께, 김 의장은 3명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헌화후 짧게 조문했다. 이에 뒤에서 조문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일부 조문객들이 "왜 끼어드나", "김형오 나와!"라고 외쳐 소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왔다"는 소리에 인근 사무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회원들과 시민들이 분향소로 뛰어나왔지만, 김 의장 일행은 조문을 마친 뒤였다.

현장에 있던 장례지원 자원 봉사자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조문이 20~30초도 채 걸리지도 않았다"고 혀를 차며 "국회의장이 갑자기 끼어들어 조문을 하고 쫓기듯 도망치는 모양새가 보기 좋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의장과 동행한 허용범 국회 대변인은 "의장은 김해가 지역구인 민주당 최철국 의원의 안내를 받아 정상적으로 조문했다"면서 "의장이 일반인보다 앞서 조문을 한 것은 통상적인 예우에 따른 관행으로 이해해달라"고 당부했다.

김 의장은 지난 24일 오후 1시 40분께 봉하마을에 도착했지만, 일부 시민들의 항의로 문상을 거부당한 바 있다.

[22신 보강 : 25일 새벽 3시 10분]

노 전 대통령 입관식 거행... 권양숙 여사, 서거 이후 처음 모습 드러내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25일 새벽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거행되는 입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빈소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25일 새벽 권양숙 여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권 여사는 노 전 대통령의 입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새벽 1시 58분께 노 전 대통령의 빈소가 설치돼 있는 봉하마을회관 앞 10m 떨어진 주차장에 검은색 승용차를 타고 나타났다.

검은색 재킷에 회색 바지를 입은 권 여사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슬픔을 애써 참는 듯 입술을 꾹 닫은 모습이었고, 눈시울은 붉었다. 승용차에서 내려 경호관이 미는 휠체어로 갈아타 봉화마을회관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대기 중이던 취재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인근에 있던 조문객들이 울음을 터트리며 "여사님"이라고 절규하자, 권 여사의 눈에서는 이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어 권 여사는 연방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아 냈다.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은 새벽 2시 40분께 기자들과 만나 "권양숙 여사님이 봉하마을회관에 도착한 지 10분 뒤에 염이 끝나고, 베옷 수의를 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다"며 "노 전 대통령의 얼굴 표정은 잠이 들은 듯 편안하게 보였다"고 밝혔다. 이어 "권 여사님이 상복을 입고 첫 제사 준비를 하고 있다"고 천 전 대변인은 전했다.

권 여사는 이날 새벽 3시 15분쯤 사저로 돌아갔다.

이에 앞서 권 여사는 24일 "어떻게 말 한마디 없이 갈 수 있느냐"며 고인을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낸 안타까운 심경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는 조문객들의 입을 빌려 권 여사가 이날 "36년간 같이 살았는데 어떻게 말 한마디 없이 갈 수 있느냐"며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권 여사는 지난 23일 양산 부산대 병원에서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을 확인한 뒤 실신했었고, 11층 VIP실에서 안정을 취한 뒤 같은 날 오후 4시께 병원을 나와 봉하마을로 돌아왔다.

권 여사는 서서히 안정을 되찾고는 있으나 아직 식사와 물 섭취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며,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안타까운 심경을 주변에 토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은 서거 당일인 지난 23일 아침 함께 등산을 가자던 권양숙 여사를 떼놓고 경호관 1명만 대동해 산에 올랐다.

한편, 25일 새벽 1시 29분께 노 전 대통령의 시신에 염을 하면서 입관식이 시작됐다.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는 입관식은 가족들과 함께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변재진 전 보건복지부 장관·서갑원 민주당 의원·이호철 전 민정수석 등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만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도 빈소를 지키고 있다고 천 전 대변인이 밝혔다.

자정이 2시간여 지난 이 시각 현재까지도 조문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봉하마을은 입김이 나올 정도로 기온이 뚝 떨어진 상태인데도, 조문객이 봉하마을회관 앞 공식분향소에 도착해 조문하기까지 10분 이상이 소요되고 있다. 이날 새벽 0시 10분께 강산에, 윤도현씨 등 문화예술인 10여 명이 조문을 하기도 했다.

play

권양숙 여사 노 전 대통령 입관식 위해 마을회관으로 ⓒ 김호중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