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조국에 몸바친 통일운동의 스승을 추모하며!
- 고, 힌돌 강희남 목사님, 부디 천상에 드소서-
한반도 조국분단 64년을 맞는 6월6일, 원한의 분단 때문에 온 국민이 조국에 몸 바친 영령들을 추모하는 그날에 자주적인 민족평화통일의 스승이신 힌돌 강희남 목사님의 서거는 8천만 동포의 슬픔이다. 우리 모두 영전에 안식을 기도한다.
힌돌 목사님은 아호와 같이 언제나 백의민족의 상징인 하얀 두루마기 한복을 입으시고 9순을 바라보시면서도 평화통일의 장에서 언제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분단을 자괴하시곤 했다. 우리는 자주적인 평화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고인은 60년 70년대에 독재와 유신에 항거하며 80년대에 통일운동의 재야 원로로서 활동하시었다. 1990년 11월 늦봄 문익환 목사와 함께 범민련 남측 의장을 맡으시면서 활기차게 투쟁하셨다. 1994년 김일성주석 사망에 남측 대표단을 이끌고 판문점을 넘으려다 옥고를 치루셨다.
또한 2003년에는 이라크파병에 대한 강력한 반대의 뜻을 펴기 위해 목포에서 서울까지 천리 길을 걸어서 파병 저지운동에 앞장섰다. 지난 1965년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용병에 대하여 고인은 자주적인 나라의 자존을 버렸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허지만 고인이 한때 희망을 걸었던 때도 있었다. 조국분단 반백년 만에 이루어진 남북 6.15 공동선언이 이뤄져 큰 기대를 걸었다. 그리고 10.4선언에 대한 기대도 했었다. 9.19 공동선언과 북미간의 화해 조짐에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이루던 10년의 세월은 잃어버린 퍼주기로 폄하되었다. 지난해 2월에 정권교체에 따라 모두 부정하는 듯한 MB정권의 대북정책에 실망이었다. 특히 자주적인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역행하는 대북정책에 깊은 회의와 불만이었다.
특히 지난 현충일 추념식에 대통령의 추도사에서 남북화해협력에 대한 언급보다 오직 한미동맹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는 추도사에 실망과 분노했다고 전한다. 그동안 수차례 남북관계 악화에 단식을 하는 등, 고인은 결국 자결로 의지를 관철했다.
고인의 충격적인 자결은 아직도 우리에게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슬픔이 가시지 않고 있는데, 여기에 더한 힌돌 목사님의 결행은 젊은 우리들에게 넋을 잃게 했다. 89세의 연세에 극단적인 운명을, 우리들이 어찌 받아들여야 하는가!
슬프고 가슴 아픈 순간이었다. 분단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 모두에게 말할 수 없는 자책의 마음을 갖게 했다. 감히 젊은이들이 행하지 못하는데 9순의 어르신의 극단적인 마지막 모습은 우리에게 두고두고 큰 책무를 안겨주시었다.
나는 지난달 우연히도 친구에게서 힌돌 목사님의 유고처럼 귀한 글 한편을 전해 받았다. 힌돌 목사님이 열차로 귀향하시면서 함께 한 자리의 내 친구에게 한편의 글을 건네주시면서 말씀하시었다. "우리의 과제는 외세 제국주의를 물리치고 자주적 조국의 평화통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고인이 된 힌돌 목사님의 글을 요약한다.
8천만 동포들에게
MB가 우리 민족사에 등장함으로 거의 1년을 넘게 어느 신문이 그를 비난과 질책을 하고 있다. 그가 우리 보통사람과 같은 양심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일종의 차원 높은 충고가 들어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충고도 사람 나름이다. 쇠코에 경 읽힌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허공의 메아리다.
우리 땅에서 실질적인 평화나 질서는 물 건너갔다. 평화는 범용한 사람(mediocre)들에게만 필요한 것이고 영웅에게는 전쟁이 필요하다. 우리 민족으로 치자면 대북 긴장과 싸움 말이다. 그가 청와대에 들어간 것은 우리의 닭장을 지키라고 이리를 불러들였다. 그의 목적은 기존 질서의 파기에 있다. 민중억압과 같은 말이다. 그것은 제국주의자들이 바라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강자 앞에는 알랑쇠(sycophant)요 약자에게는 폭군(tyrant)이 되는 법이다. 통일도 그들이 원하는 자유민주주의 무력통일이 있을 뿐 평화통일은 없다.
이 땅에서 대북 긴장관계 전쟁태세가 고조되면 될수록 네오콘이나 극우세력이 제고된다. 이는 외세를 배경으로 하기에 승승장구한다. mb이후로 대북 대결정책 고조로 북에서 이에 대응하는 경계 태세다. 이는 mb가 거든 열매다. 그는 지지표 다지기를 민중저항 밀어붙이기로 한다. 서울 시청이나 광화문 민중시위는 옛말이다. 그에게는 조국이나 민족 역사인식이 없다. 오직 권력이 있을 뿐이다. 빈민 노동자 민중은 없다. 용산참사가 이를 웅변한다. 예수의 말을 빌리면 양의 옷을 입은 이리이다.
