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그의 죽음에 답해야 한다

시골 촌부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벽에 머리를 찧으며 통곡한다

등록|2009.05.26 14:04 수정|2009.05.26 16:30

광해군 묘.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광해군 묘. ⓒ 이정근




제주도에 위리안치 되어있던 광해가 죽었다. 폐주의 사망소식을 접한 조정은 술렁거렸다. 예조판서 이현영과 예조참판 심액이 "광해가 인심을 잃어 폐출시켰으나 상례(喪禮)는 예의 근본이니 정중히 모시자"며 "상(인조)께서 한번쯤 내정에서 거림(擧臨)하시고 백관도 각 아문에서 변복(變服)하고 곡하면 예의에 합당하다"고 주청했다.

이에 좌의정 신경진이 "광해가 천명을 배반하여 모든 신민들에게 버림을 받은 처지인데 관곽(棺槨)을 구비해 주는 것만으로도 골육에 대한 성상의 사은(私恩)을 다했다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며 당치않은 일이라고 깃발을 꽂았다.

대사간 이덕수, 헌납 김진, 정언 이천기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예조에서 백관이 변복(變服)하고 회곡(會哭)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해당 예관을 엄중하게 다스리소서"라고 신경진의 반발에서 한발 더 나갔다. 이에 인조는 예조판서와 참판을 문책하고 도승지 한형길을 보내 광해군에게 치제하게 하였다.

비주류를 팽 시켜라

'잃어버린 15년을 되찾자'며 거사한 서인세력은 임금 광해를 폐위하여 강화도에 위리안치 했다. 인조반정이다. 그들이 내세운 반정(反正)은 뒤틀린 것을 바로 잡자는 것이었다. 즉, 천하의 지존 명나라로 물꼬를 돌리자는 것이었다. 현실론에 입각한 광해의 외교정책은 비주류였다.

조선 사대부들에게 명나라는 존주(尊周)의 대상이었다. 즉, 명나라를 해와 달처럼 떠받들며 세세년년 이어가자는 것이었다. 대명일월 백세청풍(大明日月 百世淸風)이다.

선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광해는 대륙의 지각변동을 감지했다. 천하의 맹주 명나라가 서산에 기울고 오랑캐라 얕잡아보던 여진족이 대륙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는 것을 탐지했다. 명과 후금 사이에 낀 광해는 등거리외교가 생존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수구세력은 용납할 수 없는 정책이었다. 어찌 아버지의 나라 명나라를 배반하고 여진족과 대화를 하느냐하는 것이었다.

군사 쿠데타에 나선 서인세력의 명분 '폐모론'은 그야말로 명분에 불과하고 궁극적인 거사의 당위성은 수구로의 회귀였다. 물론, 광해에게 실정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임진왜란으로 피폐해진 나라를 이끌고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대한문앞 빈소대한문 앞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에 모여든 시민들. ⓒ 이정근



검찰은 소추권을 가지고 있다. 국가를 위해서 쓰라고 국민이 위임한 권력이다. '박연차 다이어리'를 입수한 검찰은 전임 대통령의 형과 부인을 비롯한 아들딸과 측근을 불러들였다. 마침내 장본인을 불러들여 조리를 돌렸다.

죽기로 결단했을 때 얼마나 외로웠을까? 상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온다. 유서를 써놓고 뚜벅뚜벅 봉화산을 오르던 그는 절규했을 것이다. '바보 노무현'이 아니라 '바보 국민들'이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 뿐이다.

시골 아낙이 분에 겨우면 가슴을 치며 울부짖는다. 시골 촌부(村夫)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벽에 머리를 찧으며 통곡한다. 도덕성을 기치로 권좌에 오른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목숨을 끊었다. 그냥 평범한 죽음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머리를 박살내며 척추를 부러뜨렀다. 그의 죽음에 오열만 하는 것은 백성의 도리에서 부족하다. 그의 죽음에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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