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본 추모좋은 곳으로 편히 가시길 바랍니다. ⓒ 박병춘
분향소에서 신발을 벗고 국화를 영정에 올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냥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명백한 죄의식에 젖었다.
▲ 유서 읽는 소년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할 아픔입니다. ⓒ 박병춘
소년 한 명이 그가 남긴 유서를 읽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순간 또 눈물이 나왔다. 아직은 정의와 진실이 뭔지 모르고 있을 소년에게 유서의 행간이 어떻게 읽혀질까?
폭격으로 숨진 부모 시신 앞에서 한 아이가 넋을 잃고 앉아 있는 전쟁 사진이 생각났다. 아아, 그러나 그는 소녀를 자전거에 태운 채 활짝 웃고 있지 않은가!
▲ 만장 만들기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장을 대나무에 묶고 있다. ⓒ 박병춘
백 개 만장이 휘날리고 남녀노소 6천 시민이 모였다. 넋을 위무하는 의식과 대금 연주와 붓사위 퍼포먼스와 추모사가 이어졌다. 많은 분들이 울었다. 통곡도 오열도 아니지만 볼을 타고 흐르는 은밀한 눈물이 손수건을 적셨다.
▲ 초혼(招魂)저승과 이승,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기만 합니다. ⓒ 박병춘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김소월의 '초혼(招魂)' 한 구절이 바람에 휘날렸다. 이승과 저승이 너무 멀어서 불러도 대답 없는 사람. 그는 보면 볼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심금을 울리는 언행을 남긴 채 아주 멀리 떠났다.
▲ 참 좋은 당신!모든 국민들이 그랬습니다. "참 좋은 당신!" ⓒ 박병춘
▲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많은 국민들이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 박병춘
그래서 설움에 겹도록 불러보지만 그는 대답 한 마디 없이 그저 우리 가까이에서 웃고만 있다. 그토록 멀리 갔으면서 이렇게 가까이 우리 곁에 있다. 갔지만 가지 않은 참 좋은 당신!
그의 시신이 경복궁에서 시청으로 국민 곁에 머물다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됐다. 통곡과 오열이 진동했다. 의연하듯 버티던 유가족의 오열이 심금을 울렸다. 텔레비전 앞에 선 나는 울 수밖에 없었다.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 말 앞에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자유롭지 않았다. '보내고 나니 뜻을 알았다'는 후회와 '죽음으로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섞여 너무나 자연스럽게 조문행렬에 동참했다.
그가 한 줌 재가 되어 봉하마을 정토원에 머물고 난 다음 날, 나는 우연히 하늘을 보았다. 정확히 5월 30일 정오였다.
▲ 한반도 구름그는 멀리 있지만 늘 가까이 있을 것이다. ⓒ 박병춘
▲ 한반도 구름국민장이 끝나고 난 다음 날 정오, 구름이 한반도를 장식하고 있었다. ⓒ 박병춘
절묘한 구름이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후광까지 내리비치고 있었다. 신속하게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기 전만 해도 구름은 지도에서 바라보는 한반도 그 자체였다.
나는 그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도중에 우리 대한민국을 바라보고 있는 거라고 믿었다. 그는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만큼 그 또한 우리를, 우리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있다고 은밀하게 속삭이고 있었다. 그가 걸어서 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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