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 민족에 대해서 가장 오해하는 사실 중에 하나가 우리 자신의 민족성에 관한 것이 아닐까.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 민족이 겁이 많고, 뭉치면 서로 싸우길 좋아하고, 패거리가 강한 폐쇄적 집단 문화이고, 힘이 강한 자에게는 기대길 좋아하는 선천적으로 나약한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끊임없이 당파 싸움을 벌여왔고, 외세로부터 침략을 당하며 어쩔 수 없이 조공을 바쳐왔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 같은 오해는 일제 식민사관(植民史觀) 에서 비롯된 잘못된 고정관념이다. 일본이 명치유신을 계기로 우리 민족에게 문명화를 전달한다는 명목으로 한반도를 강탈하면서 시작한 역사왜곡 작업으로 인해서 우리 국민의 사고가 그렇게 뒤바뀐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 침략 이전에도 우리 민족 스스로 근대화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역량이 이미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학[東學: 최제우 선생이 조선조 말에 창안한 종교(또는 학문)로 서학(서양의 천주교)에 대비하여 동학이라 칭함]을 중심으로 평민 뿐 아니라 양반들에게도 민주주의에 대한 계몽의식이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남북이 이토록 오랫동안 분단에 처하게 되는 민족적 아픔을 겪고 있는 이유도 일제의 강탈로 인한 원인이 있다. 하지만 그 보다 더한 아픔은 우리 대한의 젊은이들이 우리 민족성을 뭉치면 싸우고, 강한 힘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독립성 없는 민족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민족적 열등감과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우리 민족의 뼈아픈 역사적 현실이라고 도올 김용옥은 통곡한다.
단지 일본을 비난하고자 이 해묵은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다. 일본은 이미 역사를 딛고 일어서 세계적인 선진 국가가 되었다. 또한 90년대 중반의 장기불황을 훌훌 털고 더욱 강력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사실 일제 시대이후 올바른 청산을 못한 우리의 잘못이 크다. 또한 오늘날의 정치지도자와 사회지도층과 일부 방송, 언론 등의 기득권 세력이 우리 민족성을 왜곡하는데 동조한 면도 있다.
다만 불운한 역사로 인해 우리 민족 스스로 우리 역사를 잘못 바라보고, 우리 민족성을 오해하고 있다는 것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우리는 역사 공부를 하면서 우리 선조들은 외세로부터의 침략에 시달리고, 벼슬아치들은 오로지 자기 이익만 챙기고, 당파 간에 정권쟁탈을 위해 끊임없이 피흘려온 당쟁의 역사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뿌리깊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조선 선비들에게도 혁명의식은 있었다!
우리 옛 선비들에게도 이상 국가 건설에 대한 큰 뜻이 있었다. 정치 개혁을 위해서는 부패한 왕조(王祖)도 갈아 치우겠다는 거침없는 혁명적인 역사의식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혁명의식이 군부정권을 몰아내고, 권위주의 정권을 몰아냈다. 짧은 시간에 오늘날의 민주화를 이루는 기반을 다져온 우리 민족의 민족성에 기인한 탓이다. 당파 싸움 역시 왕정을 견제하고, 정권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활도 해왔음은 도외시되고, 영화나 TV의 드라마적인 요소만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외적의 침입 때나 일제 시대 등에도 많은 지식인들이 국난 극복을 위해 앞장서 싸워 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일제의 역사왜곡 작업으로 인해 우리 기억 밖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래서 소수의 매국노 행위를 한 인간들을 마치 국가 전체의 양반이나 지식인들의 행위로만 싸잡아 매도하는 경향이 있었다. 여기에는 우리 언론과 뉴스 매체들이 옛 선비와 지식인들의 지조를 무자비하게 매도한 탓도 크다. 현 시대의 영웅을 살리지 못하고, 죽이려고한 우리 언론의 책임도 피할 길 없다. 이제 일부 보수 언론은 정권을 뛰어넘은 무소불위의 권력까지 휘두르는 행태까지 이르렀다.
중국의 공자는 이상 국가 운영의 꿈을 꾸었으나 끝내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렇게 공자는 정치라는 자신의 꿈을 펼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후학도를 양성하면서 인본주의 정신을 동양사상의 기반으로 만드는 큰 역할을 했다.
공자에 반해 우리나라 고려시대의 삼봉 정도전은 일개 신하의 처지로 '부패한 왕조를 몰아내고, 민초가 바로 서는 새로운 왕조 창설'이라는 자신의 꿈을 성취한다. 고려의 부패한 왕조를 개혁하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고려 왕조를 뿌리채 뽑아서 새로운 조선의 왕조를 건립한다.
삼봉 정도전은 서양의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 1215)보다 위대한 헌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1394)의 기틀을 마련하고 조선조 500년 역사의 주춧돌을 만든다. 우리나라는 고려 5백년과 조선 5백년의 유래없는 1천 년의 왕국을 이뤄온 민족이다.
그러나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삼봉 정도전은 이방원(제3대 태종으로 즉위함)으로부터 처참하게 살육당하며 혁명가 정도전은 공자와 달리 역사의 뒤안길로 잊혀져 왔다. 우리 민족사에서도 파묻혀왔다.
