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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상인들이 문을 걸어잠근 까닭

"장사하면 1년 먹고 사는 거 벌겠지만, 할 수 없죠"

등록|2009.05.26 12:54 수정|2009.05.26 12:55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6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 앞에 마련된 분향소 근처 매점에 자물쇠를 채워 시민들에게 음식을 팔지 않고 있다. ⓒ 유성호


"지금 장사하면 1년 먹고 사는 거 벌겠죠. 그렇다고 할 수 없잖아요."


봉하마을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이 돈 벌기를 접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26일 아침 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초상이 났는데 돈 벌겠다고 문을 열 수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봉하마을에 있는 가게는 10군데 정도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부터 문을 닫았다. 자물쇠가 채워져 있거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노 전 대통령이 귀향한 뒤 봉하마을에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가게들이 생겨났다.

마을 주차장 옆에는 매점도 생겼고, 보리로 빵을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파는 '봉하빵' 가게도 생겼다. 노 전 대통령 사저와 도랑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는 먹을거리를 파는 포장차마가 들어섰다. 이외에 '군고구마'와 '금빛잉어빵'을 파는 가게가 있고, 오뎅과 옥수수, 번데기 등을 파는 가게도 있다. 천막으로 되어 있기도 하고, 작은 집으로 된 가게도 있다.

이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은 것이다.

▲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근처 보리로 빵을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파는 '봉하빵' 가게. 문을 닫았다. ⓒ 유성호



노 전 대통령 귀향 뒤 생긴 가게 10곳, 모두 문 닫아

매점도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지난해 2월 귀향한 노 전 대통령이 탁자에 앉아 담배를 피웠던 가게다. 가게 주인인 백승태씨는 문을 열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장례 준비 등 뒷일을 하고 있다.

닫힌 포장마차 옆에서 매실을 따던 한 주민은 "마을이 이런 데 장사 할 수 있겠능교, 하모 안돼죠"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3일 서거 소식을 듣고부터 장사를 하지 않고 있다, 장례를 다 치른 뒤에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누가 강제로 시켜서 문을 닫은 게 아니고, 모두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방문객들에게 국밥 등을 팔던 '전통테마식당'은 지금 내빈과 장례 일을 맡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식사 제공 자리로 바뀌었다. 일반인들에게 국밥을 팔지 않기에 문을 닫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 봉하마을의 문닫은 음식점. ⓒ 유성호



"인파 몰리는데 노점상 없다는 게 신기"

봉하마을에서 1.5km 가량 떨어져 있는 본산공단 주변에도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없다. 이 구간에는 온종일 많은 인파들이 걷고 있다. 여느 행사장 같으면 노점상이 생겨도 수십 개 생겼을 것이다. 그런데 노점상이 없다.

조문객들은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를 햇볕이 내려 쪼이는데도 걷고 있다. 많은 조문객들은 물을 갖고 걷기도 한다.

한 조문객은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장사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조문객 백광헌(43)씨는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면 장사해도 좋을 것 같다"면서 "마을 안 가게뿐만 아니라 길거리에 노점상이 없는 것도 매우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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