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즐기는 시각장애인... 그가 사는 법
상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한 장애인, 비장애인도 마찬가지인 것을...
오랜만에 달리는 시골길이다. 까치조차 잘 보이지 않고 바람이 연신 불어대는 들판 시골길 초입에 젊은 신사 하나가 길 건너는 유치원생이 드는 것 같은 동그란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그 팻말에 쓰인 글씨는 "태워 주세요!"다. 말끔한 홍안의 그 양복쟁이 아저씨는 근처 양로원의 시각장애인 물리치료사였다. 일단 태우고 난 뒤에 물어보았다.
"왜 안 보이면서 지팡이나 인도견이나 자원봉사자도 없이 혼자..?"
"ㅎㅎ 제가 잘 생기고 이렇게 옷 깨끗이 입었는데 누가 안 태워주겠습니까?"
"아니 안 보여서 거울도 못 보는데 자기가 잘 생긴 거 우째 알죠?"
"내가 맘에 걸림없이 사니 내 얼굴이 밝을 거라 믿거든요."
"아.......그래요?............"
내 옆에 동승한 노처녀 자원봉사자는 내게 소곤거렸다.
"언니! 언니! 오늘 건수 올린 거 같애. 아, 차암 멋있네. 나 이 남자한테 연애 한 번 걸어볼까나."
운전하다 차를 멈추고 그녀의 엉덩이를 꼬집으며 "야! 이 호박기집아, 농담도 정도가 있지 그게 소리냐? 너 남친은 우짜고? 내킨대로 하다가 이제 애물 아닌 퇴물이 될 수 있디. 집어치그랴"고 말했다.
이 땅 장애우들은 내팽겨치지거나 무조건 도움받는데 익숙하다. 그들이 그렇게 원한 것이 아니라 딸보다는 아들을 우선 공부시키던 그 관습과 집안에 장애인이 있다거나 또는 불운한 일은 쉬쉬하는, 잘난 척하는 사회풍토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래서 모두들 드러내지 못하고 꾸밈없는 겨울나무처럼 정직한 알몸을 내보이는 장애인들이 보기 드문 것이다. 어찌 장애인들만 그럴까. 일반 사람들도 자기 가난과 상처앞에선 정직하지 않다. 가난은 환경탓으로 돌리고 불행한 상처와 갈등의 원인도 상대 탓으로 돌린다.
그리고 다시는 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 하지 않는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이 다시 시골로 돌아가기 싫어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뿌린만큼 거두기 힘든 상황 때문일 것이다.
정말로 가난을 극복하고 상처를 극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처절한 가난을 되새기며 힘겨워하는 누군가의 가난을 나누려 한다. 그리고 자신의 피나는 상처를 되새기면서 타인의 상처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을 종종 본다. 자기 장애를 그대로 겨울나무처럼 드러낸 남자에게 물었다.
"오늘 시내 왜 가는데요?"
"연극 때문에. 연극 보러가요."
"뭐요? 뭐! 연극이라구요? 안 보이는데 뭘 어떻게 본다고?"
"ㅎㅎㅎ 난 대사와 음악과 무대공기를 느끼면 다 파악되어요. 몇 사람이 그 공연장 안에 있고 무대에 몇 명 올라와 있는지도 대충 다 알아요."
놀라웠으나 금세 이해되었다. 왜냐면 청각장애인인 나도 하루에 밥보다 더 챙기는 것이 음악이니까. 겉소리를 듣지 못할지라도 마루를 울리는 안소리의 향기, 울림, 소리의 빛을 느끼고 사니까. 그 남자는 우리 사무실에 우연히 와서 이 공간 안에 있는 사람이 열 명인 지 삼십 명인지 실제로 맞췄다.
모든 예술은 눈과 귀로만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과 영혼으로도 느낄 수도 있다. 당연히 있어야만 되는 오장육부와 사지라도 한 두 개 없으면 없는 대로 잘 살아가는 사람들과 때로는 없기 때문에 더 진솔하고 꾸밈없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것은 송백 나무가 꼭 꽃을 색색이 피우거나, 단풍이 가지마다 화려하게 들지 않더라도
겨울에 더 꾸밈없어 진솔해지는것과 비슷할지 모른다.
테레사수녀님의 말이 생각난다.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받을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너무 정직하고 솔직하면 겨울나무처럼 황량한 찬바람을 맞기도 하고 솜덩이같은 서러움을 안기도 한다. 정직과 솔직의 길은 외롭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을 향하는 겸손한 길이기도 하다. 그런 속에서도 영혼의 뿌리는 굳세어지면서 좀 더 푸른 잎을 피울 수가 있는 것이다.
차를 세운 그 안마사는 오늘도 그렇게 자기 장애를 생활속에 당당히 드러내고 또는 연극을 보지 못하면서도 마음의 눈으로 다 보는 듯이 살아가고 있다. 특별해 보이는 듯하지만 사실은 아주 평범한 일상을 즐기면서.
