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지리산 무박2일, 몸은 피곤하나 마음은 위로

화엄사에서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로 하산

등록|2009.06.01 17:14 수정|2009.06.01 17:14
정확하게 13년만에 다시 찾은 산. '한국인의 기상이 발원되는' 천왕봉이 있는 지리산을 올랐다. 지난 96년 5월 회사 동료들과 함께 지리산을 종주한 이후 그동안 발길이 닿지 않았던 지리산이었다.   

이번 지리산 산행은 최소한 일정으로 계획하여 무박2일 종주산행으로 진행하였다. 지리산 종주산행에 나선 지난 29일 금요일은 때마침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과 노제 등이 차분하게 치러진 날이었다.

산행에 나서기엔 썩 내키지 않은 날이기도 했지만, 이미 한달 전부터 계획된 일정이었다. 또한, 국민장 기간동안 마음 한구석이 착잡했던 심경을 오히려 지리산 산행을 통해 위로를 삼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 산행에 나서기로 했다.

지리산. ⓒ 유태웅


'한국인의 기상 이곳에서 발원되다' 다시 찾은 지리산 천왕봉
 
지리산 무박2일 종주에 참가하기로 한 일행은 5월 29일 저녁 9시까지 용산역에 모였다. 용산역 복합역사 내부 대합실 TV에선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식을 끝낸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운구행렬이 다시 봉하마을로 출발하는 모습이 생중계 되고 있었다.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며 63년의 불꽃같은 생을 살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지막 한 줌 재가 되어 고향마을로 떠나던 시각이었다. 그 비슷한 때에 우리 일행은 저녁 9시 45분발 여수행 남행열차에 몸을 싣고 남도땅 구례로 출발하였다. 

지리산. ⓒ 유태웅


여수행 무궁화열차는 30일 토요일 새벽 2시 20분에 구례구역에 도착하였다. 같은 시각에 지리산을 찾는 100여 명의 열차 승객들이 구례구역에서 함께 내렸다. 등산객은 대부분 역에서 택시를 타고 성삼재로 이동해 노고단으로 산행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은 당초 계획했던대로 화계사로 이동해 코재를 넘어 노고단으로 향하는 구간으로 산행을 시작하였다. 

새벽 3시 10분경 짙은 어둠 속 화계사는 입구에 사월초파일 연등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등산로 초입에는 화계사 경내로부터 새벽 불공을 드리는 목탁소리가 청정하게 울리고 있었다. 지리산 종주구간 중 화엄사에서 노고단대피소까지 7km 구간은 오르막 경사도가 심한 편이다. 이 구간을 약 2시간 만에 주파하여 새벽 5시 10분경에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하였다. 

지리산. ⓒ 유태웅


노고단에서 임걸령으로 이동하는 도중엔 구름사이 동쪽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일출을 맞이하였다. 밝아오는 여명과 함께 지리산 능선아래로 드넓은 운해가 멋진 장관을 이루었다. 산행에 나선 등산객들은 이 모습을 사진에 담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들이었다. 너무 멋진 풍경들이었다.

임걸령, 노루목, 화개재, 토끼봉을 거쳐 아침 8시 5분경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하였다. 산장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일행들이 가져 온 떡과 주먹밥, 사과, 포도, 곶감, 오이 등 간식으로 기력을 보강하였다. 지형적으로 고지대여서 휴식을 취하는 잠깐 사이에도 서늘한 기온을 느낄 수 있었다. 반팔 티나 반바지로는 10분이상 지체할 경우 한기를 느낄 수 있었다.

지리산. ⓒ 유태웅


연하천대피소 우물가에서 물을 보충하는 등 20분 정도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종주산행을 시작하였다. 형제봉과 벽소령, 선비샘을 거쳐 지리산 종주구간 중 가장 힘들었던 영신봉 구간을 지났다. 하얀 철쭉꽃이 인상깊었던 세석평전을 거쳐 오후 1시 10분경 장터목산장에 도착하였다.

산장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오후 1시 30분경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을 향해 산행을 시작해 오후 2시 35분에 드디어 천왕봉에 올랐다. 화엄사에서 산행을 시작한 지 11시간 20분 만이었다. 천왕봉에선 비석을 사이에 두고 '인증샷', 기념사진을 찍기 위한 줄서기가 있었다.

지리산. ⓒ 유태웅


이곳이 지리산 최고봉임을 표시하는 비석에는 '지리산 천왕봉'과 반대편에 '한국인의 기상 이곳에서 발원되다'라는 글씨가 새겨있었다. 종주산행하면서 보았던 깊고도 부드러운 산세와 백두대간의 위세가 함께 느껴지는 지리산에 매우 적합한 말이지 싶었다.

천왕봉에서 맞는 바람과 하늘, 드넓게 펼쳐진 지리산 산세를 마주하다보니 산행하면서 쌓였던 피로감이 사라졌다. 지난 일주일 국민장 기간동안 내내 착잡했던 마음도 잠시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천왕봉에 서보니 '사는 것과 죽는 것이 하나'라는 화두가 떠오르고, 대자연과 하나가 되어있는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

지리산. ⓒ 유태웅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위로가 되었던 지리산 종주산행

천왕봉 정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중산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해 오후 5시 20분경 중산리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일행은 이곳에서 서울행 직행버스편이 있는 원지로 출발하는 버스를 기다리며 가게앞 평상에 모여앉아 잠시 지역 토속 막걸리로 간단하게 하산주를 나누었다.

원지에선 서울행 버스를 기다리며 잠시 망중한을 보냈다. 일행이 함께 동네 목욕탕에서 땀과 피로에 젖은 몸을 씻고, 저녁을 먹으며 쾌청한 날씨와 더불어 즐거웠단 지리산 종주산행에 대한 기억을 서로 되새겼다.

저녁 8시 20분 원지발 서울행 고속직행버스를 이용해 저녁 11시 35분 서울남부터미널에 도착하였다. 금요일 저녁에 출발해 토요일 저녁에 귀경하는 무박2일 지리산종주 일정은 이렇게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