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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천상병 시인 옛집 지키는 시골부부

"농사지어 번 돈으로 비석 세우는 날 개관식 할 터"

등록|2009.06.05 15:46 수정|2009.06.09 01:19

고(故) 천상병 시인의 옛집충남 태안군 안면도 시골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모종인(56), 이숙경(47)부부가 천 시인이 마지막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던 의정부 옛집을 재개발로 인해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시골 오지마을로 옮겨왔다. ⓒ 정대희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날, 가서, 말하리라 아름다웠더라고..."

고(故) 천상병 시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도 그의 대표적인 시 '귀천'의 일부분인 이 문장을 한 번쯤 들어보지 못한 이는 없을 것이다.

'문단의 마지막 순수시인' 또는 '문단의 마지막 기인(奇人)'이라 불리는 고(故) 천상병 시인. 그가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을 끝내는 날까지 살다간 옛집은 어떻게 되었을까?

충남 태안군 안면읍 대야도. 시골마을에서도 오지로 불리는 이곳에 고(故) 천상병 시인의 옛집이 서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동산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일본 효고현 히메지시에서 출생해 마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삶의 둥지를 의정부에 틀었던 시인의 옛집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왜 이런 오지에 들어서 있을까?

고인의 옛집을 옮겨왔다는 모종인(56), 이숙경(47)부부를 만나보았다.

카페 '귀천'이 맺여 준 인연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 모종인, 이숙경 부부. 겉보기도 여느 시골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이들 부부가 고인의 옛집을 옮겨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모종인씨는 '사명감을 느꼈다'는 말을 시작으로 사연을 풀어놓았다. 모씨는 대학 시절 디자인을 전공하고 졸업 후 고향인 충남 안면도로 귀향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허나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도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주기적으로 서울 인사동을 찾게 만들었다. 천 시인과의 인연은 이때 비로소 시작됐다.

젊은 시절부터 평소 천 시인의 시를 좋아한 모 씨는 주변 동료들이 마련해준 천 시인과 그의 부인 목순옥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 '귀천'을 찾게 됐고, 그 후 서울에 갈 때면 어김없이 인사동 카페에 들러 이들 부부와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면서 친분이 두터워졌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은 천 시인이 고인이 된 후에도 이어졌다. 모씨는 아직도 한 달에 두세 번 이제는 목순옥 여사가 홀로 카페를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사동 '귀천' 카페를 찾고 있다.

고인의 책상천상병 시인이 사용했던 책상. 그의 부인 목순옥 여사가 모종인씨에게 기증했다. ⓒ 정대희


재개발에 떠밀려 사라질 위기 처했던 고(故) 천상병 시인의 옛집

천 시인의 옛집이 철거된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여름.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목 여사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전화통화를 하던 날이었다.

모씨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설명했다.

"서로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나누던 중 흘러가듯 목 여사가 생전에 천 시인 살던 옛집이 안타깝게도 재개발로 인해 철거되게 됐다고 소식을 전해주더군요. 그 말이 밤이 되도록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거예요."

긴 대화중에 나눴던 짧은 몇 마디지만 모씨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천 시인의 옛집 철거 소식은 결국 시골 오지마을에 천 시인의 옛집이 새둥지를 틀게 한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당시 목 여사는 천 시인과 살던 집이 낡아 바로 옆집으로 이사를 한 상태였다. 전 국민에게 사랑받으며,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의 입을 통해 자주 읽히는 문학작품을 펴낸 유명시인의 옛집이 재개발로 인해 세워질 아파트에 의해 헌신짝 같이 내팽겨 치워진다고 생각하니 피가 끓었다. 문득 '아~내가 책임져야겠구나' 라는 사명감을 느꼈다." 

옛집 옮기기 위해 펜션 포기해

모씨는 결심이 서자 바로 의정부 천 시인의 옛집을 찾아 집 주인을 만나 2004년 당시 집값 120만원을 주고 구입한 후 철거해 지붕과 문틀 등 부자재를 가져와 복원했다. 천 시인의 옛집을 복원하기 위해 모씨는 펜션을 포기했다. 목 여사로부터 철거소식을 접하기 전, 모씨는 비교적 규모가 큰 펜션을 운영하기 위해 공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펜션을 짓기 위해 허가 받은 토지가 있었다. 지금 운영하고 있는 것보다 좀 더 큰 규모로 펜션을 운영하려고 했는데, 천 시인의 옛집 철거 소식을 듣고 포기했다. 사실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 고민도 많이 했는데, 숙경씨가 오히려 용기를 주고 힘을 보태줘서 무사히 옮길 수 있었다."

