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창 지역의 불상을 찾아 떠나면서 불교 문화관련 유적인 탑과 부도도 함께 답사 하였다. 그리고 주변에 간간히 보이는 정자와 고건축물들도 보았는데 별도로 이야기하기로 한다.
아림사지 석탑
거창군청 군의회 앞 로타리에 있으며, 옛날 아림사 석탑을 허물어 객사의 초석으로 사용하던 것을 모아 1975년 현 위치에 세웠다고 한다. 석탑은 오층석탑으로 복원되어 있고 주변에는 석등 대석이 있고, 다른 탑의 부재로 보이는 팔부중상이 새겨진 면석이 2개 있다.
복원된 석탑의 1층 몸돌에는 사방에 조각을 새겼는데 사방불이 아닌 공양상으로 추정된다. 상당히 기존 탑에 새겨진 도상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조각이다.
아직 비지정 문화재이다. 거창 박물관 야외에도 아림사에서 옮겨진 초석과 각종 부재들이 야외에 진열되어 있다.
갈계리 삼층석탑
갈계리 삼층 석탑은 현재 탑불 마을을 조금 지나면 도로변에 있다. 주변이 워낙 달라져 당시 절터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탑 몸돌이나 기단부에 조각은 새겨져 있지 않고 지붕돌 밑은 4단으로 받침이 되어 있고 기단에 비하여 탑신이 너무 작아 빈약해 보인다. 데다가 3층 옥신 대신에 노반(露盤)을 끼워 얹어서 볼품이 없다. 주변 보호 철책이 너무 높게 설치되어 있고 문화재 안내문 중 탑의 꼭대기 부분을(上輪部)라고 한자를 잘못 설명해 놓았다. 현재 탑의 문화재 안내문을 보면 경남의 경우 이렇게 탑의 윗부분, 꼭대기부분이라 하여 상륜부(上輪部)라고 많이 표기해 놓았는데 상륜부(相輪部)가 맞는 표현이다. 전체적인 점검이 필요로 해 보였다. 고려시대 탑으로 추정되는 되는 탑이다.
거창 박물관 야외 유물
거창 박물관 야외에는 석탑과 각종 부재들이 많이 옮겨져 있다. 석등 옥개석은 송계사에서 옮겨져 있고, 천덕사지 삼층석탑은 남상면 임불리에서 옮겨져 있는데 고려시대 석탑이다.
또 2007년 위천초등학교에서 옮겨진 가섭암터 석탑과 소야골 탑골 3층 석탑이 신월면 와룡리 소야마을 뒷산에서 옮겨져 있다.
송림사지 석조여래좌상
이 불상은 원래 마리면 말흘리 송림마을 절터에서 출토되어 마리중학교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현재 거창박물관으로 옮겨온 것이다.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하고 머리는 소발(素髮)에 육계가 낮으며 얼굴에는 미소가 아직 남아 있다. 소매 자락에는 평행 밀집문이 새겨져 있어 독특하며 양손은 마멸이 심하여 자세히 알 수 없다.
연화대좌는 위에 앉아 있으나 원래 제작인지 알 수 없고 중대석에는 나한상이 새겨져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사람 얼굴보다는 오히려 동물상에 가까워 보인다. 고려시대 석불로 추정된다.
감악사지 부도
감악산 중턱 길가에 위치해 있으나 네비게이션은 그 위치를 찾지 못하고 주변 엉뚱한 것을 가르쳐 준다. 신선 폭포다. 등산로가 있어 혹시나 해서 산길을 넘어 가 보아도 나오지 않았다. 지도를 보고 마을을 찾아 보니 도로변에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2킬로미터이다. 찾아 가시는 분들은 흰돌 기도원을 찾아 가는 길을 가다보면 찾기가 더 쉽다. 다소 좁은 길이나 차가 부도 앞 까지 간다. 1984년 4월에 흰돌기도원이 세워진 이후 1987년에 감악마을 주민에 의해 현재의 장소로 이전되었다고 한다.
기단부와 탑신부만 남아 있고 상륜부는 결실되었으나 돌 하나를 얹어 놓았다. 팔각의 하대석, 운룡이 새겨진 중대석 괴임, 팔각의 중대석, 삼단의 층급받침에 복련을 새긴 상대석, 팔각의 탑신석과 귀꽃을 새긴 지붕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의 부도에 비해 형식적이며 크기도 다소 작고 조각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바로 옆에는 불두가 사라진 불상이 있는데 마멸이 삼하나 비로자나불로 보이며 앞에는 광배도 파손된 채 있다.
주변의 산세가 어찌나 좋은지 역시 주변에 절이 들어설 만한 장소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당시 주변을 상상 속에 그리며 어렵게 찾은 곳이어서인지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아직 몇몇 유적들은 다 보지 못하였으나 다음 기회를 기약하면서 발길을 돌려왔다.
