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쇄신', 공은 박근혜 지나 결국 이재오에게?
쇄신특위 사퇴 이정현 "화합형 대표 추대, 당헌 파괴적 발상"... 친이 "조기전대"
▲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역사박물관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뒤 차에 오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한나라당에 공이 하나 날아다닌다. 한 무리는 공이 속으로 곯았다고 확신한다. 받기만 하면 터져 물크러진 속을 뒤집어쓸 것이라고 짐작한다.
여당 쇄신론, 돌고 돌아 '제자리'
한나라당 쇄신 논의 얘기다. 대통령과 국정기조를 개혁하겠다던 쇄신론은 지도부 퇴진 논쟁을 지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쇄신=조기전대' 구도는 여전하다. 이 덕분에 쇄신의 핵심인 이명박 대통령은 한발 비껴서 있다.
"지도부가 즉각 사퇴하지 않으면 활동을 종료하겠다"고 별렀던 쇄신특위(원희룡 위원장)는 태도를 바꿔 활동을 재개했다. 박희태 대표가 "이대로는 떠밀려갈 수 없다"며 버텨서다. 대신 박 대표는 "쇄신의 본체는 대화합이다. 이를 위해 직을 걸겠다"며 쇄신특위에 '화합 전대'를 위한 방안을 주문했다. 사실상 박근혜 전 대표에게 당권을 넘기는 방안을 찾아보란 얘기다.
다시 '화합'으로 돌아왔는데 '친박'에선 반발한다. "정치적인 의도를 갖고 쇄신의 초점을 흐린다"는 주장이다. "박 전 대표가 대표를 맡을 여건이 안 되고 의사도 없는데 끌어들인다"(수도권 친박 의원)는 성토가 나온다. '쇄신은 곧 조기전대'란 구도에 박 전 대표를 대입해 마치 그가 쇄신의 걸림돌인 것처럼 몰아간다는 주장이다. 친박의 판단 이면에는 현재 박 전 대표가 대표를 맡아봤자 득 될 게 아무것도 없다는 정치적인 계산도 깔려있다.
'친박' 이정현 "쇄신특위, 본질 비껴 조기전대에만 몰두"... 사퇴
▲ 4.29 재보선 참패 후 당 재정비를 위해 신설된 한나라당 쇄신특위가 15일 여의도 당사에서 첫 전체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착수한 가운데 특위 회의에 참석한 이정현 의원이 물을 마시고 있다. ⓒ 남소연
8일 쇄신특위 전체회의에선 친이와 친박 사이에 이 같은 불신의 일단이 드러났다.
'친박' 이정현 의원이 '친이 소장파'의 맏형격인 정두언 의원의 인터뷰 내용을 도마에 올린 게 발단이었다. 정 의원은 인터뷰에서 박 전 대표를 겨냥해 "아예 당이 더 망가지기를 기다리는 것 아니냐. 그러고 나서 '땡처리'하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자 정두언 의원과 가까운 '친이' 정태근 의원이 가로막고 나섰다. "박 대표의 '조건부 사퇴'에 대해 논의하는 쇄신특위 회의에서 왜 개인의 견해를 들고와 문제 삼느냐"는 취지였다.
한동안 두 의원 사이에 고성이 오갔고, 이 의원은 쇄신특위 운영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결국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다. 이 의원은 이날 대표실에 사퇴서를 제출했다.
이 의원은 9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쇄신특위가 대통령의 국정 개혁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나 국민에겐 관심사도 아닌 조기전대 여부라는 지엽적 사안에만 몰두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의원은 쇄신특위 일각에서 '화합 전대'의 방안으로 '박근혜 추대'를 거론하는 것도 결국은 '초점 흐리기'라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우리는 근본적으로 쇄신을 하자는 건데, 지엽적인 (조기전대) 사안에 동의하지 않으면 마치 '반쇄신파'인 것처럼 낙인찍고 있다"며 "화합형 대표 추대론도 당헌 파괴적 발상"이라고 맹비난했다.
이어 이 의원은 "쇄신의 핵심은 당이 '청와대 눈치 보기'나 '보이지 않는 지침'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당직 인선, 공천, 입법 활동, 정책입안 등 전반에 걸쳐서 당의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쇄신특위 위원이자 친박인 김선동 의원도 "마치 지도부 거취가 최고의 쇄신 주제인 것처럼 드라이브를 걸다가 결국엔 '박근혜 탓'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친이쪽을 꼬집었다. 또 김 의원은 "특위에서 화합 전대 방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된 적도 없고 '화합형 대표 추대론'에 공감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수용 불가' 의사를 내비쳤다.
결국 이재오 전 의원에게 가나... 친이 일각 "그래도 조기전대 해야"
▲ 이재오 전 한나라당 의원 ⓒ 남소연
지금 구도대로라면 공은 친이 쪽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더 정확히는 이재오 전 의원이다. 이재오계에서는 여전히 조기전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이런 의혹을 키운다.
이 전 의원과 가까운 한 의원은 "쇄신특위에서도 화합형 대표 추대론까지 논의가 진전된 바 없다"며 "박근혜 전 대표가 '친박'의 대표이니 전당대회에 나와서 절차에 따라 대표가 되도록 하는 안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수도권 친박 의원은 "이른바 '화합 전대'라는 건 실현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조기전대를 밀어붙이는 의도가 무엇이겠느냐"며 "결국 이 전 의원이 당권을 거머쥐려는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박희태 대표도 박 전 대표나 친박 쪽이 조기전대에 나서지 않더라도 이미 물러날 결심을 굳힌 듯하다. 박 대표의 한 측근은 "화합 전대가 되든 안 되든 10월 재·보선 전에는 새 지도부가 출범해 선거를 치러야 하지 않겠느냐"며 "대표도 용단을 내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쇄신특위 쪽도 "박 대표가 원희룡 위원장에게 당 화합을 위해 직을 걸고 노력하되 안 될 경우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쇄신특위도 입장이 난처하다. 무위론도 나온다. 게다가 '화합 전대'가 무산될 경우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중립성향의 한 특위 위원은 "특위로선 '대표 즉각 퇴진' 주장을 관철시키기 어려운 상황이고, 박 대표 입장에서도 (불명예스럽게) 퇴진하기엔 부담이 크니 양쪽이 일종의 절충안을 찾은 것이지만, 결국 논의가 원점으로 와 고민이 더 커졌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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