아직도 연애할 때처럼 아내의 이름을 부르는 모씨는 천 시인의 옛집을 복원하기까지 아내의 역할이 상당했다고 한다.

"숙경씨가 펜션짓는 사람한테 밥은 안해줘도 (옛집) 복원하는 사람들한테는 밥도 해주고 간식거리도 챙겨주는 등 신경을 많이 써줬다."

천 시인의 옛집이 복원되자 목 여사가 천 시인이 남기고 간 유품이라며 70여점의 그림, 사진 등을 기증했다. 또, 다른 문화․ 예술인도 모씨의 선행을 듣고 자신들의 작품을 기증하겠다는 소식이 뒤를 이었다.

결국 모씨는 당초 펜션을 지을 부지에 천 시인의 옛집을 옮기고 바로 옆에 문학관을 건립하는 등 작은 문화․예술 공간을 마련하게 됐다.

'귀천'과 '안면송'옛집의 방 한켠 벽에 걸려져 있는 천상병 시인의 대표적인 시 '귀천'. 태안군에서 자생하는 안면송 그림과 함께 액자로 만들어 있었다. ⓒ 정대희


옛 집 옮긴 후, '오해와 감동' 엇갈려...

허나 모씨는 생각지도 않던 고민거리가 생겼다. 천 시인의 옛집을 복원하고 나자 주변에서 "펜션장사를 위해 천 시인의 옛집을 옮겨와 이를 이용한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도 이런 소문에 맘이 아프고 가끔씩 고민도 하고 있다.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광고효과를 위해서가 아니면 누가 펜션 지을 토지에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의 집을 옮겨 놓겠냐는 것이다. 당연히 주위에서 생각하기는 펜션 지어 여름철 찾아오는 관광객으로부터 수익을 얻는 것이 마땅한 일이지요."

그렇다면, 이들 부부가 5년째 옛집을 관리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그건 바로 고인이 된 천상병 시인을 사랑하고 그를 찾는 사람들 때문이다.

모 씨는 아직도 생생하게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며 감동적인 일화를 얘기해줬다.

"몇 해 전 일겁니다. 하루는 천 시인 옛집에 내려갔는데 아주 오래된 구형 프라이드 한 대가 주차돼 있더군요. 너무 낡은 것지요. 누가 왔나? 하고 조심히 주변을 살펴보니 한 가족으로 보이는 아빠와 엄마 아이들 두 명이 눈에 띄더군요. 근데 떠나는 순간까지 그 가족에게 아는 체 할 수가 없었어요.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 장면은 마치 영화속 한 장면 같았어요. 아빠와 아이들은 의자에 앉아있고 그들의 앞에서 엄마가 시낭독을 하는 아름다운 광경이었지요. 한참을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눈물이 흐를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어요."

"또 한번은 청주 어느 시골에서 택시를 타고 온 분이었는데, 택시비만 무려 26만원을 들여서 찾아왔다는 거예요. 그냥 천 시인의 옛집이 보고 싶어서...그래서 이렇게 초라해서 어떻게 하냐고 되물으니...그 분이 원래 이렇게 초라했잖아요. 만약 화려했다면 실망했을 거예요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애정을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힘이 납니다. 이젠 오해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무런 연고가 없기 때문에 이곳에 왔다고..."

그렇다면, 모씨가 기억하는 천상병 시인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참 막걸리를 좋아하셨던 분이예요. 그리고 참 순박한 사람이었지요. 매일 '천원만 주게 막걸리 사먹게'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그게 다 예요..."라고 말했다.

끝으로 앞으로 계획이 있냐고 묻자 "농사지어 번 돈으로 기념비를 세워 개관식을 하는 것이 꿈이다. 또한, 지금처럼 우리부부가 잘 관리해 나갈 수 있도록 응원해 주길 바란다. 허나 만약 정말 의미 있는 장소에 뜻 있는 분들이 이주를 희망한다면 언제든지 내줄 의향은 있다."고 말했다.

모종인, 이숙경 부부천상병 시인의 옛집을 지키고 있는 모종인, 이숙경 부부. "농사해 번 돈으로 비석을 세우는 날 개관식을 할 것이라고 한다." ⓒ 정대희


한편, 이들 부부가 관리하는 고(故) 천상병 시인의 옛집과 문학관은 이곳을 찾는 방문객이면 언제나 누구든 무료로 이용이 가능하며, 특히 주말에는 천상병 시인의 유품과 다양한 문화․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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