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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추념사, 이명박-노무현 비교해 보니

[주장] 이렇게 해서 남북문제 풀리겠습니까?

등록|2009.06.06 18:50 수정|2009.06.06 19:14
오늘(6일)은 54회 현충일이었다. 버스를 타고 현충원을 지나는데 "좌빨을 물리치자" 등의 레드컴플렉스가 가득 담긴 플래카드들이 뒤덮여있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현충원을 지나는데 라디오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가 흘러나왔다. 들으면서 난 지금 한반도 위기, 대북문제 운운하는 그가 얼마나 지독한 소통불능자인지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이 단순히 정세에 발맞춰진 거저 먹은 성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추념사를 듣다보니 드는 생각이다.

이명박 대통령 지난 2년의 추념사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3년의 추념사를 보며 그 차이를 나름 비교해봤다. 이명박 대통령의 남북문제 해결의 혜안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6.25전쟁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두 대통령 많이 다르다

▲ 6일 동작동 국립 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5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추념사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이명박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를 지키기 위해 먼 이국땅에서 꽃다운 젊음을 바친 유엔군 장병들께도 형제의 이름으로 꽃을 바치고 향을 피웁니다.(54회 2009년)

(선열들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으로(54회)

(6.25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전쟁(53회 2008년)

노무현

민족자존의 가치를 한층 드높이고,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에 대한 예우를 다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입니다.(50회 2005년)

해방이 되었으나.… 동족간의 전쟁이라는 엄청난 불행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하나로 단결해서 대처했더라면 그 엄청난 불행은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단지 저만의 것은 아닐 것입니다.…

민족정기와 자주독립, 통일을 외쳤지만 서로를 배제하고 용납하지 못한 채 목숨까지 걸고 싸웠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친일파까지 권력에 이용한 장기독재는 결국 4·19 희생을 가져 왔습니다.(51회 2006년)

독립 이후 자주와 통일을 염원하던 민족을 둘로 갈라놓고 총칼을 겨눈 것이 과연 우리 민족의 선택이었을까? 오랜 세월 일제치하에 있던 우리 민족이 독립 직후 뭘 꿈꿨을지 생각해보자. 그건 자주독립, 통일이었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라… 그 말 뜻이야 백번 생각해도 좋은 의미지만, 이승만이 들고 나온 이 주의가 얼마나 자유롭고 민주적인지 난 이승만을 보면서는 통 알 수가 없어서 말이다.

투표를 5인 1조로 해서 서로 보여줄 수 있는 자유? 결과야 바꿔치기해도 투표는 시켜줬으니 민주? 도대체가 어디에 자유가 있고 민주주의가 있냔 말이다.

이승만을 비롯해 그 측근들은 친일에서 친미로 겉옷만 바꿔입었고, 이들의 주도로 이남 단독정부가 들어서게 됐다. 이로부터 4.19, 5.18, 6월항쟁 등 피의 항쟁들이 이어져왔던 것이 우리의 지난 아픈 역사임은 자명하다. (물론, 이승만을 '자유민주주의'를 이 땅에 세워낸 선구자로 추종하는 뉴라이트는 피의 항쟁들을 빨갱이들의 반란쯤으로 여기긴 한다만….)

근데 이 역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선 철저히 배제받고 있단 느낌이다. 뉴라이트와 쏙 빼다 박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한다면, 대통령과 뉴라이트 중 어느 쪽이 기분 나빠할까….

어찌 됐든, 오랜 일제 지배에서 막 벗어나서 자주로운 독립국가를 꿈꾸던 우리 민족에게 동족전쟁을 겪게 한 건 의혈심이었단 선동이 아닌, 진심어린 사죄가 필요한 거지 싶다.

그러면서 유엔군 장병에게까지 추모의 마음을 전하는 대통령의 모습, 진심으로 그 죽음을 추모한다기보단 북에 대한 적대감, 미국에 대한 충성심이 느껴지는 건 아주 논리적 귀결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북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둘의 차이는 크다

이명박

산업화와 민주화가 굳건한 안보의 토대 위에 가능했듯이 당면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우리가 추구하는 선진일류국가도 튼튼한 안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54회)

북한의 위협은… 우리 국민 전체에 대한 도전입니다.…우리 모두 힘을 모아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나라 안팎의 도전을 이겨냅시다.…우리는 더욱 하나가 돼야 합니다.…빈틈없는 국방태세도 매우 중요하지만 내부의 단합과 화합이 더욱 중요합니다.(54회)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4년 6월 6일 오전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제49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 헌화한 뒤 분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노무현

저는 이번 주에…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게 됩니다.…남북 장관급 회담도 개최될 예정입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51회 2006년)

우리는 제도적인 화해는 이루었다.… 그러나 마음으로부터의 진정한 화해와 통합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이념적 색채를 씌우려는 풍토가 남아있고, 또 억울하게 희생당한 분들의 분노와 원한이 다 풀리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지난날의 잘못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합시다. 용서하고 화해합시다. 그래서 하나가 되고 힘을 모아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나갑시다.(52회 2007년)

휴전 상황이란 염두 하에서 진짜 말 그대로의 '안보'에 대해선 각기 다른 시각이 있겠지만, 정권에서 써왔던 '안보'는 '반공'이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안보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다니….

민주화 운동의 목숨을 바친 열사들은 '빨갱이'라 불리우며 '국가보안법'으로 죽어갔다. 산업화 과정의 엄청난 노동강도에 대해 '인간답게 살고싶다'던 전태일의 친구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갈 때에도 '국가보안법'이면 다 먹혔던 세상이다. 아, 신이시여… 이리도 후안무치한 발언을 들어본 적 있나이까….

결국 그는 또다시 '반공'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북을 대상화 하고 적대시 하며 반드시 북이 물러서야 우리도 물러설 거라는, 지난 10여 년 민족 통합을 위한 노력들 위로 차곡차곡 쌓아온 신뢰가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 여기까지 들린다.

그리고선 하나가 되자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 국민들에게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화해와 용서를 통해 마음에서부터 하나가 되어가자는 그 '하나'와 이리도 달리 들릴 수가 없다.

묘향산까지 진행하기로 되어있는 오체투지 순례단은 오늘 임진각에서 일단 오체투지를 마친다. 1월에 북측에 취지와 묘향산까지의 순례를 요청했고, 초대장이 왔다. 마치 당장이라도 전쟁이 날 것마냥 얘기하던 보수언론과 정권이 참 민망하게 됐다. 그리고 6월 1일, 순례단은 통일부에 그 초대장을 근거로 방북신청서를 냈다. 6월 15일까지 묘향산에 도착하는 이후 일정은 정부의 허가 여부에 달렸다.

한 가지 제언을 하자면…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허가를 전하며, 문규현 전종훈 신부님과 수경스님께 묘안을 구하는 건 어떨까? 이 위험해 보이는 한반도 정세를 평화로이 돌려세울 묘책을 말이다.

이북을 전쟁광으로 몰아넣으려고만 하지 말기를.

그러기엔 이런 정세 속에 오체투지 순례단에 도착한 그들의 초대장이 전쟁광이라고 하기엔 너무 순수해서 말이다.

국민들은 어쩌면 이북을 일면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참~~ 말 안 통하죠? 우리도 그래요~~"

하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http://our-dream.tistory.com/49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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