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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통 잘 가던 삼계탕집까지 세무조사 MB 집권 후 국세청엔 어떤 일 있었나

[국세청 개혁 ①] 어느 전직 고위인사의 자기 반성과 소회

등록|2009.06.05 12:07 수정|2009.06.05 14:46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검찰과 국세청 등 이른바 권력기관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특히 이번 '사정 정국'의 첫 단추를 꿰맨 국세청도 거센 후폭풍이 몰아칠 전망이다. 전직 국세청장의 잇단 비리 혐의에 따른 구속에 이어, 한상률 전 청장의 친정권적 행태가 결국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정권교체 후, 국세청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대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말>

▲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본청(자료사진). ⓒ 권우성


"할 말이 없게 됐지요."

그는 한동안 뜸을 들였다. 별로 내키는 기색도 아닌 듯했다. 한때 국세청에서 최고위직까지 올랐던지라 마치 자신의 일처럼 느끼는 듯했다. 작년에 세무공무원의 옷을 벗고, 한동안 허망했다는 그였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한동안 정신이 멍한 상태였다"면서 "이후 국민들의 조문행렬과 영결식에 나온 국민들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국세청에 30년 넘게 몸담았던 사람으로 이번처럼 자괴감을 느꼈던 적은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 "며칠 동안 노 전 대통령 조문을 망설였다"면서 "밤늦게 덕수궁 시민분향소 주변에 가기도 했지만, (하지 못하고) 그냥 역사박물관에 가서 (조문을) 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기자의 정식 인터뷰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다. 자신이 드러나는 것 자체도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그러면서도, 정권 교체 이후 국세청에서 자신이 느꼈던 소회를 솔직하게 말했다.

노무현과 연관된 사업은 모조리 뒤져라? 삼계탕집까지 세무조사

"작년 7월 태광실업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이번 비극의 발단이 된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그냥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말을 잇지 않았다. "당시에는 (세무) 조사를 지휘할 위치도, 내용도 잘 몰랐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연매출 3000억 원 규모의 지방 중견기업에 대해 국세청 최정예 부대가 작년 7월부터 넉 달 동안 먼지떨이식 조사를 벌인 것을 두고 '표적조사'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을 그는 익히 알고 있었다.

"당시에 전혀 모르고 있었나"라고 묻자, 그는 "워낙 그쪽은 기획으로 움직이는 특수조직이다 보니, 직속 라인이 아니면 내용을 알기 어렵다"면서 "나중에 간접적으로 박연차씨와 관련된 회사에 대해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시만 해도 내부 분위기가 그랬다"면서 "정권이 바뀐 후, 공무원으로서 새로운 정부의 국정 철학 등을 따라갈 필요가 있었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정치적 배경이 작용한 조사라고 보는 것인가'라고 묻자, "굳이 말로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그동안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해온 조사만 보면 알 수 있을 텐데…"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기업들 사이에선 '저승사자'로 통한다. 그동안 처리한 사건들도 현대자동차 그룹 비자금 사건 등 굵직한 사안이었다.

최근에 만난 또 다른 국세청 현직 간부도 "정권이 바뀐 후, 작년 초에 국세청 내부에서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느낌이 있었다"면서 "세금을 제대로 걷는 것 말고, 사정 기능이 세진 느낌이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작년 이 같은 국세청의 '사정'은 노무현 정부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로 이어졌다.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 외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구가 대표로 있는 제주의 'ㅈ 골프장', 노 전 대통령의 척추 수술을 했던 '우리들 병원'도 세무조사를 받았다.

심지어 노 전 대통령이 즐겨 찾았던 서울 종로구의 삼계탕집인 '토속촌'에 대해 세무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국세청 주변에선 '국세청이 전직 대통령과 관련 있다는 이유로 한낱 음식점까지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국세청은 일반 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 여부 자체를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다만 해당 음식점에 대해선, "한때 해외에 진출한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 영업이 잘돼서 한낱 음식점으로 보기엔 어려웠다"고 밝혔다.

