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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상주'는 진정한 애도를 표하는 국민이다

등록|2009.06.05 10:41 수정|2009.06.05 10:41
'백수(百獸)의 왕' 사자가 동굴 앞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짐승도 사자를 동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온갖 짐승들은 이빨 빠지고 늙고 병든 사자를 노골적으로 핍박했다.

간사한 여우는 사자를 신랄한 말(言)로 괴롭혔다. 늑대는 사자에게 악의적인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황소는 두 뿔로 사자를 윽박질렀다. 우악스런 돼지는 날카로운 송곳니로 사자를 물어뜯었다. 게으른 나귀조차 뒷발굽으로 사자를 걷어찼다.

점잖은 말(馬)만이 입을 꾹 다문 채 우뚝 서 있었다. 비록 사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찢어죽였어도 말(馬)은 사자에게 아무런 말(言)도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

나귀가 말(馬)에게 "다른 짐승들은 다 사자를 희롱하는데 너는 왜 너의 어머니를 죽인 사자를 괴롭히지 않느냐?"고 물었다. 말(馬)이 대답했다. "나한테 더 이상 아무 해도 끼칠 수 없는 사자에게 복수를 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천한 짓거리로 생각한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인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 살아 생전 고인에 대하여 악담을 퍼붓던 세력들은 여전히 그 악담을 멈추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이끌었던 민주당도 노 대통령으로 인하여 자신들에게 해나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까진 노 전 대통령을 방기(放棄)했다.

2002년 12월19일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노무현 대통령 재임 5년 동안 온갖 시비와 비난을 일삼던 세력들이 "(노 대통령의 서거에) 조문하는 것을 보니 지 애미 애비가 죽으면 과연 저렇게 할까"라는 거침없는 독설은 이들 세력이 늘 그래왔으니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더욱 가관인 것은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지난 4월 재보선을 앞두고 "노 전 대통령은 더 이상 민주당 당원이 아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랬던 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노무현 가치에 대한 재평가' 운운하며 '맏상주'를 자임하고 나선 것은 후안무치(厚顔無恥)이다.

불과 두 달도 안 된 지난 4월 민주당 핵심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리는) 권력을 개인의 노리개로 삼는 희극이고 권력이 춤을 추는 꼴이라 국민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로열패밀리의 범죄행위를 보장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국민을 업신여기고 법치를 파괴하는 국치문란행위다"며 노 전 대통령을 몰아붙였다.

그래 그랬던 민주당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맏상주'라니 이는 언어도단이다. 자신들에게 불리할 땐 "노 전 대통령은 더 이상 민주당 당원이 아니다"며 가차 없이 버리더니 유리할 것 같으니까 우리가 맏상주라고 나서는 것은 표리부동한 정상배(政商輩)에 불과하다.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이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하여 당당하게 제어하지 못한 책임에서 민주당은 자유로울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이 외부의 공격을 받을 때 적극 방어하지도 못했다"고.

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을 방어하지 않은 것은 지난해 검찰이 김민석 씨를 출국금지 조치하자 민주당이 강력히 반발하며 김민석 씨를 방어하고 나선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김민석 씨가 출국국지 당했을 때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핍박받고 궁지에 몰렸을 때, 노 전 대통령을 적극 나서서 방어한 사람이 민주당 내 과연 몇이나 있었는지는 스스로 더 잘 알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진정한 맏상주는 민주당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진정으로 슬퍼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맏상주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노 전 대통령의 정치철학으로 보면 더욱 그렇다.

민주당은 5년 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덕분에 당시 열린우리당이 국회에서 과반의석을 차지했듯, 혹 내년 6·2 지방선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활용하여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계산을 가지고 있다면 이를 즉시 파기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을 진정 애도하는 국민들로부터 벌써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열기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행위에 대하여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심은 항상 요동친다. 그리고 내일 바람은 내일 분다. 바람은 순풍만 있지 않다. 역풍도 있다. 민주당이 경계할 점이다.

더욱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해야 한다. 그것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遺志)를 제대로 받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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