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잘못 쓴 겹말 손질 (64) 가끔과 간혹

[우리 말에 마음쓰기 652] '우습게 보기'와 '냉소'

등록|2009.05.28 11:14 수정|2009.05.28 11:14
ㄱ. 가끔, 간혹

.. 요컨대 背景이라 하는 것은 선택할 필요가 있으니 간혹 健築物이나 나무 等으로 背景을 삼을 때가 가끔 있으므로 ..  《신락균-사진학개론》(중앙대학교출판사,1928/1977) 245쪽

'요(要)컨대'는 '이를테면'이나 '그러니까'로 손보고, "背景이라 하는 것은"은 "배경은"이나 "뒷모습은"으로 손보며, "선택(選擇)할 필요(必要)가 있으니"는 "써야 할 때가 있으니"나 "넣어야 하는 자리가 있으니"로 손봅니다. '等'은 '들'이나 '따위'로 손질합니다.

 ┌ 간혹(間或) : 어쩌다가 띄엄띄엄
 │   - 간혹 있는 일 / 그의 소식이 간혹 들려온다
 │
 ├ 간혹 (무엇)으로 背景을 삼을 때가 가끔 있으므로
 │→ 가끔 (무엇)으로 배경을 삼을 때가 있으므로
 │→ (무엇)으로 배경을 삼을 때가 가끔 있으므로
 └ …

어떤 일이 '드물게' 있기도 한다는 대목을 힘주어 말하고 싶어서, 앞에서 '간혹'을 쓰고, 뒤에서 '가끔'을 붙였을까 궁금합니다. 앞에 쓰인 '간혹'을 덜고 '어쩌다가'나 '때때로'나 '띄엄띄엄'을 넣어 볼 수 있기는 있지만, 이렇게 넣는다 해도 글흐름은 영 얄딱구리합니다. 앞이나 뒤에 '가끔'을 한 번만 넣을 때가 한결 낫습니다.

보기글을 통째로 고쳐써 봅니다. "그러니까 뒤에 찍히는 모습은 잘 골라야 하니, 집이나 나무 따위가 뒤에 나오도록 할 때가 가끔 있으므로"쯤으로. 또는, "그러니까 뒤에 나오는 모습은 잘 골라 주어야 하니, 때때로 집이나 나무가 뒤에 찍히도록 할 때가 있으므로"쯤으로.

 ┌ 간혹 있는 일 → 가끔 있는 일 / 어쩌다가 있는 일 / 때때로 있는 일
 └ 그의 소식이 간혹 들려온다 → 그 사람 소식이 띄엄띄엄 들려온다

국어사전을 다시금 뒤적입니다. '어쩌다가'나 '띄엄띄엄'을 뜻한다고 하는 한자말 '간혹'입니다. 이 낱말은 말뜻 그대로 '가끔' 쓰입니다. 자주 쓰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한자말을 가끔이나마 써 주어야 할까요. 우리는 이러한 한자말 없이는 가끔가끔 우리 뜻을 나타내기가 힘이 들까요. '간혹'처럼 알맞춤하게 느낄 낱말이 없고, '간혹'이 아니고서는 우리 느낌을 드러낼 수 없을까요.

 ┌ 가끔 (o)
 └ 가끔씩 (x)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가끔'이라고 하는 낱말 뒤에 '-씩'을 잘못 붙이곤 합니다. '이따금' 또한 이렇게만 적어야 올바르지만 '이따금씩'처럼 잘못 쓰는 모습을 곧잘 봅니다. 우리 말은 우리 말답게 쓸 줄을 모르면서, 우리 말은 한켠으로 밀어젖히고 한자 껍데기를 입힌 낱말을 즐겨쓴다고 해야 할까요.