MB 집권 후 너무나 정치적으로 바뀐 국세청

▲ 지난 2007년 6월 국세청 차장이었을 당시의 한상률 전 청장 모습. ⓒ 국세청


이처럼 노무현 정부 때 거의 사라진 국세청의 '사정' 기능이 힘을 얻게 된 것은 정권 실세와 국세청 수뇌부의 이해 관계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 말기에 임명된 한상률 전 청장의 권력지향적 행보가 크게 작용했다는 것은 국세청 주변에선 오래된 이야기다.
한 전 청장이 국세청 수장에 오른 것은 지난 2007년 11월. 당시 차장이었던 그는 전임 전군표 청장이 인사로비 의혹으로 낙마하자, 청장으로 승진하는 '행운'(?)을 얻었다.

3일 기자와 만난 전직 국세청 고위간부는 "국세청 내부에선 행시 20회였던 전군표 전 청장과 21회였던 한상률 차장이 참여정부와 같이 임기를 끝낼 것으로 봤었다"면서 "하지만 그는 결국 청장이 됐고, 아마 그때 불행이 싹텄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전 청장의 불행은 이미 내부에서 시작됐었다. 충남 태안 출신으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장을 거쳐 본청 조사국장과 차장까지 올라선 그를 두고, 국세청 내부에선 여러 잡음이 흘러나왔다.

이른바 '한상률 흔들기'였다. 충청 출신으로 국세청 요직을 두루 거친 인사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국세청 요직을 차지해 온 특정 지역 인맥들 사이에선 한마디로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돼 버렸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한상률 전 청장으로선 어떤 식으로든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충성카드'를 내비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징후는 한 전 청장의 여러 행보를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친기업적인 정부에 발  맞춰, 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 유예조치 등을 발표하면서도 노무현 정부와 관련돼 있는 기업들에 대한 조사는 그대로 진행했다.

또 작년 초 KBS 정연주 전 사장이 현 정부에 맞서 사장 유임으로 버티기를 계속하고 있을 때 KBS 외주 제작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했고, 광우병 파동 때 '촛불 민심'의 중심이었던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 대해서도 전격적으로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국세청은 정기적인 세무조사라는 말만 되풀이했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국민은 별로 없었다. 다분히 '정치적인 조사'로 읽힐 뿐이었다.

판도라 상자 열어젖힌 한상률의 저항과 퇴진, 그리고...

▲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과 한상률 국세청장이 지난해 3월 10일 오전 7시 30분 경기도 과천시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 앞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다. ⓒ 연합뉴스


한 전 청장의 '충성모드'를 엿볼 수 있는 사례는 더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BBK 관련 국세청 조사 자료를 넘겨주며 환심을 사려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작년 2월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대선자금 관련 정보를 현 정부 실세들에게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김앤장 세무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일부 인사가 이명박 대통령의 후원회와 관련돼 있다는 정황이 드러나자, 조사를 중단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한 전 청장의 이 같은 충성 행보는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 특별세무조사로 절정에 이른다. 그는 이번 조사를 직접 진두지휘했고, 전·현직 정권의 주요 인사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터져 나왔다. 이른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것이다.

한 전 청장은 작년 10월 태광실업 세무조사 상황을 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올해 1월 고가 그림 상납 의혹이 불거지면서 한 전 청장의 입지는 크게 위협받게 된다. 한 전 청장은 '억울하다'면서 항변했지만, 이 와중에 작년 말 이상득 의원과 친분이 있는 포항지역 인사들과 골프를 했다는 사실까지 터져 나왔다. 또 그 자리에 이명박 대통령의 동서인 신아무개씨까지 합석했고, 주요 부처 장관 청탁설까지 불거졌다.

이어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한 전 청장의 사퇴설이 나오자, 그는 한때 "사의 표명한 적 없다"면서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청와대 등 현 정권 쪽에선 한 전 청장의 '항명'으로 받아들이면서 불쾌해 했고, 그는 결국 사퇴했다. 이후 올 3월 박연차리스트에 대한 검찰의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면서, 돌연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물론 국세청의 표적 세무조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은 여전히 남은 채….

다시 국세청 전직 고위간부의 마지막 말이다.

"참여정부 때는 국세청에 대한 집권세력의 간섭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그땐 내부의 파벌정치와 상납비리 등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번에 다시 정치 권력의 개입과 국세청 수뇌부의 권력지향적 행태가 불거져서… 수많은 국세 공무원이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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