하지만 삼봉 정도전이 추구한 인(仁, 유교 사상의 가장 중심 되는 덕목으로 어짊, 도덕, 사랑, 동정심 등의 폭넓은 뜻으로 해석된다)을 바탕으로 한 평등주의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공자가 주창한 인을 가장 잘 실천한 민족이 우리 한민족이다.
삼봉 정도전의 민초에 대한 사랑과 평등정신은 우리 민족의 면면에 곳곳이 흘러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러한 우리 민족의 면면에 흐르는 정신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다. 그는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가장 높은 곳에 오르기까지 혁명의식과 더불어 박애주의적 정신으로 살아간 인물이었다. 그의 죽음 역시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삶과 죽음은 하나였다. 노무현이 우리 국민이었고, 우리 국민이 노무현이었다.
원래 '仁'자는 등에 짐을 진 사람을 의미했다. 따라서 인이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여 사랑을 바탕으로 삼은 조화된 정감(情感)에 의거한 덕을 말했다. 그러한 덕을 가까운 가족에서 비롯하여서 멀리까지 미치게 함으로써 국가, 사회의 평화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을 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상(思想)을 바탕으로 인본주의적 이상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혁명가적인 삼봉 정도전의 혼(魂)은 우리 가슴에 면면이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에게로, 우리에게로 또 우리의 후손에게로...
우리 국민에 대한 노무현의 사랑은 가족 간에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사랑과 같은 온정과 따뜻함이 있는 진정한 인(仁)의 사랑이었다...
졸저 <비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라>를 참조하여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삼가 명복을 기원하며 그의 영정에 이 글을 바친다.
*추신: 내가 이 글을 쓴 가장 큰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를 추모하기 위해서 쓴 글이다. 또한 더불어 현정권과 언론, 검찰들이 겸허한 마음으로 국민들을 섬기고 권력을 올바르게 사용하길 바라는 마음에 쓴 글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매하고 어리석은 국민들이지만 결코 좌시하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경각심을 불어넣어주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정권은 노무현을 향한 국민의 슬픔이 채 가시기 전에 분향소를 철거하고, 그의 영정을 짓밟아버렸다. 아, 실로 비통하고 통탄할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한탄스러운 시대 상황을 차분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결코 잊지 않아야 한다. 누구 이러한 사태를 자행해왔는지...
그래서 더욱 차분해져야 한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더욱 더 올바르게 살아가며, 자신의 몫을 다하며 살아가야 한다. 당장은 바보 노무현 같은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가슴 속에 비수를 감추며 칼을 갈고 있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 민족이 겁이 많고, 뭉치면 서로 싸우길 좋아하고, 패거리가 강한 폐쇄적 집단 문화이고, 힘이 강한 자에게는 기대길 좋아하는 선천적으로 나약한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오해는 일제 식민사관(植民史觀) 에서 비롯된 잘못된 고정관념이다. 일본이 명치유신을 계기로 우리 민족에게 문명화를 전달한다는 명목으로 한반도를 강탈하면서 시작한 역사왜곡 작업으로 인해서 우리 국민의 사고가 그렇게 뒤바뀐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 침략 이전에도 우리 민족 스스로 근대화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역량이 이미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학[東學: 최제우 선생이 조선조 말에 창안한 종교(또는 학문)로 서학(서양의 천주교)에 대비하여 동학이라 칭함]을 중심으로 평민 뿐 아니라 양반들에게도 민주주의에 대한 계몽의식이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남북이 이토록 오랫동안 분단에 처하게 되는 민족적 아픔을 겪고 있는 이유도 일제의 강탈로 인한 원인이 있다. 하지만 그 보다 더한 아픔은 우리 대한의 젊은이들이 우리 민족성을 뭉치면 싸우고, 강한 힘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독립성 없는 민족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민족적 열등감과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우리 민족의 뼈아픈 역사적 현실이라고 도올 김용옥은 통곡한다.
단지 일본을 비난하고자 이 해묵은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다. 일본은 이미 역사를 딛고 일어서 세계적인 선진 국가가 되었다. 또한 90년대 중반의 장기불황을 훌훌 털고 더욱 강력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사실 일제 시대이후 올바른 청산을 못한 우리의 잘못이 크다. 또한 오늘날의 정치지도자와 사회지도층과 일부 방송, 언론 등의 기득권 세력이 우리 민족성을 왜곡하는데 동조한 면도 있다.
다만 불운한 역사로 인해 우리 민족 스스로 우리 역사를 잘못 바라보고, 우리 민족성을 오해하고 있다는 것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우리는 역사 공부를 하면서 우리 선조들은 외세로부터의 침략에 시달리고, 벼슬아치들은 오로지 자기 이익만 챙기고, 당파 간에 정권쟁탈을 위해 끊임없이 피흘려온 당쟁의 역사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뿌리깊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조선 선비들에게도 혁명의식은 있었다!
