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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기 없는 그에게 선생님이 엄마였다

[나홀로 입학생에게 친구를] 토교분교 1학년 문영이의 체험학습

등록|2009.06.03 12:47 수정|2009.06.03 12:47
작은 배를 타고, 가는 세계여행. 세계 18개국의 민속의상을 입은 인형들이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을 맞이했다. 마치 배낭여행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저긴 어딜까?"
"인도"
"여기 좋다"
"우와 대한민국이다."

지난 5월 28일 영월 쌍룡초등학교는 놀이공원으로 체험학습이 있는 날이었다. 나는 '제2회 더불어 함께 입학식'에 참여하기로 한 쌍룡초등학교 토교분교 나홀로 입학생인 이문영(8)양의 체험학습을 동행하기로 했다.

▲ '나홀로 입학생'인 문영이. ⓒ 여경미


영월 쌍룡초등학교 18명의 학생들은 단체 티를 입고 있었다. 1학년인 문영이는 '1학년 1반이 떴다'라고 적힌 티를 입고 있었다. 쌍룡초등학교에서는 '두레 현장체험학습'이란 주제로 1,2학년은 놀이동산으로, 3,4,5,6학년은 백제문화권으로 체험학습을 떠났다. 토교분교는 2학년이 없어, 1학년인 문영이와 담임선생님인 최귀자(57)교사만이 놀이동산으로 향했다.

혼자서 타야만 했던 놀이기구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이솝 빌리지'. 동화 속에서 볼 법한 마을이다.

아이들이 타고 싶어 하던 놀이기구 앞에 서자, "이솝 할아버지가 하늘을 날기 위한 배"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문영이는 기대감과 설렘으로 들떠 있었다. 아이들은 서로 먼저 타겠다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교사들은 '놀이기구를 타다가 혹시나 다치지는 않을까, 어떻게 태울 것인가' 걱정이 태산 같았다. 탑승인원은 4명씩, 교사 1명에 아이들 3명이 타기로 합의했다.

▲ 일일이 키를 확인해야 되는 학생들. ⓒ 여경미


타는 순서를 정하고 나니, 이번에는 키가 걸림돌이 되었다. 놀이기구의 키 제한 규정은 100~130cm 사이다. 아이들의 키는 아슬아슬했다. 놀이기구를 탈 생각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아이들의 키를 교사들이 일일이 체크했다.

"넌 통과. 넌 다시 한 번 재봐."

교사 1명에 아이들 3명이 타기로 되어 있던 계획은 빗나갔다. 문영이가 혼자 남게 된 것이다.

"이 놀이기구가 덜컹 걸릴 때, 허리에 무리를 줄 수도 있어요. 그래서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놀이기구 타시는 것을 제한을 하고 있습니다."

한 관계자가 다가와 최귀자 교사가 놀이기구 타는 것을 저지했다. 최 교사는 관계자의 이야기를 듣자 살짝 당혹스러워 했다. 혼자 놀이기구를 타야 할 운명에 놓인 문영이를 최귀자 교사는 한참이나 바라봤다. 문영이는 결국 뒤에 줄서있던 중학생들과 함께 짝을 이뤄 놀이기구에 올라탔다. 놀이기구를 다 타고 나오는 문영이에게 "재미있었어?"라고 묻자,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토교분교 1학년은 문영이 혼자뿐

장미꽃이 활짝 핀 놀이공원에서 쌍룡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사진을 찍었다.

"1학년 모여라. 사진찍자"는 교사의 외침에 나는 문영이를 쳐다보았다. 문영이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문영아, 너도 1학년이잖아."  이 말을 건넨 내가 무안할 정도로 문영이는 머뭇머뭇 거렸다.

쌍룡초등학교 본교와 분교는 입학식, 졸업식 등은 물론이고, 일주일에 한 번씩 합동수업을 하고 있다. 오늘은 문영이에게도 짝꿍이 있다. 소풍을 위해서 특별히 짝꿍을 정해준 것이다.

문영이의 짝꿍은 안혜진양. 혜진이는 쌍룡초등학교 본교 1학년이다. 문영이는 하루 종일 혜진이의 손을 꼭 잡고 다녔다. 혜진이는 문영이의 사진을 찍으려고 따라 다니는 동안 문영이 보다 더 취재 카메라에 신경을 썼다.

▲ 문영이와 짝꿍 혜진이. ⓒ 여경미


선생님은 최고의 보호자

휴식시간. 다른 아이들은 모두 아이스크림을 먹겠다고 가져온 돈을 꺼내 놓았다. 문영이는 다시 말이 없다.

"문영이는 뭐 먹을 거야?" 나의 질문에도 대답이 없다. 최 교사가 "화장실 갈래?" 물어보지만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다른 친구들이 지나간 뒤편에 문영이와 함께 줄을 서 있었다.

점점 일행과 멀어져 갈 때 쯤, 최 교사가 문영이 손을 앞으로 끌어당겼다.

"문영아, 뭐먹을래?"

문영이는 아직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결국 최 교사가 임의적으로 골라,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다.

▲ 문영이를 챙겨주시는 최귀자 선생님. ⓒ 여경미


문영이는 말 잘하지 않는다. 그저 끄덕끄덕, 머뭇머뭇 행동으로 이야기 할 뿐이다.

"오늘 재미있었지?"
"네"
"6월 9일 '더불어 함께 입학식'에서는 엄마하고 다닐 거야. 더 좋지?"
끄덕끄덕.

영월로 향하는 버스를 타러 가며,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재촉했다. 화장실을 다녀온 문영이를 보고, 최귀자 교사는 "화장실 갔다 왔어?"라고 물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문영이는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처음 문영이가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다녀온 줄 알았는데 다녀오지 않았던 것이다. 최 교사는 문영이의 얼굴을 보고 미리 상황을 읽고 있었다.  문영이에게 최 교사는 선생님이자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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