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노 대통령이 주신 담배 피우는 겁니다"
[取중眞담] 분향소마다 쌓이는 담배들... 담배 피우고 싶게 만드는 저 닭장차들
▲ [미공개 사진] 담화에 관한 회의때 소집무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노무현 대통령 모습. (2007.10.9) ⓒ 고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제공
"한 대, 두 대... 아리랑... 세 대, 네 대..."
2007년 9월 2일 청와대 관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터뷰하면서 적어놨던 기록이다. 인터뷰를 시작한지 얼마 안 돼 그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얼마나 피우는지 세 봤다. 4개비를 넘어가면서 더 세지 않았다. 오찬 그리고 오후까지 계속된 인터뷰 동안 그는 줄담배 수준은 아니었지만, 꽤 많이 피웠다.
그는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해 청와대로 들어가면서 금연에 거의 성공하는 수준까지 갔었다고 한다. 부인 권양숙 여사의 '잔소리'도 많았다. 하지만 집권 후반기로 가면서 거의 예전 수준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얼마 뒤 두 번째 인터뷰를 했다. K-TV에서도 녹화하는 인터뷰였는데, 노 전 대통령은 '당근과 채찍'을 '당군'이라고 하는 등 발음이 꼬였다. 그는 "잠시 쉬자"면서 비서관들에게 담배를 얻어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순간 "뺏어 피우는 담배는 더 많이 피우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대통령 인터뷰라는 부담감이 확 사라졌다. 사실 그 전까지는 인터뷰 상대가 당대 최고의 달변가로 꼽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적지 않게 긴장했었다.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거두기 직전 담배를 찾았으나 피우지 못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분향소마다 담배가 수북이 쌓이고 있다. 유시민 전 장관이 "대통령이 담배 한 대 피우고 가셨더라면 그나마 좋았겠다"며 분향소에 담배를 올려놓은 것이 계기가 됐다.
▲ [미공개 사진] 책을 보다가 휴식하며 담배를 피우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2007.4.27) ⓒ 고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제공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있을 때는 디스나 아리랑을, 봉하마을로 온 뒤에는 다소 순한 클라우드나인을 피웠다.
서울역 앞 분향소에서 만난 유시민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이 부인 권 여사와의 '실랑이' 속에서 담배 피우던 장면을 회상했다.
"권 여사께서 담배 갖고 지청구를 많이 주셨다. 저녁에 우리가 관저에 들어 갈 때면 우리와 어울려서 담배를 피우곤 하셨다. 그러면 권 여사께서 말을 못하니까. 어느 한 날은 우리도 지청구를 들었다. 대통령이 담배를 많이 피우게 만든다고 말이다. 그러다가 권 여사가 나가시면 또 담배를 피우곤 했다."
유 전 장관은 "조문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되기 때문에 나한테 '나중에라도 단에 올려 달라'며 주고 가는 분들이 있다"면서 "내가 담배가 떨어지면 어쩌다 이 담배들을 피우곤 하는데, 결국 노 대통령이 주신 담배를 피우는 거다."
끊은 지 5년 지난 담배가 다시 피우고 싶어졌다. '노무현의 담배' 때문만은 아니다. 저 푸릇푸릇한 시청광장을 '추모장소로 내 줄 수 없다'며 꽁꽁 에워싸고 있는 닭장차들을 보면, 옆 사람의 담배라도 하나 얻어 깊이 빨고 싶다.
▲ 노무현 전 대통령 관저에 있던 담배와 라이터(2007년 1월 28일) ⓒ 'MBC스페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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