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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신명이시어, 천지신명이시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등록|2009.05.25 13:46 수정|2009.05.25 16:21
'우리는 당신을 버릴 자격이 없습니다 - 김해 노사모'
'이 시대의 기자들은 영혼을 사주에게 팔았다'
'사랑합니다. 힘내세요 - 노란 리본'

23일 격문과 노란 리본이 둘러싼 봉화마을에는 여기저기서 흐느낌이 들리는 중에 조가가 끊임없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조가가 잠시 중단되더니 안내방송이 흘러 나왔다.

"안내말씀 드립니다.  다섯시 반에 고 노무현 대통령의 운구가 양산 부산대병원을 출발하여 여섯시 십분에 봉하마을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사방에서 울음이 터졌다. 마을회관 앞에서는 군중들이 둥그렇게 원을 만들어 모여서는 즉석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국민장은 안된다카이. 이명박이와 검찰, 언론이 죽였다 아입니꺼. 지들이 죽여놓고 장례를 치르겠다니 말이 안되지러."
"장지도 국립묘지는 안됩니더. 이 곳에 모셔 새로운 성지로 만들어 국민들이 가슴에 새기도록 해야 합니더."
"저는 이름없는 민초입니다만 고 노무현 대통령의 철학과 사상을 사랑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이 땅에 너무 일찍 오셨습니다. 백년 뒤에 오셨어야 할 분입니다. 여기 기자들이 많이 있지만 비록 우리들이 힘없는 민초일지라도 우리의 뜻을 밝혀 민중의 힘을 보여 줍시다."

멀리서 헬기가 선회하고 있었다. 운구행렬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운구행렬은 대통령의 것이 아닌 필부의 장례행렬처럼 초라하게 고인이 사랑했던 고향마을에 도착했다.

통곡소리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상공을 낮게 선회하는 세대의 헬리콥터 굉음보다 또렷한 울음소리는 분노가 켜켜이 쌓인 봉하마을을 슬픔으로 덮었다. 운구행렬이 마을회관 안으로 사라지자 눈물 배인 눈으로 멀리 대통령 사저를 바라보았다.

우연일까. 아니면 운명일까.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고향마을 이름이 봉하마을인데 기이하게도 마을의 지형이 봉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사저는 봉이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형상의 머리 부문에 자리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그토록 사랑했던 고향마을 봉의 오른쪽 날개죽지 밑에서 한 생을 접으시고 말았구나.

대통령의 서거는 어떤 의미인가. 법무장관이 갑작스러운 서거에 충격과 비탄을 금할 수 없으며 사망의 원인과 경위를 신속히 국민께 알리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다수 국민들은 냉소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시정잡배 대하듯 한 검찰의 행태를 모르는 국민이 있었던가. 국민들이 이름도 몰랐던 재계의 박연차 회장이란 이도 계좌에 육천만달러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오천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고인을 하찮은 육백만달러의 사나이로 격하시켜버린 검찰이다.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들은 수억달러가 아니었나? 고작 육백만 달러를 가지고 대통령의 가족을 줄 소환하고, 전직 대통령을 소환했다. 육백만 달러의 사용처도 되새겨보면 가슴 아프다. 가난한 대통령 가족을 위하여 아랫사람들이 유학비 등에 보태 쓴 용처 등등.

죄가 있으면 전직 대통령 아니라 현직 대통령도 소환해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법의 정신을 소홀했다. 법의 여신 아스트라이아가 왜 한 손에 저울을 들고 있는가. 법의 공정성과 형평성 때문이다. 검찰은 칼보다 더 중요한 법의 정신을 무시하고 정치검찰로 변신하여 전직 대통령에게만 가혹하고 가혹한 칼을 휘둘렀다. 필부들도 가난은 참을 수 있지만 가난으로 인한 차별은 참을 수 없는 법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한 말씀했다. 좀 더 굳굳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존엄한 생명을 왜 버리느냐는 안타까움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싶지만 광주에서 수천명을 학살한 책임자로서, 수천억 비자금을 은닉한 범법자로서 수감된 행태를 생각하면 오히려 분노가 치솟는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은 가족과 지인들의 고통 해소와 보호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명예와 인간 노무현의 정신을 지키려는 숭고함이 깃들어 있다. 옛 선비들도 이렇게 가르쳤다. 절의정신(節義精神)이 그것이다.

명예와 가치를 지키기 위해 최후로 목숨을 버리는 것. 이것보다 숭엄한 행위가 인간사에 또 있을까. 전두환씨에게 이것들이 있었더라면 수천명을 살상하지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범법자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하여 위의 두 가지에서 극명하게 우리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서거의 의미를 알 수 있으리라.

역사는 우리에게 뭐라 말할 것인가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고인이 남기신 유서의 일 부분이다. 대통령이 서거하셨다는 소식에 울면서 봉하마을 가는 길 내내 분노에 몸을 떨었다. 퇴임 후 농사를 짓겠다고 귀향하신 대통령, 어린 시절 꿈과 추억이 돌맹이 하나 풀 한 포기에도 서려있는 고향에 금의환향한 대통령, 정치에 초연하고 싶어 고향에 내려온 대통령을 끝내 정치적으로 타살해버린 2009년의 내 조국 대한민국.

천지신명이시어, 들으소서! 님의 뜻과 정신을 세세생생 잊지 않게 해주소서. 2002년 노무현을 찍은 일천만의 국민들이 그 때의 희망을 자랑스럽게 간직하도록 해주소서. 그리고 2009년 대통령을 죽게 만든 대한민국의 모든 것들을 잊지 말게 해주소서. 이 땅에 남기신 님의 뜻에 따라 자랑스러운 조국을 만들어가게 해주소서!

천지신명이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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