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억하는 박물관 건립을 제안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 닷새째 이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열망하고 있었는지 알 것 같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사람 사는 세상"이었음을.
고인은 작은 비석을 하나 세워달라 하셨다. 그리고 화장을, 다시 집 옆에 무덤으로 남고 싶다했다. 우리가 이토록 그가 있어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면 그가 우리를 그토록 행복하게 해 주었다면 그가 어떤 방식이로든 남아 있어야 한다. 그가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그가 남아 있어야 한다. 그의 삶의 행적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억하는 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는 순간 세 사람이 떠올랐다. 하나는 베트남의 민족지도자 호치민, 노동운동가 전태일, 그리고 김구였다. 이들은 한결같이 남을 위해 살다간 사람들이다.
먼저 김구를 보자. 김구의 삶과 노무현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의로움을 지키고 실천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끝내 운명을 달리 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서 더 안타깝지만.
김구는 임시정부의 주요인사들이 다 떠나는 마당에서도 끝까지 임시정부의 주석을 맡아 꿋꿋이 지키며 신탁통치를 반대한 사람, 자기 뜻을 실현하려고 무진 애를 쓴 사람, 권력을 무서워 하거나 두려워 하지 않고 꼿꼿하게 할 말을 다한 사람. 광복이 된 조국에 첫발을 내디딜때도 개인자격으로 돌아와야 했던 환영받지 못한 사람이다.
그런 그를 어느날 총살로 어이없게, 그렇게 잃었다. 그가 이루려 했던 한반도 통일정부는 아직도 어려운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그가 있었기에 우리는 용기를 얻었다. 옳은 것, 옳지 않은 것이 무엇이고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다음으로 전태일을 보자. 노동법에 적힌 대로 실천되지 않은 사회, 그 안의 고통을 스스로 보듬어가면서 새로운 하루 하루를 살고자 했던 사람,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았던 사람. 그가 자신의 몸에 불을 살랐다. 그리고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그 말은 짐승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나 같은 사람 하나 죽어서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그 결의가 오늘날의 노동자들을 있게 했다. 주 5일 근무하는 세상을... 최소한의 권리보장을. 따질 곳이라도 있는 세상을. 전태일은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뭔지, 노동이 뭔지, 인간답게 사는 것이 뭔지를 가르쳐 주었다.
베트남의 지도자, 호치민. 그는 프랑스와 미국, 두 제국을 몰아내고 식민지 조국을 해방시킨 사람이다. 그는 서구의 사회주의를 이용해 민족 민주주의를 구축했다. 가난하기 짝이 없던 나라에서 조국을 구해냈다. 그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베트남 혁명을 위해 두 가지 과업을 해결해야 합니다. ... 두 가지 과업의 목표는 동일합니다. 평화를 공고히 하고 독립과 민주주의에 기초하여 통일의 길을 닦는 것입니다."
호치민은 목표가 분명했다. 그리고 '우리형제' 간 단결에 최선을 다했다.
"현실은 풀어야 할 문제이며 세상의 모순입니다. ..진정한 삶은 위대합니다. 이는 개인의 생각과 활동에서 얻은 경험, 당의 정책과 노선, 국내외 당의 역사적 경험과 교훈을 모두 담아냅니다. 이 모두가 학습을 통해 잊지 말아야 할 현실이 됩니다."
프랑스와 합의한 내용에 대해 반대하는 국민들을 조용히 설득한다.
"나는 조국을 배반하느니 차리라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프랑스군은 베트남에서 철수할 것입니다. 우리 동포는 냉정을 유지하고, 규율을 지켜야 하며, 통일과 단결을 강화해야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보여주기 위해 목숨을 던진 것일까? 호치민은 평생 근면, 검소, 정의, 성실을 덕목으로 삼고 살았다고 한다. 아마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렇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늘 당당할 수 있지 않았을까? 스스로 자신의 양심의 잣대가 있었으니까 그리 살았지 않았을까? 그가 그리도 꼿꼿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지켜보는 ' 내 안의 자신'이 한 점 부끄럼이 없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호치민은 독립기념일에 서거하면서 남긴 유서에 이렇게 적었다.
"일생동안 저는 몸과 마음을 다해 조국과 혁명, 그리고 인민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더 오랫동안 더 많이 봉사할 수 없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어떤 후회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저의 무한한 사랑을 남깁니다. "
행복한 떠남이다. 그런 지도자를 만난 베트남은 참 행복한 나라다. 그 국민들도 참 행복했겠다 싶다. 슬프게 어느날 갑자기 보내야 하는 전 대통령 노무현이 우리에게도 있다. 그가 호치민처럼 멋진 여생을 마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서거는 우리에게 커다란 숙제를 안겨주었다. '원망하지 말것'.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호치민이 사람들에게 추모하는 방법을 일러준다. 실로 소박하고 정겹다. 기억하고 추모하는 길을. 마치 저 세상에서 지켜보기라도 하듯.