우리 옛 선비들에게도 이상 국가 건설에 대한 큰 뜻이 있었다. 정치 개혁을 위해서는 부패한 왕조(王祖)도 갈아 치우겠다는 거침없는 혁명적인 역사의식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혁명의식이 군부정권을 몰아내고, 권위주의 정권을 몰아냈다. 짧은 시간에 오늘날의 민주화를 이루는 기반을 다져온 우리 민족의 민족성에 기인한 탓이다. 당파 싸움 역시 왕정을 견제하고, 정권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활도 해왔음은 도외시되고, 영화나 TV의 드라마적인 요소만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외적의 침입 때나 일제 시대 등에도 많은 지식인들이 국난 극복을 위해 앞장서 싸워 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일제의 역사왜곡 작업으로 인해 우리 기억 밖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래서 소수의 매국노 행위를 한 인간들을 마치 국가 전체의 양반이나 지식인들의 행위로만 싸잡아 매도하는 경향이 있었다. 여기에는 우리 언론과 뉴스 매체들이 옛 선비와 지식인들의 지조를 무자비하게 매도한 탓도 크다. 현 시대의 영웅을 살리지 못하고, 죽이려고한 우리 언론의 책임도 피할 길 없다. 이제 일부 보수 언론은 정권을 뛰어넘은 무소불위의 권력까지 휘두르는 행태까지 이르렀다.
중국의 공자는 이상 국가 운영의 꿈을 꾸었으나 끝내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렇게 공자는 정치라는 자신의 꿈을 펼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후학도를 양성하면서 인본주의 정신을 동양사상의 기반으로 만드는 큰 역할을 했다.
공자에 반해 우리나라 고려시대의 삼봉 정도전은 일개 신하의 처지로 '부패한 왕조를 몰아내고, 민초가 바로 서는 새로운 왕조 창설'이라는 자신의 꿈을 성취한다. 고려의 부패한 왕조를 개혁하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고려 왕조를 뿌리채 뽑아서 새로운 조선의 왕조를 건립한다.
삼봉 정도전은 서양의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 1215)보다 위대한 헌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1394)의 기틀을 마련하고 조선조 500년 역사의 주춧돌을 만든다. 우리나라는 고려 5백년과 조선 5백년의 유래없는 1천 년의 왕국을 이뤄온 민족이다.
그러나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삼봉 정도전은 이방원(제3대 태종으로 즉위함)으로부터 처참하게 살육당하며 혁명가 정도전은 공자와 달리 역사의 뒤안길로 잊혀져 왔다. 우리 민족사에서도 파묻혀왔다.
▲ 삼봉 정도전과 노무현 ⓒ 한경 거다란
하지만 삼봉 정도전이 추구한 인(仁, 유교 사상의 가장 중심 되는 덕목으로 어짊, 도덕, 사랑, 동정심 등의 폭넓은 뜻으로 해석된다)을 바탕으로 한 평등주의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공자가 주창한 인을 가장 잘 실천한 민족이 우리 한민족이다.
삼봉 정도전의 민초에 대한 사랑과 평등정신은 우리 민족의 면면에 곳곳이 흘러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러한 우리 민족의 면면에 흐르는 정신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다. 그는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가장 높은 곳에 오르기까지 혁명의식과 더불어 박애주의적 정신으로 살아간 인물이었다. 그의 죽음 역시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삶과 죽음은 하나였다. 노무현이 우리 국민이었고, 우리 국민이 노무현이었다.
원래 '仁'자는 등에 짐을 진 사람을 의미했다. 따라서 인이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여 사랑을 바탕으로 삼은 조화된 정감(情感)에 의거한 덕을 말했다. 그러한 덕을 가까운 가족에서 비롯하여서 멀리까지 미치게 함으로써 국가, 사회의 평화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을 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상(思想)을 바탕으로 인본주의적 이상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혁명가적인 삼봉 정도전의 혼(魂)은 우리 가슴에 면면이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에게로, 우리에게로 또 우리의 후손에게로...
우리 국민에 대한 노무현의 사랑은 가족 간에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사랑과 같은 온정과 따뜻함이 있는 진정한 인(仁)의 사랑이었다...
졸저 <비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라>를 참조하여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삼가 명복을 기원하며 그의 영정에 이 글을 바친다.
*추신: 내가 이 글을 쓴 가장 큰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를 추모하기 위해서 쓴 글이다. 또한 더불어 현정권과 언론, 검찰들이 겸허한 마음으로 국민들을 섬기고 권력을 올바르게 사용하길 바라는 마음에 쓴 글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매하고 어리석은 국민들이지만 결코 좌시하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경각심을 불어넣어주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정권은 노무현을 향한 국민의 슬픔이 채 가시기 전에 분향소를 철거하고, 그의 영정을 짓밟아버렸다. 아, 실로 비통하고 통탄할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한탄스러운 시대 상황을 차분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결코 잊지 않아야 한다. 누구 이러한 사태를 자행해왔는지...
그래서 더욱 차분해져야 한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더욱 더 올바르게 살아가며, 자신의 몫을 다하며 살아가야 한다. 당장은 바보 노무현 같은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가슴 속에 비수를 감추며 칼을 갈고 있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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