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경북 구미에도 조기가 걸렸습니다

지난 7일 동안 말 한마디 하지 못한 못난 사람이 띄웁니다

등록|2009.05.29 20:15 수정|2009.06.01 15:56
지난 7일 동안 말 한마디 하지 못한 못난 사람이기에 더욱 미안했습니다. 지난 23일 당신이 한 점 붉은 꽃으로 가신 날, 처음 올라온 인터넷뉴스를 보면서 너무나 놀라고 가슴이 떨렸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누군가가 '오보'로 잘못 내보낸 뉴스가 아닌가? 내 눈을 의심하면서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차츰 사실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일하다가 이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신지 고작 한 해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당신이 겪어야 했던 그 아픔과 힘들었을 몇 날들이 그토록 견디기 힘들어 그리 힘겹게 가야만 했는지 그저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이곳에서 임을 평가하는 몹쓸 편견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저한테 투표권이 주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 나라의 일꾼들을 뽑을 때마다 나름대로 소신껏 투표를 했습니다. 때론 안 될 줄 뻔히 내다보이는 사람들을 제 생각과 뜻에 맞게 뽑았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분들은 보기 좋게 선거에 떨어지곤 했지요. 불 보듯 뻔한 열매라는 걸 너무나 잘 알면서도 말입니다. 남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사는 이곳에선 덮어놓고 몰표를 던지는 걸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봐왔습니다.

미안합니다

'조기'를 달다경북 구미시... 오늘 아침(27일) 일터로 나오면서 조기를 단 집을 두어집 봤습니다. 참 남다르게 다가왔습니다. ⓒ 손현희





어쩌면 지금까지 너무나 한쪽으로만 당신을 보고 듣고 평가했는지 모릅니다. 그랬다는 걸 너무나 어리석게도  당신이 붉은 꽃으로 떨어진 그날 뒤로 알게 되었습니다. 방송으로 뉴스기사로 당신을 다시 만나면서부터 조금씩 눈이 뜨였습니다. 귀가 열렸습니다. 마음이 열렸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가장 낮은 이들과 함께하려 했고, 그들을 먼저 생각했고, 이 땅에 널리 퍼진 권위주의, 지역주의를 깨부수려고 그토록 애썼다는 사실을 이렇게 뒤늦게야 깨달았습니다. 그러기에 앞서는 언제나 당신이 한 일을 얘기할 때마다 늘 원망부터 했습니다. 하다 못해 당신이 대통령으로 일하실 때, 탄핵 이야기가 나왔을 때에도 마땅하다고 여겼던 사람이었습니다. 유시민 전 장관이 울부짖으며 외칠 때에도 도리어 그 모습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말로 흥한 자, 말로 망한다고….'

한 나라의 대통령이 너무나 가볍게 말한다고 속상해서 화를 내며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못난 제가 딱 한 번, 당신이 한 일을 참 잘했다고 여기며 칭찬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당신이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고향땅 봉하로 내려갔을 때엔 참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보통 서울에서 궁궐 같은(?) 집을 지어놓고 살고 있는 다른 전직 대통령만 봐왔는데, 참 소박하게도 고향 땅에 내려가서 일반 시민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는 '어, 저런 건 참 잘하는 일이다. 생각이 바른 사람이네'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으로 있을 때엔, 그리도 욕을 많이 먹더니 고향땅으로 내려가 일반 시민으로 돌아간 당신을 보면서 나 말고도 많은 이들이 칭찬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요. 그 뒤로 당신을 바라보는 눈길이 조금은 누그러졌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뇌물수수'니 뭐니 하면서 돈과 얽힌 이야기가 나오면서 실망을 했습니다.

언젠가 유시민 전 장관이 "국민들은 언론이라는 창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하지만 그 창이 비뚤어져 있다면 국민들의 눈도 비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던가요? 잘한 일보다도 못한 일이 더 눈에 띄는 법이고, 남의 말은 나쁜 것만 더 돋보이게 하는 게 우리네 못난 버릇이었습니다. 때때로 비뚤어진 '언론'이 전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좋은 것보다도 나쁜 것을 더 많이 봐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운 님이시여! 미안합니다





조기를 달다또 다른 한 집에서 '조기'를 단 걸 봤습니다. 그들이 국기를 내걸면서 슬픔을, 전 대통령을 보내는 예의를 갖춘 마음을 읽었습니다. ⓒ 손현희



당신이 꽃잎으로 떨어진 뒤 7일 동안 모든 뉴스를 눈여겨봤습니다. 가장 낮은 이들과 늘 함께하고,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그들 편에 서서 대신 말하던 모습들이, 또 누구보다도 여리고 착한 맘씨 때문에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도 봤습니다. 모든 어려운 환경을 딛고 당당하게 소신대로 일하고 말했던 당신을 봤습니다. 또, '대통령님', '~께서'라는 말도 하지 말라고 부탁하셨던 당신을 봤습니다.

평범한 서민들이 당신에게 위로받고 용기를 얻었던 이야기들을, 또 그 모습들을 떠올리며 소리 내어 울부짖고 끝없이 눈물 흘리며 슬퍼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넋을 기리며 먼 길 마다않고 봉하까지 가서 임과 함께하는 이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걸 보면서 고운 님, 당신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직 대통령 중에서 당신 말고 이처럼 온 국민이 슬퍼하고 몇 날 며칠 동안 자리를 지키며 함께한 경우가 있을까요? 앞서도 없었고, 몰라도 이 뒤에도 또 없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오늘 아침, 일터로 나오는 길에 내가 사는 이곳 경북 구미 땅에도 '조기'가 걸린 걸 봤습니다. 그것도 두 집이나 봤습니다.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얼굴은 모르지만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가신 날부터 오늘 아침 마지막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당신을 나무라며 비웃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참으로 못난 사람이지요. 당신이 마지막 떠나는 영결식 장면을 인터넷으로 소리를 죽여 놓고 봐야 했습니다. 그저 아프고 슬픈 눈물만 소리 없이 흘리면서 말이지요.

고운 님이시여! 너무나 미안합니다

이제 편안하게 가십시오. 당신을 비웃고 욕하던 소릴랑 모두 이승에 떨쳐놓고, 그보다도 사랑하는 이들이 더 많았음을 기억해주십시오. 당신이 그토록 깨부수려고 했던 '권위주의', '지역주의', 그리고 당신이 꿈꿨던 '서민이 잘 사는 나라', 이 모든 것은 남은 이들의 몫이니 아마도 꼭 이뤄낼 것입니다.

부디 편안하게 쉬십시오. 뒤늦게나마 당신 같은 대통령이 일꾼으로서 힘써 일하고 온 마음을 바쳤던 이 땅에서 백성으로 살았다는 게 참으로 행복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미안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2009년 5월 29일

고운 님 마지막 가시는 길에 못난 사람이 띄웁니다.
덧붙이는 글 <A title=http://www.eyepoem.com/ href="http://www.eyepoem.com/" target=_blank>뒷
이야기, 자전거 길 안내와 더욱 많은 사진은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http://www.eyepoem.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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