"내 시신은 화장하고, .. 무덤에는 비석도 동상도 세우지 말라. 다만 넓고 튼튼하며 통풍이 잘되는 집을 하나 세워 방문객들이 쉬어가게 하는 것이 좋겠다. 그 방문객들이 추모의 뜻으로 한두 그루 씩 나무를 심는다면 세월이 지나 그 나무들이 숲을 이룰 것이다."
'바보 노무현'이 꿈꾼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이렇게 사람들이 쉬어가면서 이야기를 들려줄 나무 숲이 아니었을까? 그 숲에서 평화롭게 지내는 우리들이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삶과 죽음이 하나인 것을 스스로 깨닫고 열심히 오늘을 살라는 것은 아닐까?
호치민, 그가 떠난 뒤 그의 도시가 생겨났다. 사이공은 '호치민시'로 불렸다. 그리고 기억한다. 그의 아름다운 사랑과 봉사했던 그 자세를.
노무현, 그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를 어떻게 다시 볼수 있을까? 그가 던진 숙제가 또 뭔가?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방법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바보 노무현'을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 현실을 사는 우리들을 위해서다. 기념관이든 박물관이든, 그의 별명을 딴 노간지든. 이름보다 그를 우리 곁에 두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만ㄷ드는 소박한 그리고 정겨운 곳. 그와 숨쉬고 싶다. 그곳에는 노무현을 닮은 사람들, 노무현과 다투었던 사람들도,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도 모두 하나가 되는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다. 용서와 진정한 사랑이 움트는 그런 '사람사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믿을 만한 세상', '살고 싶은 나라, 대한민국', '약속'이 지켜지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비석에는 이 말을 넣고, 봉화마을은 '바보 마을'로 바꾸고, 그가 다니던 산책로는 '바보 길'로, 그가 마지막 머물던 바위는 '바보 바위'로, 그런 '바보'가 남겨준 '사람사는 세상'을, '바보' 닮은 '바보'들이 무수히 이 땅을 일궈가는 그런 곳이 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
고인은 작은 비석을 하나 세워달라 하셨다. 그리고 화장을, 다시 집 옆에 무덤으로 남고 싶다했다. 우리가 이토록 그가 있어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면 그가 우리를 그토록 행복하게 해 주었다면 그가 어떤 방식이로든 남아 있어야 한다. 그가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그가 남아 있어야 한다. 그의 삶의 행적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억하는 길이다.
먼저 김구를 보자. 김구의 삶과 노무현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의로움을 지키고 실천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끝내 운명을 달리 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서 더 안타깝지만.
김구는 임시정부의 주요인사들이 다 떠나는 마당에서도 끝까지 임시정부의 주석을 맡아 꿋꿋이 지키며 신탁통치를 반대한 사람, 자기 뜻을 실현하려고 무진 애를 쓴 사람, 권력을 무서워 하거나 두려워 하지 않고 꼿꼿하게 할 말을 다한 사람. 광복이 된 조국에 첫발을 내디딜때도 개인자격으로 돌아와야 했던 환영받지 못한 사람이다.
그런 그를 어느날 총살로 어이없게, 그렇게 잃었다. 그가 이루려 했던 한반도 통일정부는 아직도 어려운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그가 있었기에 우리는 용기를 얻었다. 옳은 것, 옳지 않은 것이 무엇이고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다음으로 전태일을 보자. 노동법에 적힌 대로 실천되지 않은 사회, 그 안의 고통을 스스로 보듬어가면서 새로운 하루 하루를 살고자 했던 사람,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았던 사람. 그가 자신의 몸에 불을 살랐다. 그리고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그 말은 짐승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나 같은 사람 하나 죽어서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그 결의가 오늘날의 노동자들을 있게 했다. 주 5일 근무하는 세상을... 최소한의 권리보장을. 따질 곳이라도 있는 세상을. 전태일은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뭔지, 노동이 뭔지, 인간답게 사는 것이 뭔지를 가르쳐 주었다.
