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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아줌마들 "세금 올릴 땐 미워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보는 분당 아줌마들의 시선

등록|2009.05.27 11:14 수정|2009.07.10 11:28

▲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야탑역 앞 분향소 ⓒ 김혜원


"이게 무슨 일이에요? 거짓말인 줄 알았어.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나도 그래. 일이 손에 안 잡힌다니까. 애들이 물어보는데 할 말이 없더라구."
"오죽했으면…. 오죽 답답했으면 모진 선택을 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소식에 충격을 받은 듯 이웃 아줌마들의 표정에도 슬픈 기색이 역력합니다.

"대선 때 노무현 후보를 찍지는 않았지만 막상 서거라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먹먹해지는 거 있지."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면서 자꾸 세금만 올릴 땐 미워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인간성으로 보자면 그만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나. 저렇게 대놓고 표적 수사를 하는데 견뎌낼 사람이 어디 있어. 더 큰 도둑놈 더 엄청난 사기꾼들도 멀쩡히 잘 살고 있는데 왜 죽느냔 말이지."

"그만한 사람도 없다 생각했는데..."

▲ 수업을 마친 자녀와 나란히 조문을 하고 있는 조문객 ⓒ 김혜원


사람은 참 이상하지요. 늘 함께 할 때는 잘 알지 못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곁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뒤 늦게 그 사람이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하고, 애틋하며, 안타까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말입니다. 

분당 지역에 살고 있는 제 이웃의 아줌마들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선거 때처럼 정치적인 견해를 물을 경우나 자신들의 자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제에 관한 토론을 할 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격렬하게 비판도 하고 때로는 날 선 비난도 서슴지 않던 그녀들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무거운 직책에서 물러나 봉하라는 작은 마을에서 한 사람의 국민으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전직 대통령도 뵙고 사저도 구경하러 봉하 여행이나 한 번 다녀오자던 사람들이었으니까요.

노무현 대통령과 영부인의 주름제거 수술 뉴스를 듣고 "그 병원 어디인지 그 의사가 누구인지 나도 주름제거 수술 받고 싶다"며 농담을 하던 아줌마들. "대통령 된 지가 벌써 몇 해인데 방송에 나오는 걸 보면 아직도 시골아저씨 태를 못 벗었다"며 대통령은 물론 영부인의 옷차림과 머리 모양을 가지고 한바탕 수다를 떨었던 아줌마들.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입지전적인 인생을 살아낸 사람이라며 은근히 그를 닮길 바라던 아줌마들. 사사건건 이해관계가 맞물리고 사사건건 뭔가는 부족해보여 트집을 잡긴 했지만 어쩌면 그러는 아줌마들 마음 속에도 그에 대한 '미운정'이 자리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서거 이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이웃들

▲ 폭염속에서도 식지 않는 추모 열기 ⓒ 김혜원


"저는 국민장 기간 동안은 검은 옷을 입으려고 해요. 이렇게라도 제 슬픔을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나도 아이들 데리고 야탑역 분향소를 찾으려구요. 분향을 하러 가고 싶어도 너무 멀어서 주저했는데 분당 야탑역에 분향소를 마련했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제 남편은 직업상 대통령들을 근거리에서 모실 기회가 여러 번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번 일이 더 충격적인 모양이더라구요. 그 어떤 대통령들보다 인간적이며 따뜻한 분이셨다고 하더라구요. 저희같은 사람들에게도 연하장을 잊지 않고 꼭 보내주시던 분이셨는데…."

비보를 접한 첫날인 5월 23일부터 지금까지 내가 만난 대부분의 이웃 아줌마들은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고 허전한 마음에 자꾸 한숨을 쉬는 버릇이 생겼다고 합니다.   

오늘 밤엔 아줌마들과 함께 분향소에 들러 그분의 마지막 길에 작은 향 하나 살라드려야 겠다 마음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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