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당신을 지지한 부모님, 이해하지 못했지만...

87년에 태어난 스물 세살의 청년의 수줍은 고백

등록|2009.05.27 15:34 수정|2009.05.27 15:44
저는 87년생입니다. 민주화 운동의 열기 속에서 태어나 지금은 나이 스물 셋의 청년입니다. 저는 당신이 옳고 그른지를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는 당신이 해 온 일, 해 온 말을 아버지와 어머니께 배우며, 지난 2002년 당신을 선택하는 부모님을 지켜봤습니다.

저는 당신의 죽음 앞에 울지 못합니다. 눈물은 나지 않지만, 왜 당신의 죽음이 이토록 안타깝고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그냥 미칠듯이 터질 듯한 이 가슴을 참아낼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막말하는 대통령이라 누군가는 손가락질하며 말했어도, 저는 당신을 선택하신 부모님께 배우며 당신을 지지해온, 아주 어린 학생이었습니다.

당신이 당선되시던 그 해. 중학생인 제 손을 붙잡고 환호하던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당선을 좋아라 하시며, 드디어 "내가 찍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라고 말씀하시던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어도' 살아가는 현실은 똑같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래희망에 '대통령'이라고 적긴 했어도, 그건 너무나 멀리있고, 나와는 전혀 인연도 없는 사람, 살아가는 동안 대통령이 누가 된다한들, 내일 당장 시험을 보고 학원에 가는 이런 현실에서는 말이지요.

당신이 탄핵되던 그 해, 고등학생으로 입시에 시달리던 제게 그 뉴스는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저 사람이 뭘 그렇게 잘못해서 대통령을 그만하라는 걸까?'라는 의문을 가졌었습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학원 선생님조차 뉴스를 보며 분개하셨고, 그날 저녁 부모님께선 TV뉴스를 보시며 크게 화를 내셨습니다. 아버지는 "저 늙은 퇴물들이, 지들 밥줄을 자르려고 하니 대통령을 몰아내려 한다!"라고. 어머니는 "아무리 잘못했다 한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멋대로 내리는 건 안된다"라고요.

내가 믿고 따르는 부모님이 자식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하는데는 이유가 있을 듯했습니다. 그래서 막연히 지금 '탄핵'을 당해 대통령 직무를 하지 못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잘못한 것은 없다는 혼자만의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직에서 내려와서, 소탈한 경상도 사투리와 웃음을 짓는것을 뉴스를 보며, '대통령 노무현'은 내가 잘 몰라도, '사람 노무현'은 참 좋았구나. 내가 우스개로 따라하던 "맞습니다, 맞고요~"를 말하던.

군인으로 삼척의 찬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던 그때, 내일 입대한다는 청년을 끌어 안아주던, 그 사람. 부대 안에 있는 '자이툰부대 화보집'에서, 어느 병사를 와락 끌어안아주시는 당신의 사진을 보며, '일개병사도 끌어 안아줄 수 있는 대통령'도 있구나 싶었는데. 

그런 당신이 떠나고 나서야 저도 당신을 사랑했다는 걸 알아채고야 말았습니다. 소탈하게 웃는 당신의 사진을 보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힘들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저는 가끔씩 당신을 기억하며, 내 자식에게도 "아빠가 어렸을 때 이런 분이 있었단다"라고 얘기하겠지요. 제게는 아무것도 모르던 철부지같은 시절이었지만, 내게 '가장 좋은 대통령'은 돌이켜보니, 제게는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이 제가 살아온 23년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시고자 힘쓰셨던 것을 기억하겠습니다. 앞으로 이 나라에서 계속 살아갈 저와 제 친구들이 당신께서 그토록 외치던, 그토록 만들고 싶어하셨던, 그토록 바라고 꿈꾸셨던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내가 좋아했던 대통령님.
내가 사랑했던 대통령님.
바로 그런 분은 노무현님이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Daum 추모게시판에 유사한 내용의 추모글을 올렸으며, 오마이뉴스 추모게시판 수정한 글을 올렸던것을 내용추가해서 올립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