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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06)

'학문을 하는 학문의 장이 형성된다' 다듬기

등록|2009.06.04 15:56 수정|2009.06.04 15:56
- 학문의 장

.. 제자가 되어 스승의 집에 숙식하기도 하면서 학생 수가 늘어나 자연스럽게 스승과 제자가 함께 학문을 하는 학문의 장이 형성된다 ..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츠지모토 마사시/이기원 옮김,知와사랑,2009) 65쪽

 "스승의 집에 숙식(宿食)하기도 하면서"는 "스승이 사는 집에 함께 살기도 하면서"나 "스승 집에서 먹고자기도 하면서"로 다듬습니다. "학문을 하는 학문의 장"에서는 '학문'이 두 번 잇달아 나오니 앞이나 뒤에서 한 번은 덜어냅니다. '형성(形成)된다'는 '마련된다'나 '이루어진다'로 손봅니다. '자연(自然)스럽게'는 그대로 두어도 되고, '저절로'로 손질해 주어도 됩니다.

 ┌ 장(場)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곳
 │   -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대화의 장이 마련되었다
 │
 ├ 학문의 장이 형성된다
 │→ 학문하는 자리가 이루어진다
 │→ 배우는 자리가 마련된다
 │→ 가르치고 배우는 자리가 된다
 └ …

 일을 하는 자리는 "일하는 자리"입니다. 한 마디로 줄인다면 '일터'입니다. 삶을 꾸리는 자리는 "살아가는 자리"입니다. 한 마디로 줄인다면 '삶터'입니다. 그러면, 배우는 자리일 때에는 "배우는 자리"일 테며, 한 마디로 간추리면 '배움터'가 될 테지요.

 배우다를 뜻하는 한자말 '학문(學問)'을 써서 가리키려 한다면 "학문하는 자리"일 테며, 이때에도 한 마디는 '학문터'입니다.

 ┌ 학문의 장
 │
 ├ 학문하는 자리 / 배우는 자리
 └ 배움자리 / 배움터 / 배움마당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한자말 '학문'을 쓰는 분들은 "학문하는 자리"나 '학문터'라는 말을 쓰지는 못하고 "학문의 장"처럼 토씨 '-의'를 사이에 넣고, 외마디한자말 '場'을 뒤에 받칩니다.

 그러고 보면 '사업장'이나 '회의장'이나 '운동장'처럼 으레 '-場'을 붙여 버릇합니다. '-자리'나 '-터'나 '-곳'을 붙여 알맞춤한 낱말 하나 지어내려고 하지 않아요. 어찌 보면, "사업의 장"이나 "회의의 장"이나 "운동의 장"처럼 쓰지 않으니 고맙다고 해야 할까 모릅니다만, '일터'나 '모임터'나 '뜀터/놀이터' 같은 낱말로 생각줄기를 이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어요.

 ┌ 대화의 장이 마련되었다
 │
 │→ 대화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 이야기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 이야기자리가 마련되었다
 │→ 이야기마당이 마련되었다
 └ …

 "학문의 장"이든 "대화의 장"이든 일본 말투입니다. 일본사람들은 책을 펴내면서 앞에 붙이는 '추천글'을 '推薦の言'이라 붙이고, 고맙다고 밝히는 글을 '感謝の言'이라 붙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對話の場'으로 적으니, 이와 같은 일본 말투를 우리 스스로 제대로 깨달아야 할 텐데, 아무래도 이런 바깥 말투를 곰곰이 살피는 분이 너무 적다고 해야 할까요. 일본책을 읽으면서도 못 느낀다고 해야 할까요. 일본책을 우리 말로 옮기면서 어딘가 얄궂다고 생각하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요.

 어쩌면, 일본 말투를 일본 말투라고 못 느낀다기보다는, 우리 말투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해야 옳지 싶습니다. 우리가 즐겨쓰면서 우리 삶과 넋과 생각을 담아낸 말투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해야 맞지 싶습니다. 우리가 너나없이 주고받으면서 우리 마음과 얼과 느낌을 실어낸 말결이 어떠한지 안 찾는다고 해야 바르지 싶습니다.

 ┌ 만남의 장소
 │
 ├ 만나는 장소
 ├ 만나는 자리
 └ 만남터

 으레 쓰이는 말투 가운데 하나로 "만남의 장소"가 있습니다. 이때에는 '場 + 所'가 되었습니다만, '-所'를 덜고 "만남의 장'처럼 쓰는 분도 더러 있어요. 으레 '-의 場'이라고 하다 보니 이 말투가 익숙해서 이처럼 쓴다고 하겠습니다. 더구나 이러한 말투는 방송과 신문을 거쳐 온나라 구석구석 퍼졌으며, 이러한 말투를 잘못이라거나 얄궂다고 느끼는 사람이 몹시 드뭅니다.

 적어도 "만나는 장소"쯤으로는 적거나 말해야 옳건만, 이렇게 마음을 기울이는 지식인이 없어요. 여기에 마음을 한 번 더 기울여 "만나는 자리"를 떠올리고, 그 다음에는 한 낱말로 '만남터'를 얻을 수 있으나, 이렇게까지 생각이며 마음을 바치는 사람이 이 땅에는 거의 없습니다.

 ┌ (무엇)하는 자리
 ├ (무엇) + 자리
 └ (무엇) + 터

 곰곰이 헤아려 보면, 새로운 말을 빚건 우리 말씨를 찾건, 이러한 일은 국어학자 몫입니다. 국어학자는 국어사전에 사람들이 익히거나 가다듬을 말 이야기를 담아야 합니다. 학교에서 교사들은 아이들한테 바르고 알맞게 가르쳐야 합니다. 집에서 어버이는 아이들과 함께 즐겁고 기쁘게 우리 말을 익혀야 합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만 배우는 말은 아닙니다. 어린이일 때만 익히는 글은 아닙니다. 학교를 마친 다음에도 배우는 말입니다. 나이 서른 줄이나 마흔 줄이 되었어도 익히는 글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누구나 배우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우리 이웃과 함께 목숨줄을 잇는다면 어디에서나 익히는 글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배우며 스스로 새로워지도록 이끄는 말입니다. 꾸준히 싱그럽게 익히면서 스스로 싱그럽게 가다듬는 글입니다. 말 한 마디를 아름다이 가꾸려는 이는 말마디뿐 아니라 마음마디가 아름다워집니다. 글 한 줄을 싱싱하게 돌보려는 이는 글줄뿐 아니라 마음줄에 싱싱함이 묻어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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