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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노란풍선이 지나가네"

좀처럼 실감할 수 없었던 노무현의 죽음

등록|2009.05.30 15:34 수정|2009.05.30 15:34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이 열릴 예정인 29일 오전 노사모 등이 내건 노란 풍선이 덕수궁~세종로 구간에 빽빽히 걸려있다. ⓒ 김환


노무현은 결코 스스로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일주일 전 그가 벼랑에서 투신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전혀 믿을 수가 없었다. 봉하마을과 전국 각처 분향소에 조객이 산더미처럼 몰려간다는 뉴스를 보면서도 나는 그가 죽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의 유해가 봉하마을을 떠나 고속도로를 달릴 때에도, 그리고 국민장이라는 이름의 영결식이 진행될 때에도 나는 그의 죽음이 믿겨지지 않았다.

영결식이 끝나갈 무렵 나는 무작정 집을 나와 연화장으로 차를 몰았다. 예상했던 대로 차량 통행이 통제되고 있었다. 차를 인근 아파트 아무 곳에나 버리고 걸었다. 정말 노무현은 죽은 것일까? 뙤약볕 아래 황톳길을 걸으며 나는 이런 바보 같은 생각에 잠겨들었다.

"노무현의 죽음은 이 세상 다른 모든 사람들의 죽음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어제 내 친구는 노무현의 죽음을 이렇게 역설적으로 예찬했지만 나는 그 말을 들고도 노무현이 죽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또한 "세상에 화려한 죽음도 있단 말인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했거늘"이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것 역시 하지 않았다.

정말 이럴 수는 없는 것인데...

주변 공사장에서 일으키는 황토먼지들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나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뒤돌아섰다. 어깨에 노란 띠를 두른 아주머니 한 분이 내 뒤를 따르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네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연화장 가시는 겁니까?"
"네."
"노사모 회원이세요?"
"아니에요. 우리 며느리와 아들이 꼭 가보라고 해서..."

그네는 아들보다 며느리를 먼저 거명했다. 나는 노무현 조문객 중에 20,30대 여성이 많았다는 점을 떠올렸다. 내가 묻지 않았는데도 그네는, 아들은 직장에 갔고 며느리는 출산한 지 며칠밖에 안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정말 이럴 수는 없는 일인데..."

나와 나란히 걷다가 그네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그리고 내 동의를 구한다는 듯이 말했지만 나는 아무런 응대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가슴 깊은 곳에서 미세한 통증 같은 게 일었기 때문이었다.

연화장 입구에 다다랐다. 조문객도 많았지만 경찰도 적지 않게 있었다. 길가 나무마다 노란 리본과 노란 풍선들이 바나나농장의 바나나들만큼이나 많이 매달려 있었다. 사이사이 펼침막(플래카드)들이 내걸려 있었다.

- 바보만이 이 삭막한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 당신을 노동자 서민의 대통령으로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 할아버지 불속에 꼭 들어가야 돼? ㅠ ㅠ

나는 플래카드들에서 눈을 거두고 그 너머 숲을 보았다. 세상에 심금을 울리는 플래카드는 없다. 그것은 노무현의 것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기이하게도 숲속에 낡은 자전거 한 대가 버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노란 풍선 하나가 뒹굴고 있었다. 나는 봉하에서 자전거를 타던 할아버지와 뒤에 딸려가던 손녀의 그림이 떠올랐다.

무수히 많은 노란 리본과 노란 풍선들, 그리고 경찰도 갈수록 많아졌다. 나는 '추모의 집' 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인파 속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젊은이가 있었다. 선글라스를 쓴 그는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사법부 자폭' '언론 자폭'이라고 쓴 구호가 적혀 있었다. 아내인 듯한 여인이 사뭇 엄숙한 그에게 물을 건네는 장면을 보고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은 것 같다.

기왕이면 사진도 한 장 찍어주시지요 

승화당, 저곳에서 노무현이 화장될 거라고 한다. 다시 와 보기로 하고 나는 발길을 돌려 분향소로 가 보았다. 분향은 20명 단위로 진행되고 있었다. 검은 정장에 삼베 완장을 두른 젊은이가 조객을 안내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국화꽃 한 송이를 건네받았다.

"오늘 얼마나 분향했는지요?"
"약 2만 명 정도 됩니다."
"어디서 나오셨지요?"
"노사모 자원봉사자입니다."

나는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텔레비전 수상기에서는 경찰의 시청 광장 탈환 기도가 실패했다는 소식, 용산에서 영구차가 시민들에게 가로막혔다는 소식 등을 전해 주었다.

