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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안 와서 큰 일이다"

<질매섬 농사일기 -2>

등록|2009.06.06 17:46 수정|2009.06.06 17:46
옛날이면 부지깽이도 일을 했을 만큼 요즘 농촌은 쉴틈이 없는 때입니다. 농기계가 있어 옛날처럼 바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은 사람 손길이 가야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날 마늘 뽑은 후 2주 만에 모내기 때문에 고향에 갔습니다.

그런데 형님이 약을 잘못 뿌리는 바람에 모가 다 말라 버렸습니다. 모내기는 하지 못하고 텃밭에 심은 감자, 참깨, 콩, 팥을 돌아보았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 땅은 메말랐습니다. 큰 일입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말라 죽을 것 같습니다. 감자꽃이 시들시들합니다.

▲ 감자꽃 ⓒ 김동수


어머니께서 심었던 씨감자부터 문제가 있더니 비 마저 오지 않아 올해는 제대로 된 감자 먹기는 틀렸습니다. 아내가 감자를 좋아해 얼마 전부터 '감자 감자' 했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감자와 고구마 따위는 약을 치지 않기 때문에 완전 친환경 농산물입니다. 비가 오면 그래도 조금은 좋은 감자를 먹을 수 있겠지만 내리쬐는 햇볕을 보니 감자는 아마 내년을 기대해야 될 것 같습니다.

옆에서 콩이 새싹을 금방 틔웠습니다. 메마른 땅을 뚫고 올라온 것을 보니 대견한 생각이 듭니다. 지난 번 마늘을 뽑고 나서 심은 콩입니다. 2주 만에 올라운 콩을 보면서 생명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 콩 ⓒ 김동수

붉은 콩는 이미 꽃을 피웠고, 열매까지 열렸습니다. 우리 고향은 붉은 콩을 '본디'라고 합니다. 왜 본디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올해는 본디가 잘 되었네요?"
"그래 본디가 잘 되었다 아이가. 비가 좀 왔으면 더 잘됐다 아이가. 고마 비가 안 왔다가 아이가."
"그래요 비가 와야지. 콩도 올라 왔는데 비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그렇다 아이가 본디는 이리 다 열어서 조금 있다가 따면 되는데 콩하고, 깨는 큰 일이다가 비가 좀 와야 될낀데."  

▲ 빨간콩 ⓒ 김동수


▲ 빨간콩 ⓒ 김동수




콩 옆에 있는 참깨입니다.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가장 키우기 힘든 녀셕이 참깨입니다. 이 녀석은 땅이 비가 너무 오지 않아도 문제, 너무 많이 와도 문제입니다. 성격 하나 정말 까다롭습니다. 옛날 어른들 말로는 참깨는 마대자루에 넣어야 농사가 끝났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키우기 힘듭니다. 아무리 참깨가 잘 되어도 하룻밤 비가 오면 따 떨어져버리고, 낫으로 수확을 해놓고 햇볕에 말릴 때 비가 올 때 설거지를 못하면 썩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참깨는 정말 노심초사 하지 않으면 키울 수 없는 녀석입니다.

▲ 참깨 ⓒ 김동수



워낙 배합사료값이 비싸 동생이 청보리를 심어 조사료를 한우에게 먹입니다. 청보리를 논에 심었는데 집 옆 돌밭에 청보리 씨앗이 떨어졌든지 청보리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대단한 생명력입니다. 돌밭에 난 청보리를 보면서 사료값이 좀 떨어지고, 정부가 부자들 세금 깎아주는 정성 중 10% 정도만 농민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돌밭에서 자란 청보리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 청보리 돌밭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 김동수



우리 집에는 과일 나무가 제법있습니다. 단감 나무, 대추 나무, 앵두 나무, 매실 나무 따위가 있지요. 그 중에 무화과 나무가 있는데 늦여름과 초가을이면 아내가 가장 먹고 싶어하는 과일입니다. 무화과가 탐스럽게 커가고 있습니다. 올 늦여름 아내에게 가장 먼저 기쁨을 줄 녀석입니다. 무화과도 약을 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입 안에 들어갑니다. 잘 익은 무화과 단맛은 어떤 과일도 따라 올 수 없지요.

▲ 무화과 ⓒ 김동수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대추 나무를 하나 심었는데 이 녀셕이 자식을 넷이 낳았습니다. 대추나무 생명력은 대단했습니다. 그냥 나뭇가지를 땅에 꼽아도 살아날 정도이지요. 대추가 열렸는데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모든 과일이 이렇게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에서 크게 자랍니다.

▲ 대추꽃 ⓒ 김동수



과일 중에 나는 단감을 제일 좋아합니다. 조금 딱딱하고,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우러납니다. 다른 과일은 한 두 번 씹으면 삼키지만 단감은 한 두 번으로 안 되지요. 찬 바람이 돌 때 단감 먹을 생각하니 그만 입 안에서 침이 고였습니다. 동생이 약치는 것을 워낙 싫어해 단감도 나무에 달린 것을 그 자리에서 따 먹을 때가 많습니다. 갑자기 생각이 납니다. 지지난해(2007년) 어머니께서 단감나무에서 단감 따다가 그만 떨어져 허리를 다쳤지요. 올해는 단감 나무에 올라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 감입니다. ⓒ 김동수



올해도 감자, 붉은 콩, 참깨, 청보리, 대추, 무화과, 단감과 함께 뜨거운 여름을 보내야 합니다. 바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적당한 비와 바람, 햇빛으로 이 녀석들을 보살펴 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 손길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농사를 짓다보면 사람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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