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정치인의 죽음, 그게 그리 슬퍼?"
[해외리포트] 중국인의 눈에 비친 '500만의 노무현 추모 열기'
▲ 29일 경복궁 앞에서 영결식을 마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서울광장을 향하고 있는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추모행렬이 광장을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지난 3~4일간 기자는 만나는 중국인들로부터 한결같은 질문을 듣고 있다. '수백만의 한국인들이 무엇 때문에 부패한 전 대통령의 죽음을 그토록 슬퍼하는가' 하는 것이다.
5월 23일 아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적지 않은 중국인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작년 2월 퇴임한 이웃 국가의 대통령이 바위 아래로 몸을 던져 자살한 것 자체가 너무도 놀라웠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에게 '노무현'은 세 가지 이미지였다
얼마 전까지 중국인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크게 세 가지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다. 첫째, 그는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노동자를 위한 인권 변호사로 일하다 국회의원을 거쳐 대통령에 오른 '서민' 출신의 입지적인 정치 지도자였다.
둘째,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분투하고 한·중 관계를 더욱 발전시킨 '평화' 대통령이었다. 셋째, 그는 퇴임 후 드러난 가족의 수뢰 혐의로 천수이볜(陳水扁) 전 대만 총통과 다를 바 없는 '부패'한 정치인이었다.
▲ 2000년 대만 총통선거에서 승리한 천수이볜 민진당 후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해가 퇴임한 천 전 총통은 본인과 일가족 부패 혐의를 구속되었다. ⓒ 대만 신문국
4월 초 이래 한국 언론매체에 보도된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족의 비리 혐의는 중국 방송과 신문을 거쳐 중국인들에게도 전해졌다. 언론을 통해 낙인찍힌 비리의 주홍글씨는 '서민' 대통령, '인권' 대통령, '평화' 대통령이었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인상을 뒤엎었다. 중국인들에게 노무현은 곧 한국의 천수이볜이었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뒤를 잇는 또 한 명의 부패한 한국 대통령이었다.
이런 중국인들의 생각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런 서거로 또다시 극적인 반전을 이뤘다. '갓 퇴임한 전임 대통령이 자살하다니… 그것도 바위에서 몸을 던져….' 이 죽음으로 노 전 대통령을 바라보는 중국인의 싸늘한 눈길은 눈 녹듯 사라졌다.
중국인들은 노 전 대통령을 '영웅'으로까지 칭하면서 죽음을 애도했다. 하지만 5월 26일을 기점으로 적지 않은 중국인들은 큰 의문을 품게 됐다. '어찌하여 저토록 많은 한국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가?'
▲ 작고 초라한 덩샤오핑 서거 10주년 기념식 무대. 덩의 마을을 찾은 중국인들은 추모객이 아닌 기념사진을 남기기 위한 관광객들이었다. ⓒ 모종혁
덩샤오핑과 노무현, 추모의 차이
1997년 2월 19일 중국인들은 20년 가까이 중국을 이끌어 온 정치 지도자 한 명을 잃었다. 바로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자로 추앙되는 덩샤오핑(鄧小平)이었다. 중국에 있어 덩은 역사의 흐름을 뒤바꾼 인물이었다. 덩은 젊어서는 국·공내전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군사 전략가였고, 공산주의혁명 이후에는 정권의 기틀을 닦은 유능한 행정가였으며, 늙어서는 폐쇄되고 낙후한 중국을 현대화시킨 노련한 정치가였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해리슨 솔즈베리는 1992년 출판한 <새로운 황제들: 마오와 덩 시대의 중국>에서 '중국 현대사에서 황제로 칭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그런 '황제'가 서거한 3일 뒤 기자는 중국 수도인 베이징에 가보았다. 기자는 덩의 유해가 안치된 분향소인 인민대회당 앞 톈안먼(天安門) 광장, 번화가인 왕푸징(王府井), 서민들이 몰려 사는 후퉁(胡同) 골목, 아직 개학하지 않은 대학가 등지를 수없이 걷고 이름 모를 중국인들을 만났다.