노무현을 보기 위해서는, 아니 그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몇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후배의 번호를 찾아 눌렀다. 그의 직장은 이곳에서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다.

"두호, 나 지금 연화장에 와 있어. 시간이 되나?"
"...당직인데, 한 번 바꿔 볼게요."

고맙게도 달려와 준 후배를 분향소에서 만났다. 그는 수지 쪽으로 온 나와 달리 수원 쪽에서 3km 정도를 걸어왔다고 했다. 우리는 추모 인파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프레스센터 기자석에 앉아 있는 젊은 남녀가 무슨 일인지 몸을 비틀며 키들거리며 웃고 있었다.

스님들이 앉아 있었다. 나는 스님 중의 한 분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셨는지요?"
"용주사에서 왔습니다."
"몇 분이나 오셨는지요?"
"백 명이요."

스님은 나를 기자인 줄 아는지 기왕이면 사진도 한 장 찍어 달라고 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헤어졌다

굉음과 함께 상공에 헬리콥터가 나타났다. 마침내 노무현이 도착한 것이다. 흐느끼는 유가족들... 그들 중에 검찰에 불려나가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더욱 슬퍼 보였다.

내 옆의 할머니 한 분이 오열을 시작했다. 그 뒤에 있는 중년 남성은 손수건으로 안경 속의 눈물을 닦고 있었다. 순간 앞에 있는 젊은 여성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질렀다.

"노무현을 살려내라! 이 죽일 놈들아. 너희가 죽인 거잖아!"

그녀는 울부짖으며 계속 고함을 질렀다. "노무현을살려내라이죽일놈들아너희가죽인거잖아"그녀는 말에 사이를 두지 않고 연신 소리를 질렀다. 아무도 그녀를 응원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녀를 제지하지 않았다. 뒤에 있는 아주머니가 조그만 소리로 소곤거렸을 뿐이었다. 오늘은 데모 하면 안 될 거라고.

송기인 신부가 조객들 앞에 나와 노무현의 어깨가 크게 함몰되어 있었다고 전해 준다. 얼마 후 노무현은 말 그대로 '한 줌의 재'가 되어 다시 나타났다. 아들 건호씨가 움켜들고 있는 작은 상자에 그가 들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믿어지지 않았다.

"저 안에 노무현이 있다는 거지?"

후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세상에 노무현처럼 '실감나는 사람'이 또 있었을까?   그의 죽음이 한사코 믿어지지 않는 것은 그의 유별난 인간적 실감 때문이 아닐는지.

노무현은 정토원으로 떠났다. 후배와 나는 근처 음식점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우리는 노무현에 대하여, 그리고 대한민국에 대하여 아무 말도 나누지 않고 헤어졌다.

저기 노란 풍선이 지나가네

얼마 후 나는 낯선 아파트들 사이를 헤매고 있었다. 차를 어디에 두었는지 도무지 기억해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곳저곳의 아파트 정문을 기웃거렸지만 죄다 처음 보는 아파트일 뿐 모든 풍경이 생소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되어갔다.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나는 한 시간 넘게 아파트 길을 헤매고 다닌 것이다. 지친 나는 차를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차는 내일 다시 와서 찾기로 하고 노인정 앞의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순간 투신 직전 경호원에게 담배 있느냐고 물었던 그가 떠올랐다.

"여기 담배 있네요."

나는 연기를 내뿜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려 보았다. 담배 한 대를 거의 피워갈 무렵이었다. 바람이 불더니 그 바람에 묻혀 무엇인가가 시야로 들어왔다. 그것은 노란 풍선이었다. 나는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했던 그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를 흉내 내 보았다.

"저기 노란 풍선이 지나가네."

조문객 중 누군가가 버렸거나 놓친 풍선일 것이다. 바람이 약간 빠진 풍선은 맥이 없는 대신 한없이 부드러웠다. 놀랍게도 나는 풍선을 들고 있어났을 때 내가 차를 어디에 두었는지를 불현듯 알게 되었다.

눈앞 먼발치 지하주차장으로 난 길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아 보였다. 나는 바람이 빠져 맥없고 부드러운 노란 풍선을 차 옆자리에 소중히 태웠다. 시동을 걸었다. 비로소 노무현의 죽음이 실감되었다. 노무현은 나에게 풍선 하나를 남기고 죽은 것이다. 왈칵 시야가 흐려졌다. 나는 핸들에 머리를 대고 잠시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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