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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이었던 선생님께 받은 작은 시집 한 권

중학교 졸업날 받았던 선물 잊을수 없네요

등록|2009.05.26 21:11 수정|2009.05.27 10:24
저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어렵사리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입학금도 마감날 가까스로 구해 내고 교복을 못 구해 입어 입학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중학교에 입학하여 다녔습니다.

집안이 어려워 부모님을 도울 요량으로 새벽같이 일어나 신문을 돌렸습니다. 초등학교서부터 줄 곧 돌려온 신문이라 중학교 다니면서도 계속해서 돌리고 있었지요. 중학교는 국민학교랑 많이 달랐습니다. 수업도 많았고 늦게 마쳤습니다. 집에 가서는 또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도와 집안 일을 거들어야 했습니다.

그게 몸에 무리가 간 모양입니다. 중학교 입학하고 두어달 다녔을 때 그만 몸살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그게 안스러워서였을까요. 5월 8일 어버이날 아침 전체 학생 조례에서 무대로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좀 당황스러웠으나 제 이름이 불려지니 아니 나갈 수가 없어서 무대 가까이 나갔습니다.

그날 난생 처음 상이란 것을 받게 됩니다.

"효행상 변창기..."

저 말고도 두 명이 더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전 처음 효행상을 받게 되니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저를 효행상에 추천한 분은 중학교 1학년 당시 담임 선생님이셨던 정성재 선생님이셨습니다. 고맙게도 공부는 늘 꼴찌에다 좀 멍청한 구석이 있는 저에게 정성재 선생님은 효행상을 추천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중학교 3년동안 늘 정성재 선생님을 마음에 품고 학교 생활을 했습니다. 머리가 둔해서 학교 수업 내용은 알아 들을 수가 없었지만 책가방 들고서 학교 가는 일은 꼬박 했습니다. 졸업장이라도 따려구요. 3학년을 마치고 실업계 고등학교 입시를 보았으나 당연히 낙방했습니다. 공부를 못하니 붙을리가 없었겠지요. 그런 저를 위로라도 하듯이 졸업식이 있는날 정성재 선생님이 불렀습니다.

"창기는 앞으로 뭐 할건데"

"잘 모르겠습니다"

정성재 선생님이 불러 찾아간 교무실에서 제게 걱정스러운 듯 간단히 묻고는 서랍을 열더군요. 그리곤 작은 책 한 권을 주었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잘 살라면서...

저는 그 때 괜실히 눈물이 앞서더군요. 지난 3년간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는 저에게 늘 따뜻한 시선으로 염려해 주셨는데 막상 졸업을 앞두고 나니 서글픔이 앞섰습니다. 집에 와 포장지를 뜯으니 <국화옆에서>라는 작은 시집 한 권이었습니다. 지금 그 시집도 어디가고 없습니다. 열심히 살라면서 자필 서명도 되어 있었는데 먹고 살기 바쁜 나머지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몇 년 전 중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이셨던 정성재 선생님은 이승을 떠났습니다. 암에 걸려 힘들게 병원 치료 중에 생을 마감하셨지요. 고등학교 교장까지 역임하시다가 지병을 얻어 그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 선생님게 받은 정성과 선물을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답니다.

선생님, 저승에서나마 잘 계시지요?
덧붙이는 글 <잊을 수 없는 선물> 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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