당시 베이징의 분위기는 엄숙하고 고요했다. 하지만 기자가 만난 중국인들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덩샤오핑의 죽음을 기리는 '공식적인' 애도사는 누구나 꺼냈지만 진정으로 슬퍼하는 사람은 만나기 힘들었다.
식당과 술집에서 만난 몇몇 중국인들은 억눌린 듯한 추모 분위기가 빨리 끝나길 바라기까지 했다. 덩의 영결식이 있었던 2월 24일 톈안먼광장에는 수만 명의 중국인이 몰렸지만, 뜨겁고 절절한 애도의 강도는 크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 뒤 기자는 덩샤오핑 서거 10주년을 취재하기 위해 덩의 고향인 쓰촨(四川)성 광안(光安)시에 갔다(관련기사-중국인들은 더 이상 그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덩이 태어나고 자란 생가에서 열린 기념식은 너무나 작고 초라했다. 기념식 주관단체는 쓰촨성 정부나 광안시 정부가 아닌 덩샤오핑 고향마을 관리소와 광안시 TV방송국으로, 정부 차원의 성대한 기념식이 아닌 관광객을 위한 이벤트성 행사였다.
실제 광안을 찾은 대다수 중국인들은 덩의 죽음을 되새기고 추모하기보다는 기념사진을 남기기에 바빴다. 개혁개방정책과 선부론으로 중국을 부강케 한 덩은 중국인들에게 더 이상 그리움의 존재가 아니었다.
이런 중국인들에게 한국에서 보인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열기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 한 포털사이트가 마련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특집 뉴스판을 장식한 한국 전임 대통령의 부정부패와 수난사. ⓒ 신랑
조중동의 프레임으로 한국을 보는 중국인들
더군다나 중국에서 접하는 한국 관련 보도는 대부분 한국 언론 인용보도다. 가장 많이 인용된 논평과 보도 기사의 언론사는 단연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였다.
중국 언론이 조·중·동의 보도를 전재하여 소개한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됐고 최대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으며 판매부수가 가장 많다는 것이었다.
조·중·동 기사를 인용한 중국 언론의 논평과 보도는 그대로 중국인들에게 전해졌고, 중국인들은 일부 한국인들과 똑같이 조·중·동 프레임 안에서 사건을 바라봤다. 이로 인해 미국의 정책을 무조건 추종하지 않고 동북아 평화를 위해 중국에 우호적이라고 인기가 높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중국인들에게 급속히 부패한 정치인으로 자리매김 됐다.
중국 언론은 또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수뢰혐의를 한국의 후진적 정치문화와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회현상이 낳은 사건으로 규정했다. 한국에 정경유착과 금권정치가 난무하고 부정부패가 사회 일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 언론은 고도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한국의 상황을 과장했다.
현재 중국 내에서 벌어지는 부정부패는 공산당의 철권통치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다. 2007년 발생한 집단 시위는 8만여 건에 달했다. 작년에 일어난 노동쟁의도 69만3천 건으로 2007년보다 98%나 늘어났다. 끓어오르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중국 정부의 대변인인 언론은 이웃 나라 한국을 내세우며 '봐라, 자본주의 선진국도 다를 바 없다'고 외치고 있다.
▲ 5월 16일 쓰촨대지진 피해지를 순시하는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 중국 언론의 이미지 메이킹과 달리 중국 최고 지도자의 일가족은 막대한 재부를 향유하고 있다. ⓒ 쓰촨성 인민정부
중국 최고 지도자들과 그 일가족은 청렴하다?
중국 정부와 언론이 한국의 정치부패를 부풀려 이용하고 있다는 기자의 지적에 일부 중국인은 동의하지 않았다. 수많은 중국 정치 지도자와 관료가 부패하지만 국가 최고 지도자들은 청렴하다고 반박했다. 이런 주장은 한국의 보수 언론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칭찬하기 위해 중국 최고 지도자들은 부패를 모른다고 보도한 전례에서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중국 최고 지도자들은 청렴할까?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및 원자바오(溫家寶) 국무원 총리 자녀들의 실상을 통해 알 수 있다.
