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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지역 문화유적 둘러보기(1)

언양벅수, 김취려장군묘, 언양성당, 지석묘

등록|2009.06.08 11:10 수정|2009.06.08 11:10
 6월의 시작을 알리고 벌써 주말이 되어 가까운 지역을 찾다가 울주 언양지역을 찾아 다시금 예전에 본 유적들을 살펴보았다. 날씨도 초여름 날씨에 가까울 정도로 덥다가 흐리기 시작한다.

언양벅수

언양읍내 도로변에 있는 벅수는 들녘이나 마을 어귀에 설치하여 지역간의 경계표와 이정표 구실을 하고 더불어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다.

언양벅수도로변에 있어 찾기가 쉬워졌다. ⓒ 김환대


수호신으로 세운 장승과도 같은 역할이다. 울주군 언양읍 동부, 남부 주민들이 지금도 바로 옆 당수나무와 함께 잘 관리하고 있는데, 당수나무는 목욕제계 하고 국민태안과 주민들의 건강과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고 있다. 이 벅수는 원래 이곳에 있던 것이 아니고 동북쪽으로 10여미터 떨어진 것을 옮겨 놓은 것으로 예전에는 한때 다리의 부재로 사용되었다고도 전한다. 마모가 심하나 눈 코 입 부분은 남아 있어 윤곽은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위열공 태지유허비각

고려 시중 위열공 김취려장군의 태지유허비는 능골의 묘소로 올라가는 입구에 있으며 주변에는 송릉재가 있다. 

위열공 태지유허비각위열공 태지유허비각 ⓒ 김환대


김취려 장군묘

김취려 장군(1172?~1234)은 언양 김씨로 고려사에 의하면 고종 3년(1216)에 거란왕자 금산(金山), 금시(金始)가 대요목국왕(大遼牧國王)이라 칭하고 몽고에게 쫓겨 국경을 넘어오자 김취려 장군은 후군병마사로 상장군 노원순 등과 함께 1만3천의 군사로 15만 거란병을 물리치는 대승을 거뒀다. 또 고종 4년에는 거란병이 개성을 위협하고 철원, 원주 등을 짓밟았는데 그는 서울을 지켜 적의 침공을 물리쳤다고 한다.

김취려장군묘김취려장군묘 ⓒ 김환대


김취려장군 묘소에 석상김취려장군 묘소에 석상 ⓒ 김환대


김취려장군 묘소에 사자상김취려장군 묘소에 석사자 석등 옛 부재에 그대로 만들어 세웠다. ⓒ 김환대


현재 묘소에는 근래 석인상과 석등 부재, 예전 무신상 그리고 사적비가 남아 있는데 비문에는 장군의 일대기가 적혀 있다. 이 묘는 1909년 도굴꾼이 도굴하였다고 한다. 묘소에 관하여는 이 곳 언양 화장산과 강화도 진강산의 두 곳에 모두 묘와 묘비석이 있어 진위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화장사

언양성당 바로 인근에는 화장사란 작은 규모의 절이 있는데 복원된 삼층석탑과 옮겨진 것으로 보이는 석상이 있다. 대웅전은 단청이 오래되어서인지 현재 건물 일부 부재들을 보수하였고, 주변에 옛 부재들이 남아 있었다.

화장사 삼층석탑화장사 삼층석탑 ⓒ 김환대


화장사 석상화장사 석상 ⓒ 김환대


주변은 언양읍성이 있어 연계하여 한번 들러보면 좋을 듯하다.  

언양성당

언양성당은 울산지역에서 최초로 건립된 성당으로 부산교구의 유일한 고딕식 건물의 성당이다. 파리외방전교회 에밀 보드뱅 신부가 명동성당을 건축한 중국 기술자들을 데려다 성당을 완공하였다고 한다.

언양성당언양성당 고딕건축물이다. ⓒ 김환대


언양성당 종언양성당 종 ⓒ 김환대


초대주임 에밀 보드뱅 정도령 신부 동상과 본관 및 사제관 그리고 신앙유물전시관이 있는데 은혜성모상, 천상모후상을 비롯하여 초기 천주교 포교사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유물들이 갖추어져 있으며 등록문화재 103호이다.

큰 규모의 언양 지석묘

언양성당을 나와에서 석남사 방향으로 가다 보면 왼쪽에 삼성아파트가 보이고 삼성아파트 앞쪽 놀이터에는 청동기시대 지석묘가 있다. 도로변에 이정표도 있어 찾기는 쉬운 곳이다.

언양지석묘언양지석묘 ⓒ 김환대


영남 지방에서는 가장 큰 규모라 하며 지역 주민들은 용바위라 하여 예전부터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아직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지하의 돌방 형태나 출토 유물은 알 수 없지만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덮게 돌이 매우 큰 것이 특징이며 청동기시대 언양 지역의 정치, 사회, 문화 등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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