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해서 미안합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생애를 되돌아보니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요
▲ 강혁이와 남혁이에게도 바보 대통령이 있어야 할 텐데... ⓒ 박미경
그랬습니다. 나는 당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봉하마을에서 전국 각지에 차려진 분향소에서 당신의 죽음을 애도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 앞서 그들이 왜 그리 서럽게 울까 궁금했습니다. 친구도 친척도 가족도 아닌데 무에 그리 슬프다고 그리 우는지...
그런데 당신을 영원히 보내기 하루 전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그냥 하염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영결식을 하루 앞두고 전남 화순에서 열린 추모제에 참석해 당신의 생전 모습을 담은 추모영상을 보면서 당신이 얼마나 치열하게 없는 자들을 위해 일했는지 곱씹게 됐습니다.
대한민국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을 위해 그리고 원칙과 소신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며 싸웠는지 다시금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고, 흔히 말하는 든든한 '빽'도 없기에. 그리고 당신 역시 가진 것 없었고, 배운 것도 없었고, 든든한 '빽'도 없었기에 당신은 없는 자들의 슬픔을, 서러움을 그리 잘 알고 없는 우리를 대신해 그리 치열하게 사셨나 봅니다.
그런데 당신의 그 마음을 너무 늦게 알아 버렸네요. 당신과 같은 세상에서 숨을 쉬며 살때는 몰랐는데 당신이 떠나시고 나니 당신이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얼마나 눈물겹고 힘겹게 싸웠는지 이제야 알게 되네요.
당신을 두고 흔히 '바보'라고 부릅니다. 권력과 기득권층과 타협했다면 좀더 쉽고 편안한 정치생활을 했을 텐데 그러지 못한 바보.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고 그 잘난 빽이 없어도 능력있는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없는 이들의 편에 서서 정의를 외쳤던 바보.
대통령으로 일할 때는 일을 못한다고 온갖 싫은 소리를 다하더니 그만 두고 나니 잘했다고 고향까지 찾아와 인사한다며 환하게 웃던 바보, 바보, 바보...
검찰이 당신을 향해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며 찌를 때 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죄가 있으니까 그러겠거니 생각했지요. 사방에서 당신을 성토하고 비난할 때 당신 역시 다른 이들과 다름없었다며 실망했습니다.
흘러나오는 설들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아볼 생각도 않고 당신을 의심하고 손가락질했습니다. 당신 역시 다른 이들과 다름없다며, 그럴 줄 알았다며 마음속으로 당신을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무거운 짐을 벗어 놓고 한낱 촌부로 살아가려는 당신을 향해 날카로운 칼날을 겨눌때 저는 당신을 지켰어야 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세상사람 다 아는 훨씬 더 크고 무거운 죄를 지은 자들에게 무한한 자비를 베풀면서 당신에게만은 왜 그러는 것이냐고 소리를 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니 못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아마도 당신 역시 다른 이들과 같은 부류일 거라고 마음 속으로 단정지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당신을 외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고 없으면 말고 식의 표적수사로 검찰이 당신을 향해 칼날을 겨눌 때 당신을 위해 목소리를 냈어야 했는데 당신을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당신을 향해 날카로운 칼날을 겨누지 말라고 외쳤어야 했습니다. 죄가 있고 없고를 떠나 당신이 우리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누구들과는 달리 당신 주머니 챙기지 않고 가진 것 없고 빽없는 우리를 위해, 우리들의 미래를 위해 원칙과 소신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했음을 기억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외면했습니다. 당신의 죽음은 당신을 지켜주지 못한 나의 탓인지도 모릅니다. 아마 그럴겁니다. 당신이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할 때 곁에 있어 주지 못하고, 힘이 되어 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국민이 대통령이라며 섬긴 당신을 외면해서 미안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폭도로 몰아 죽음으로 몰아넣고서도 아무 일도 없는 양 고개들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데... 수백억원, 수천억원을 꿀꺽하고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도 많은데, 왜 당신은, 왜 당신에게만은 그리 가혹했던 건지...
그런데도 허허 웃던 당신은 참 바보입니다. 촌부로 살아가고픈 당신을 가만두지 않고 온갖 생채기를 낼 때도 힘이 되어주지 않는 우리를 원망하지 않고 해맑은 웃음을 짓던 당신은 바보입니다.
당신의 도덕성이 흠집 났다며 우리더러 당신을 버리라고 외친 당신은 바보입니다. 하지만 그 외침속에서 당신은 당신이 섬기던 그들에게 버림 받기 전에 스스로 떠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당신이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아파할 때 그 아픔도 모르고 당신 곁에서 힘이 되어 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당신이 영영 우리 곁을 떠나고 나서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울먹이는 우리는 정말 바보입니다.
그런 바보들을 위해서 그렇게 힘들게 권력에 맞서고 언론에 맞서며 힘들게 힘들게 세상을 살았던 당신을 지켜주지 못하고 힘이 되어 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며 화순에도 분향소가 마련됐습니다. 분향소에는 어른이며 아이며 할 것없이 찾아와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니 기쁘신가요?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우리를 두고 혼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시니 마음이 가벼우신가요? 당신이 밉습니다. 그렇게 홀연히 떠나서 당신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게 만드는 당신이 밉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자꾸만 하염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바보인 당신을 지켜주지 못해서, 바보인 우리를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싸워 준 바보 당신을 지켜 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미안해서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 당신같은 바보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까봐 슬퍼서 눈물이 납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당신을 믿어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당신을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당신을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정말 미안합니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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