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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이 쓴 책이 100만부 넘게 팔렸다고?

[서평] 게키단 히토리의 <소리나는 모래 위를 걷는 개>

등록|2009.06.06 11:42 수정|2009.06.06 11:58

▲ <소리나는 모래 위를 걷는 개>겉표지 ⓒ 이레

게키단 히토리의 <소리 나는 모래 위를 걷는 개>는 일본에서 100만부 넘게 팔렸다고 한다. 놀라운 숫자다. 그 성적표만 본다면 말 그대로 '밀리언셀러'라고 부를 만하다. 더 놀랄 일은 이 소설을 쓴 작가가 전문적인 소설가가 아니라 '개그맨'이라는 사실이다.

요즘 연예인이 쓴 책이 소위 '대박'을 터뜨린다고 하지만, 무조건 그런 것은 아니다. 타블로와 빅뱅의 경우가 그렇듯,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책의 경우는 어떤가? 개그맨이 소설을 썼다고 했을 때, 다들 회의적으로 봤을 것이다. 연예인이라는 사실이 장애물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100만부 넘게 팔렸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이유가 뭘까? 무슨 내용이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선택했던 걸까? <소리 나는 모래 위를 걷는 개>는 단편집처럼 보이지만 각각의 소설을 개별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소설의 주인공들이 다른 소설의 인물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첫 작품 '길 위의 생'의 '나'는 직장인이다. '나'는 회사생활이 지겹다. 단지 지겨운 것이 아니라 '감옥'처럼 여기고 있다.

'나'는 흔들리는 만원전철에서 홈리스를 본다. 숨쉬기 어렵고 조금도 움직일 틈이 없는 그곳에서 홈리스만이 여유롭게 서 있었다. 사람들이 그의 냄새가 싫어 옆으로 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 냄새가 싫지만은 않다. 생체적으로야 불쾌하지만, 정신적으로는 그것을 자유의 냄새라고 여긴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직장생활에 넌더리가 난 사람은 그럴 수도 있는 법이다.

'나'는 그 일을 기점으로 홈리스가 되기로 한다. 회사일이 끝난 뒤에 공원으로 가서 홈리스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만족하는가. 만족한다.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제야 비로소 자유롭다고 느낀다. 이어지는 소설 '안녕하세요, 나의 아이돌 님'의 '나'는 어떤가.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돌에게 선물해주기 위해 월급을 털어 명품을 구입해 선물해주고 잠잘 때 빼고는 언제나 아이돌을 응원하는 오타쿠적인 '나'는 어떤가. 남들이 뭐라건 상관없다. 만족할 뿐이다.

이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고작 열 장 찍을 수 있는 디카를 들고 카메라맨을 꿈꾸는 프리터, 웃기지도 않는 개그를 연발하는 삼류 개그맨, 삼류 개그맨을 찾아 도쿄로 올라온 순진한 아가씨 등 그들의 행동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자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그럼에도 그들은, 만족하고 있다. 단지 홀로 만족할 뿐인가.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조금씩 움직이게 만든다.

그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세상의 중심에서 비켜섰다. 어찌 보면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뭔가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모습들 하나하나가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자주 보이는 것들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소심한 희망으로 만족해하는, '외톨이'지만 뭔가 힘을 내보려고 하는 그런 모습이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이 사랑받았던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소리나는 모래 위를 걷는 개>는 작품성이 뛰어난 소설은 아니다. 반면에 대중성이 뛰어나다. 시류에 영합하는 그런 대중성이 아니다. 조금은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소심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그것이 있는데 그것이 이 소설을 빛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소설답게 현실적이지 않은 구석도 많다. 읽으면서 어이없다는 생각도 제법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그 매력이 빛바래지는 않는다. 일본을 넘어 이곳에서도, 위로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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