올해 37살인 후 주석 아들 후하이펑은 국유기업인 칭화홀딩스(淸華控股) 당서기다. 칭화홀딩스는 자산 규모가 100억 위안(한화 약 1조8500억원)으로, 산하에 IT기업인 누크테크(Nuctech), 쯔광(紫光), 보아오(博奧)생물 등 30여 개 기업을 거느린 알짜배기 회사다.
후하이펑은 북방교통대학을 졸업하고 칭화대학 E-MBA과정을 마친 뒤 2년 만에 누크테크의 사장으로 올랐다. 후의 사장 재임 시 누크테크는 중국 내 147개 공항에 설치하는 액체 폭발물 검색 스캐너 공급 계약을 따내 수십억 위안 규모의 실적을 올렸다.
오래된 겨울 점퍼를 걸쳐 입고 1000원짜리 도시락을 먹어 화제가 된 원자바오 총리의 가족은 더욱 화려하다. 원 총리 부인인 장베이리는 중국보석협회 부주석과 400여 개의 점포를 가진 베이징다이아몬드보석회사의 회장을 지낸 보석광이다. 아들 원윈송은 국영IT기업인 유니허브(Unihub)공사 회장을 맡고 있고, 사위는 다롄스더(大連實德)그룹 회장으로 중국 20대 부호 중 한 명이다.
2006년 10월 중국 중앙당교 연구실과 사회과학원이 발표한 조사보고서에는 중국 내 억만장자 3220명 가운데 2932명이 당정 고위간부의 자녀로 밝혀졌다. 이들이 보유한 자산은 무려 2조4050억 위안(약 445조원). 그것도 해외 자산을 제외한 액수였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6일 밤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학생과 추모객들이 애도의 뜻을 표하며 헌화하고 있다. ⓒ 유성호
"한국인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이유는..."
기자는 중국인들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족의 부패 혐의를 완전히 부정하진 않았다. 노건평 씨의 수뢰 혐의는 이미 사실로 드러났고, 몇몇 의혹은 명쾌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 또한 그리 만족스럽지는 못하다고 했다. 2003년 정치인 노무현이 퍼뜨렸던 희망 바이러스는 2008년에는 깊은 아쉬움과 한숨으로 바뀌었고, 이명박 정권의 탄생으로 종결됐다. 2009년 지금 대한민국은 긴장이 고조된 남북 관계에 따른 불안과 경제 위기, 후퇴한 민주주의의 아픈 현실 속에 망연자실해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을 한국인 대부분이 알고 있음에도 5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깊이 애도한 이유에 대해 기자는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과 노동자 인권 향상을 위해 애썼다. 정치에 입문해서도 원칙을 지키려 애썼고, 권력에 쉽게 야합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되어서는 남북의 평화적 통일과 자주국방을 위해 노력했고, 서민과 노동자, 농민의 생활 안정과 권익 증진을 위해 노력했다. 이런 노 전 대통령의 가치를 끝까지 믿지 못하고 그분의 명예를 지켜주지 못해서 한국인들은 미안해한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야, 노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고서야, 내 정치적 의사 표현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달은 한국인들은 나태했던 자신을 자책하고 있다.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상황은 중국인에게 당당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다. 현 정권은 한국 수도 한복판의 서울광장조차 국민들의 분노가 두려워하여 경찰력으로 봉쇄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의 한 지인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 한국인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에 던졌던 '원칙과 정의', '참여와 소통'의 정신을 마음속으로 되새기고 있다. 떠나는 노 전 대통령을 함께 바라보는 내 자녀에게 결코 부끄러운 조국을 물려주지 않겠노라고 굳게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500만 명이 스스로 나서 분향소를 찾고 50만 명이 영결식에 적극 참여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중국인들은 조용히 듣기만 했다. 서울광장 못지않게 사복경찰과 무장경찰로 뒤덮인 톈안먼광장이 그들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난 일주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떠나보낸 한국의 상황은 중국인에게 또 다른 사색과 숙제로 남을 듯하다.
▲ 곳곳에 사복경찰과 무장경찰이 깔려져 감시의 눈초리가 번득이는 톈안먼광장. 6·4 톈안먼사건을 앞두고 통제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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