그 팻말에 쓰인 글씨는 "태워 주세요!"다. 말끔한 홍안의 그 양복쟁이 아저씨는 근처 양로원의 시각장애인 물리치료사였다. 일단 태우고 난 뒤에 물어보았다.
"왜 안 보이면서 지팡이나 인도견이나 자원봉사자도 없이 혼자..?"
"ㅎㅎ 제가 잘 생기고 이렇게 옷 깨끗이 입었는데 누가 안 태워주겠습니까?"
"아니 안 보여서 거울도 못 보는데 자기가 잘 생긴 거 우째 알죠?"
"내가 맘에 걸림없이 사니 내 얼굴이 밝을 거라 믿거든요."
"아.......그래요?............"
▲ 시각장애인 퇴역장교 프랭크를 주인공으로 만든 영화 <여인의 향기> ⓒ 여인의향기
내 옆에 동승한 노처녀 자원봉사자는 내게 소곤거렸다.
"언니! 언니! 오늘 건수 올린 거 같애. 아, 차암 멋있네. 나 이 남자한테 연애 한 번 걸어볼까나."
운전하다 차를 멈추고 그녀의 엉덩이를 꼬집으며 "야! 이 호박기집아, 농담도 정도가 있지 그게 소리냐? 너 남친은 우짜고? 내킨대로 하다가 이제 애물 아닌 퇴물이 될 수 있디. 집어치그랴"고 말했다.
이 땅 장애우들은 내팽겨치지거나 무조건 도움받는데 익숙하다. 그들이 그렇게 원한 것이 아니라 딸보다는 아들을 우선 공부시키던 그 관습과 집안에 장애인이 있다거나 또는 불운한 일은 쉬쉬하는, 잘난 척하는 사회풍토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래서 모두들 드러내지 못하고 꾸밈없는 겨울나무처럼 정직한 알몸을 내보이는 장애인들이 보기 드문 것이다. 어찌 장애인들만 그럴까. 일반 사람들도 자기 가난과 상처앞에선 정직하지 않다. 가난은 환경탓으로 돌리고 불행한 상처와 갈등의 원인도 상대 탓으로 돌린다.
그리고 다시는 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 하지 않는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이 다시 시골로 돌아가기 싫어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뿌린만큼 거두기 힘든 상황 때문일 것이다.
정말로 가난을 극복하고 상처를 극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처절한 가난을 되새기며 힘겨워하는 누군가의 가난을 나누려 한다. 그리고 자신의 피나는 상처를 되새기면서 타인의 상처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을 종종 본다. 자기 장애를 그대로 겨울나무처럼 드러낸 남자에게 물었다.
"오늘 시내 왜 가는데요?"
"연극 때문에. 연극 보러가요."
"뭐요? 뭐! 연극이라구요? 안 보이는데 뭘 어떻게 본다고?"
"ㅎㅎㅎ 난 대사와 음악과 무대공기를 느끼면 다 파악되어요. 몇 사람이 그 공연장 안에 있고 무대에 몇 명 올라와 있는지도 대충 다 알아요."
놀라웠으나 금세 이해되었다. 왜냐면 청각장애인인 나도 하루에 밥보다 더 챙기는 것이 음악이니까. 겉소리를 듣지 못할지라도 마루를 울리는 안소리의 향기, 울림, 소리의 빛을 느끼고 사니까. 그 남자는 우리 사무실에 우연히 와서 이 공간 안에 있는 사람이 열 명인 지 삼십 명인지 실제로 맞췄다.
모든 예술은 눈과 귀로만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과 영혼으로도 느낄 수도 있다. 당연히 있어야만 되는 오장육부와 사지라도 한 두 개 없으면 없는 대로 잘 살아가는 사람들과 때로는 없기 때문에 더 진솔하고 꾸밈없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것은 송백 나무가 꼭 꽃을 색색이 피우거나, 단풍이 가지마다 화려하게 들지 않더라도
겨울에 더 꾸밈없어 진솔해지는것과 비슷할지 모른다.
테레사수녀님의 말이 생각난다.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받을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라!"
너무 정직하고 솔직하면 겨울나무처럼 황량한 찬바람을 맞기도 하고 솜덩이같은 서러움을 안기도 한다. 정직과 솔직의 길은 외롭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을 향하는 겸손한 길이기도 하다. 그런 속에서도 영혼의 뿌리는 굳세어지면서 좀 더 푸른 잎을 피울 수가 있는 것이다.
차를 세운 그 안마사는 오늘도 그렇게 자기 장애를 생활속에 당당히 드러내고 또는 연극을 보지 못하면서도 마음의 눈으로 다 보는 듯이 살아가고 있다. 특별해 보이는 듯하지만 사실은 아주 평범한 일상을 즐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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