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음 색소폰 동호회원들이 야외수업을 마치고 합주를 하고 있다 ⓒ 오문수
일주일간의 우울한 국장 기간을 지낸 토요일 오후 여수 무선공원에 아름다운 소리가 들렸다. 때로는 고인을 위로하듯 슬픈 소리가, 때로는 새출발을 다짐하듯 격정적인 소리가 울렸다.
아름다운 호수로 둘러싸인 무선 공원 주변에는 놀이터와 벤치 및 운동시설이 있고 한편엔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연장도 갖춰 있어 주민들로부터 사랑받는다. 회원들은 애지중지하는 악기와 과일들을 들고와 나무 그늘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회원들의 수준은 6개월부터 8년까지 천차만별이다. 나이도 이십대부터 육십대까지 천양지차다. 직업 또한 다양하다. 목사, 교사, 회사원, 소방관, 주부 등.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체가 색소폰이다. 악기 가격이 결코 싸지 않은데도 기꺼이 투자하고 보물처럼 애지중지하는 이들.
▲ 차례를 기다리는 회원들이 재미난 포즈를 취해줬다 ⓒ 오문수
회사원인 주유성씨가 맨 먼저 시작했다. 퇴근만 하면 학원에 달려와 열성적으로 연습하던 그는 요즘 대중공연에 참가할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 색소폰을 시작하게 된 동기와 달라진 점에 대해 들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학교밴드와 관련이 있었고 직장에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3년 됐습니다. 연주를 하면서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변했어요. 세미프로가 되는 게 제 욕심입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색소폰은 자기 솔직함 즉, 노력만큼 달라져요. 파고들수록 새로운 것이 있어 매력 있습니다."
능숙한 솜씨를 보이자 앞줄에 앉은 가족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색소폰에 빠진 그에 대한 평을 부인으로부터 들었다.
"돈도 많이 들고 너무 오랜 시간을 소비하는 게 불만이었는데 요즘은 포기했어요. 오늘 보니까 악기도 바꿨네요. 하지만 주색잡기에 빠지는 것보다 훨씬 낫고 자랑스러워요"
환갑인 김동배씨는 경력이 20개월이다. 현재 여천목양교회 장로인 그는 회사에 다니다 정년퇴직했다. 퇴직 후 우울증까지 생겼는데 색소폰을 하면서 즐거워지고 폐활량도 늘어났다. 망설이다가 시작했는데 지금은 학원이 문을 여는 시간인 10시 이전에 도착해 오후 3시까지 매일 5시간씩 연습을 한다. 연습 틈틈이 회원들과 차를 마시면서 사람을 사귀는 게 즐겁다.
5년차인 이순길 목사는 "음악을 좋아해서 시작했고 정서적으로도 좋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할 것입니다" 시작한 지 채 일년이 안 된 정선희, 박현미씨도 오늘 수업에 참가했다. 그들은 "색소폰 소리가 너무 좋아 배우게 됐는데 앞으로도 열심히 할 것"이라고. 그밖에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는 실력 있는 회원도 있다.
회원 중에는 두 자매가 있다. 언니인 강기심씨는 62세로 오늘 회원 중에 가장 나이가 많다. 동생 강부안씨는 초등학교교사다. 멋진 연주솜씨를 보인 언니에게 소감을 들었다.
▲ 자매 회원과 함께한 원장. 왼쪽부터 언니인 강기심, 이동진 원장, 동생 강부안 ⓒ 오문수
"장구를 배우다가 색소폰을 시작한 지 4년 됐어요. 원래 음악에 관심이 있어 아무도 모르게 6개월 동안 배우다 동생한테 권했는데 지금은 동생이 나보다 더 잘해요. 여고 동창회에서 색소폰을 불면 친구들이 부러워하고 삶에 대한 관점이 달라졌어요.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기고 남들이 돈 가진 것보다 부러워해요. 원래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서 시작했는데 가게 때문에 시간을 못내는 게 가장 아쉬워요. 현재는 오카리나도 끝냈고 다른 것도 해보고 싶어요. 사람들에게 꼭 정정시켜 드려야할 게 있는데 섹스폰이 아니라 색소폰이에요."
끊임없이 연습하며 시민위안 공연과 봉사활동을 하는 이동진 원장한테 야외수업을 시작한 계기에 대해 들었다.
"음악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자연이 모두 음악으로 이뤄졌죠. 새소리, 바람소리,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 풀벌레들의 날아다니는 소리가 다 음악이며 내면의 아픔도 다 음악으로 표출할 수 있습니다. 닫힌 공간에서 연습만하는 회원들에게 바뀐 분위기, 특히 대중 앞에서 떨지 않고 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훈련을 하기 위해서 계획했습니다. 부족함과 자신감을 동시에 느낄 것이며 더욱 발전할 계기가 될 것입니다. 실수하더라도 좌절하지 않아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 조별연습 중인 회원들 ⓒ 오문수
▲ 연주를 구경하고 있는 회원들과 주민 ⓒ 오문수
레비 스트로스는 '음악은 의미없는 언어'라고 했다. 사람들은 음악을 받아들이고 나서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 바꿔 말하자면 음악은 이 수용과정을 통해서만 비로소 어떤 의미를 갖는다.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음악이 사치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음악은 한낱 장식이나 위안만은 아니다. 미적 기능 외에도 현실에 대한 세계 인식적 기능을 가지는 사회학적 상상력의 드러냄이다. 좌절과 자기연민에서의 탈출만이 아닌 소리를 통한 사회와의 소통이라는…
덧붙이는 글
남해안신문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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