우리 국어사전은 우리가 알뜰살뜰 즐겁게 쓸 낱말을 넉넉히 담아내는 말그릇 노릇을 하는 한편, 우리가 우리 말을 엉터리로 쓰는 일이 없게끔 살포시 이끄는 길동무 구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간혹'이 아닌 '가끔'임을 밝혀 주고, '가끔씩'처럼 엉터리로 쓰지 않게끔 다스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ㄴ. 우습게 보고 냉소했지만

.. 10년 전만 해도 과학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군부에서 하는 일 따위를 우습게 보고 냉소했었지만, 1960년이 되니, 미국의 이름있는 한 대학은 국방비의 4000만 달러 이상을 ..  《랠프 랩/표문태 옮김-핵전쟁》(현암사,1970) 39쪽

"10년(年) 전(前)만 해도"는 "열 해 앞서만 해도"로 손봅니다. "거의 대부분(大部分)"은 겹말이군요. "거의 모두"로 고칩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이 겹말인 줄 깨닫는 분은 얼마나 될까 궁금하군요. 한자말 '대부분' 뜻이 바로 "거의 모두"입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처럼 적으면 "거의 거의 모두"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미국의 이름있는 한 대학"은 "미국에서 이름있는 어느 대학"이나 "미국에서 이름난 대학"으로 손보고, "국방비의 4000만 달러 이상(以上)을"은 "국방비에서 4000만 달러도 넘는 돈을"로 손봅니다.

 ┌ 냉소(冷笑) : 쌀쌀한 태도로 비웃음
 │   - 냉소를 머금다 / 냉소를 짓다 / 냉소에 찬 목소리
 │
 ├ 우습게 보고 냉소했지만
 │→ 우습게 보았지만
 │→ 차갑게 보았지만
 │→ 찬웃음을 보냈지만
 └ …

비웃음을 한자로 옮기니 '냉소'입니다. 다른 우리 말로는 '찬웃음'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말, '비웃음'과 '찬웃음' 말고 '웃다'라 말해도, 달가이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 냉소를 머금다 → 비웃음을 머금다 / 찬웃음을 머금다
 ├ 냉소를 짓다 → 비웃음을 짓다 / 비웃다
 └ 냉소에 찬 목소리 → 비웃음에 찬 목소리

생각해 보니, 이 보기글에서 겹치기로 "우습게 보고 냉소했지만"처럼 적으려고 했던 까닭은, "우습게 보고 손가락질했지만"이나 "우습게 보고 나무랐지만"이나 "우습게 보고 머리가 돌았다고 여겼지만"처럼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글쓴이가 저도 모르게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말았을 뿐이 아니랴 싶고, 이런 대목은 책을 펴낸 엮은이가 가다듬어 주었어야 하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다만, 보기글을 실은 책은 1970년에 나왔고, 모르는 노릇이지만 그때만 하더라도(요즈음도 다를 구석이 없기는 하지만) 우리 스스로 알맞게 추스르지 못하는 겹말 씀씀이는 거의 생각도 못한 일이 아니었으랴 싶습니다. 옛글을 놓고 이제 와서 따지는 일이란 부질없는 일 같고, 쓸데없는 일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전 책에 적힌 글이라 하여도, 사람들은 이 책을 도서관에서 찾아 읽습니다. 또, 이 책이 여느 문학작품이었다면 교과서에 실릴 수 있으며, 한국문학전집이니 무어니 하는 이름으로 앞으로도 얼마든지 '예전에 적힌 글투 그대로' 다시 찍혀 읽힐 수 있습니다.

2000년대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가 쓰는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하루로 그치는 글이 아닙니다. 앞으로 2050년이나 2100년에도 이어질 수 있는 글입니다. 우리 모두 죽고 사라진 2200년이나 2300년 뒷사람들이 오늘 우리가 쓴 글을 읽고 배우면서 '그무렵 사람들 말씀씀이로 퍼져 나갈' 수 있어요.

바로 오늘 이곳에서 우리들 누구나 알맞고 살갑고 싱그러우며 아름답기까지 한 매무새로 글을 쓴다면야, 2300년이 되건 2500년이 되건 걱정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글매무새는 어떠합니까. 우리들 말매무새는 어떠하지요. 2500년이 아닌 2050년 뒷사람한테 내보일 수 있을 만큼 떳떳합니까. 아니 2015년 뒷사람한테 선보일 수 있도록 따뜻하고 알차고 아름답습니까.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