아림사지 석탑
▲ 아림사지 석탑 전경아림사지 석탑 ⓒ 김환대
▲ 아림사지 석탑 아림사지 석탑 1층 몸돌 조각 ⓒ 김환대
복원된 석탑의 1층 몸돌에는 사방에 조각을 새겼는데 사방불이 아닌 공양상으로 추정된다. 상당히 기존 탑에 새겨진 도상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조각이다.
▲ 아림사지 석탑 아림사지 석탑 ⓒ 김환대
▲ 아림사지 석탑 아림사지 석탑 ⓒ 김환대
아직 비지정 문화재이다. 거창 박물관 야외에도 아림사에서 옮겨진 초석과 각종 부재들이 야외에 진열되어 있다.
갈계리 삼층석탑
갈계리 삼층 석탑은 현재 탑불 마을을 조금 지나면 도로변에 있다. 주변이 워낙 달라져 당시 절터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 갈계리 삼층석탑갈계리 삼층석탑 ⓒ 김환대
탑 몸돌이나 기단부에 조각은 새겨져 있지 않고 지붕돌 밑은 4단으로 받침이 되어 있고 기단에 비하여 탑신이 너무 작아 빈약해 보인다. 데다가 3층 옥신 대신에 노반(露盤)을 끼워 얹어서 볼품이 없다. 주변 보호 철책이 너무 높게 설치되어 있고 문화재 안내문 중 탑의 꼭대기 부분을(上輪部)라고 한자를 잘못 설명해 놓았다. 현재 탑의 문화재 안내문을 보면 경남의 경우 이렇게 탑의 윗부분, 꼭대기부분이라 하여 상륜부(上輪部)라고 많이 표기해 놓았는데 상륜부(相輪部)가 맞는 표현이다. 전체적인 점검이 필요로 해 보였다. 고려시대 탑으로 추정되는 되는 탑이다.
거창 박물관 야외 유물
거창 박물관 야외에는 석탑과 각종 부재들이 많이 옮겨져 있다. 석등 옥개석은 송계사에서 옮겨져 있고, 천덕사지 삼층석탑은 남상면 임불리에서 옮겨져 있는데 고려시대 석탑이다.
▲ 천덕사지 삼층석탑천덕사지 삼층석탑 ⓒ 김환대
또 2007년 위천초등학교에서 옮겨진 가섭암터 석탑과 소야골 탑골 3층 석탑이 신월면 와룡리 소야마을 뒷산에서 옮겨져 있다.
▲ 가섭암지 석탑가섭암지 석탑 ⓒ 김환대
송림사지 석조여래좌상
이 불상은 원래 마리면 말흘리 송림마을 절터에서 출토되어 마리중학교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현재 거창박물관으로 옮겨온 것이다.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하고 머리는 소발(素髮)에 육계가 낮으며 얼굴에는 미소가 아직 남아 있다. 소매 자락에는 평행 밀집문이 새겨져 있어 독특하며 양손은 마멸이 심하여 자세히 알 수 없다.
▲ 송림사지 석조여래좌상송림사지 석조여래좌상 ⓒ 김환대
▲ 송림사지 석조여래좌상송림사지 석조여래좌상 중대석 나한상 추정 ⓒ 김환대
연화대좌는 위에 앉아 있으나 원래 제작인지 알 수 없고 중대석에는 나한상이 새겨져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사람 얼굴보다는 오히려 동물상에 가까워 보인다. 고려시대 석불로 추정된다.
감악사지 부도
감악산 중턱 길가에 위치해 있으나 네비게이션은 그 위치를 찾지 못하고 주변 엉뚱한 것을 가르쳐 준다. 신선 폭포다. 등산로가 있어 혹시나 해서 산길을 넘어 가 보아도 나오지 않았다. 지도를 보고 마을을 찾아 보니 도로변에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2킬로미터이다. 찾아 가시는 분들은 흰돌 기도원을 찾아 가는 길을 가다보면 찾기가 더 쉽다. 다소 좁은 길이나 차가 부도 앞 까지 간다. 1984년 4월에 흰돌기도원이 세워진 이후 1987년에 감악마을 주민에 의해 현재의 장소로 이전되었다고 한다.
▲ 감악사지 부도감악사지 부도 ⓒ 김환대
기단부와 탑신부만 남아 있고 상륜부는 결실되었으나 돌 하나를 얹어 놓았다. 팔각의 하대석, 운룡이 새겨진 중대석 괴임, 팔각의 중대석, 삼단의 층급받침에 복련을 새긴 상대석, 팔각의 탑신석과 귀꽃을 새긴 지붕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의 부도에 비해 형식적이며 크기도 다소 작고 조각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바로 옆에는 불두가 사라진 불상이 있는데 마멸이 삼하나 비로자나불로 보이며 앞에는 광배도 파손된 채 있다.
▲ 감악사지 부도 불상감악사지 부도 옆 불상 ⓒ 김환대
주변의 산세가 어찌나 좋은지 역시 주변에 절이 들어설 만한 장소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당시 주변을 상상 속에 그리며 어렵게 찾은 곳이어서인지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아직 몇몇 유적들은 다 보지 못하였으나 다음 기회를 기약하면서 발길을 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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