베트남의 지도자, 호치민. 그는 프랑스와 미국, 두 제국을 몰아내고 식민지 조국을 해방시킨 사람이다. 그는 서구의 사회주의를 이용해 민족 민주주의를 구축했다. 가난하기 짝이 없던 나라에서 조국을 구해냈다. 그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베트남 혁명을 위해 두 가지 과업을 해결해야 합니다. ... 두 가지 과업의 목표는 동일합니다. 평화를 공고히 하고 독립과 민주주의에 기초하여 통일의 길을 닦는 것입니다."
호치민은 목표가 분명했다. 그리고 '우리형제' 간 단결에 최선을 다했다.
"현실은 풀어야 할 문제이며 세상의 모순입니다. ..진정한 삶은 위대합니다. 이는 개인의 생각과 활동에서 얻은 경험, 당의 정책과 노선, 국내외 당의 역사적 경험과 교훈을 모두 담아냅니다. 이 모두가 학습을 통해 잊지 말아야 할 현실이 됩니다."
프랑스와 합의한 내용에 대해 반대하는 국민들을 조용히 설득한다.
"나는 조국을 배반하느니 차리라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프랑스군은 베트남에서 철수할 것입니다. 우리 동포는 냉정을 유지하고, 규율을 지켜야 하며, 통일과 단결을 강화해야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보여주기 위해 목숨을 던진 것일까? 호치민은 평생 근면, 검소, 정의, 성실을 덕목으로 삼고 살았다고 한다. 아마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렇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늘 당당할 수 있지 않았을까? 스스로 자신의 양심의 잣대가 있었으니까 그리 살았지 않았을까? 그가 그리도 꼿꼿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지켜보는 ' 내 안의 자신'이 한 점 부끄럼이 없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호치민은 독립기념일에 서거하면서 남긴 유서에 이렇게 적었다.
"일생동안 저는 몸과 마음을 다해 조국과 혁명, 그리고 인민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더 오랫동안 더 많이 봉사할 수 없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어떤 후회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저의 무한한 사랑을 남깁니다. "
행복한 떠남이다. 그런 지도자를 만난 베트남은 참 행복한 나라다. 그 국민들도 참 행복했겠다 싶다. 슬프게 어느날 갑자기 보내야 하는 전 대통령 노무현이 우리에게도 있다. 그가 호치민처럼 멋진 여생을 마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서거는 우리에게 커다란 숙제를 안겨주었다. '원망하지 말것'.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호치민이 사람들에게 추모하는 방법을 일러준다. 실로 소박하고 정겹다. 기억하고 추모하는 길을. 마치 저 세상에서 지켜보기라도 하듯.
"내 시신은 화장하고, .. 무덤에는 비석도 동상도 세우지 말라. 다만 넓고 튼튼하며 통풍이 잘되는 집을 하나 세워 방문객들이 쉬어가게 하는 것이 좋겠다. 그 방문객들이 추모의 뜻으로 한두 그루 씩 나무를 심는다면 세월이 지나 그 나무들이 숲을 이룰 것이다."
'바보 노무현'이 꿈꾼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이렇게 사람들이 쉬어가면서 이야기를 들려줄 나무 숲이 아니었을까? 그 숲에서 평화롭게 지내는 우리들이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삶과 죽음이 하나인 것을 스스로 깨닫고 열심히 오늘을 살라는 것은 아닐까?
호치민, 그가 떠난 뒤 그의 도시가 생겨났다. 사이공은 '호치민시'로 불렸다. 그리고 기억한다. 그의 아름다운 사랑과 봉사했던 그 자세를.
노무현, 그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를 어떻게 다시 볼수 있을까? 그가 던진 숙제가 또 뭔가?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방법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바보 노무현'을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 현실을 사는 우리들을 위해서다. 기념관이든 박물관이든, 그의 별명을 딴 노간지든. 이름보다 그를 우리 곁에 두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만ㄷ드는 소박한 그리고 정겨운 곳. 그와 숨쉬고 싶다. 그곳에는 노무현을 닮은 사람들, 노무현과 다투었던 사람들도,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도 모두 하나가 되는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다. 용서와 진정한 사랑이 움트는 그런 '사람사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믿을 만한 세상', '살고 싶은 나라, 대한민국', '약속'이 지켜지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비석에는 이 말을 넣고, 봉화마을은 '바보 마을'로 바꾸고, 그가 다니던 산책로는 '바보 길'로, 그가 마지막 머물던 바위는 '바보 바위'로, 그런 '바보'가 남겨준 '사람사는 세상'을, '바보' 닮은 '바보'들이 무수히 이 땅을 일궈가는 그런 곳이 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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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호치민, 식민주의를 타도하라>, 프레시안 북, 2007
<호 아저씨 호치민>, 이룸,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