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대숲으로 들어오다
3일부터 서울 갤러리 이즈, '대숲은 空하다' 사진전
▲ 라규채 사진작 '대숲은 空하다' ⓒ 라규채
대숲의 바람이 청신하다. 살랑살랑 봄바람에 서로 몸을 비비는 대의 모습도 이채롭다. 비온 뒤 돋아나는 죽순의 모습도 경이롭다. 이 대는 하늘로 곧게 뻗는다. 대가 절개를 상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시사철 짙은 초록을 발산하는 댓잎도 대의 상징처럼 각인돼 있다.
하여 '대숲'을 테마로 한 사진은 곧게 뻗은 대줄기나 짙은 초록의 댓잎에 초점을 맞추는 게 일반적이다. 여기에다 대숲에 쏟아져 내리는 아침햇살이나 대숲이 휠 정도로 내려앉은 폭설이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사진작가 라규채(羅奎埰·50)씨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이 대숲에 바람을 불러들인다. 그는 바람이란 자연현상을 이용해 대숲을 노란 노을로 번지게 해 우리를 아득한 몽상의 세계로 데려간다.
▲ 라규채 사진작 '대숲은 空하다' ⓒ 라규채
사진예술의 신비와 진수를 안겨주는 라규채의 사진작품 전시회가 3일부터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이즈(옛 학고재)에서 시작, 9일까지 계속된다.
다섯 번째 개인전으로 'Empiness project'. 부제는 '대숲은 空하다'이다. 전시 작품은 모두 곧고 푸른 대에 바람을 표현한 20점. 배경은 '대나무 고을'로 알려진 담양의 대숲이다.
우리 눈으로는 흔히 보이지 않는 바람을 이용해 대의 아름다움을 카메라 렌즈를 통해 담은 것이 특징. 곧고 푸른 대가 물감을 뿌려 그림을 그린 듯, 안개 속에서 헤매다 숲을 만난 듯, 하얀 여백에 푸르른 흔적이 바람을 불러들여 몽환적이면서 우주적인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라씨는 최대한 카메라 셔터 속도를 늦춰 느리게 대상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리듯 대를 흘려 만든 여백을 통해 우주를 나타냈다. 대의 기둥은 하나지만 바람이 일렁이며 댓잎은 여러 갈래로 나뉘고, 깊은 숲속에 들인 바람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오로라가 대지를 감싼 듯 기묘한 색채를 그려낸다.
시인 고재종은 서문을 통해 "라규채의 대숲을 테마로 한 사진은 회화로 보면 추상화다"고 단정하면서 "사진예술의 신비로움을 극명하게 느끼게 해주는 라규채의 작품들 앞에서 우리는 입이 딱 벌어지는 어떤 황홀감을 체험하고도 충분히 남는다"고 극찬했다.
▲ 라규채 사진작 '대숲은 空하다' ⓒ 라규채
김화자 명지대 겸임교수는 "라규채는 미세한 진동을 자신의 섬세한 감각세포로 포착해냈다"면서 "사진 속 파란 하늘, 흰 구름, 칠흑 같은 밤, 눈을 배경으로 중력과 부피를 잃고 감각적인 분위기로만 맴도는 대숲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다"고 평했다.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회화적인 감각으로 표현, 사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평을 받는 것도 이런 연유다.
라씨는 "대는 사시사철 푸른빛과 선비에 비견되는 곧고 강인함을 갖고 있지만 중심을 이루는 속은 항상 텅 비어 있어 언제나 공(空)하다"면서 "대의 외형적 상징성인 색(色)을 공(空)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바람을 끌어들이고, 바람이 불지 않을 때는 카메라를 안고 춤을 추며 바람을 만들어 우주의 본질을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1959년 전남 담양에서 난 사진작가 라규채는 30년 가까이 야생화와 대를 테마로 작품 활동을 해오면서 4차례의 개인전과 15차례의 단체전을 열었다. 〈사진으로 본 남도들꽃〉 등 두 권의 사진집도 냈다. 광주대학교 행정학과,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를 졸업하고 광주대학교대학원 사진학과에 다니고 있으며, 현재 담양군청에서 공보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 라규채 사진작 '대숲은 空하다' ⓒ 라규채
▲ 라규채 사진작 '대숲은 空하다' ⓒ 라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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