교과서 왜곡을 보라! 철저히 반민족적 반역사적인 추구다. 언론장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맛이 좋으니까! 진정 백성을 위하는 정치가 있다면 아무 말 안 해도 사람들은 모여든다. 언론을 장악하려는 것은 못된 짓을 하겠다는 시사이다. 다시 말해서 패도정치(mightyruling)이다. 이미 공포정치라는 말도 나돌고 있다. 그의 모든 행위는 장래까지 생각한 무리수로 보여 진다. 그러나 물이차면 넘치는 법이다. 서양 사람들의 말에 "씹을 수 없을 정도의 큰 덩어리를 물지 말라"는 말도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강한 지도자들이 모두 측근에 사라졌다. 아무리 mb라 해도 자녀들 중에 똑똑한 자가 나타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는 먼저 자녀에게서 버림받게 되는 것이니 후생이 두려운 존재이다. 그러기에 항상 "후손을 마음에 두라(have pusterity in mind)" 라는 말도 알아둘 일이다."
이상 요약된 힌돌 강희남 목사의 글이 이제 와서 마치 유언처럼 읽히고 있다. 최후의 운명을 결행하시며 남기신 유언장에도 현 대통령에 강력한 질책의 글을 의미하면, 고인은 오래전 분단조국의 방향에 대하여 심사숙고 하시며 괴로워하신 것 같다.
이제 내일이면 향린교회에서 마지막 장례추모예배를 드리고 벽제화장장에서 육신을 열반하시고 늦봄 문익환 목사가 고히 잠들고 계신 모란 민주묘원으로 안장되신다. 힌돌 강희남 목사님! 부디 천상에 드시고 분단조국 통일 구구 살펴 주소서!
힌돌 목사님은 아호와 같이 언제나 백의민족의 상징인 하얀 두루마기 한복을 입으시고 9순을 바라보시면서도 평화통일의 장에서 언제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분단을 자괴하시곤 했다. 우리는 자주적인 평화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2003년에는 이라크파병에 대한 강력한 반대의 뜻을 펴기 위해 목포에서 서울까지 천리 길을 걸어서 파병 저지운동에 앞장섰다. 지난 1965년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용병에 대하여 고인은 자주적인 나라의 자존을 버렸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허지만 고인이 한때 희망을 걸었던 때도 있었다. 조국분단 반백년 만에 이루어진 남북 6.15 공동선언이 이뤄져 큰 기대를 걸었다. 그리고 10.4선언에 대한 기대도 했었다. 9.19 공동선언과 북미간의 화해 조짐에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이루던 10년의 세월은 잃어버린 퍼주기로 폄하되었다. 지난해 2월에 정권교체에 따라 모두 부정하는 듯한 MB정권의 대북정책에 실망이었다. 특히 자주적인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역행하는 대북정책에 깊은 회의와 불만이었다.
특히 지난 현충일 추념식에 대통령의 추도사에서 남북화해협력에 대한 언급보다 오직 한미동맹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는 추도사에 실망과 분노했다고 전한다. 그동안 수차례 남북관계 악화에 단식을 하는 등, 고인은 결국 자결로 의지를 관철했다.
고인의 충격적인 자결은 아직도 우리에게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슬픔이 가시지 않고 있는데, 여기에 더한 힌돌 목사님의 결행은 젊은 우리들에게 넋을 잃게 했다. 89세의 연세에 극단적인 운명을, 우리들이 어찌 받아들여야 하는가!
슬프고 가슴 아픈 순간이었다. 분단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 모두에게 말할 수 없는 자책의 마음을 갖게 했다. 감히 젊은이들이 행하지 못하는데 9순의 어르신의 극단적인 마지막 모습은 우리에게 두고두고 큰 책무를 안겨주시었다.
나는 지난달 우연히도 친구에게서 힌돌 목사님의 유고처럼 귀한 글 한편을 전해 받았다. 힌돌 목사님이 열차로 귀향하시면서 함께 한 자리의 내 친구에게 한편의 글을 건네주시면서 말씀하시었다. "우리의 과제는 외세 제국주의를 물리치고 자주적 조국의 평화통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고인이 된 힌돌 목사님의 글을 요약한다.
8천만 동포들에게
MB가 우리 민족사에 등장함으로 거의 1년을 넘게 어느 신문이 그를 비난과 질책을 하고 있다. 그가 우리 보통사람과 같은 양심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일종의 차원 높은 충고가 들어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충고도 사람 나름이다. 쇠코에 경 읽힌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허공의 메아리다.
우리 땅에서 실질적인 평화나 질서는 물 건너갔다. 평화는 범용한 사람(mediocre)들에게만 필요한 것이고 영웅에게는 전쟁이 필요하다. 우리 민족으로 치자면 대북 긴장과 싸움 말이다. 그가 청와대에 들어간 것은 우리의 닭장을 지키라고 이리를 불러들였다. 그의 목적은 기존 질서의 파기에 있다. 민중억압과 같은 말이다. 그것은 제국주의자들이 바라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강자 앞에는 알랑쇠(sycophant)요 약자에게는 폭군(tyrant)이 되는 법이다. 통일도 그들이 원하는 자유민주주의 무력통일이 있을 뿐 평화통일은 없다.
이 땅에서 대북 긴장관계 전쟁태세가 고조되면 될수록 네오콘이나 극우세력이 제고된다. 이는 외세를 배경으로 하기에 승승장구한다. mb이후로 대북 대결정책 고조로 북에서 이에 대응하는 경계 태세다. 이는 mb가 거든 열매다. 그는 지지표 다지기를 민중저항 밀어붙이기로 한다. 서울 시청이나 광화문 민중시위는 옛말이다. 그에게는 조국이나 민족 역사인식이 없다. 오직 권력이 있을 뿐이다. 빈민 노동자 민중은 없다. 용산참사가 이를 웅변한다. 예수의 말을 빌리면 양의 옷을 입은 이리이다.
교과서 왜곡을 보라! 철저히 반민족적 반역사적인 추구다. 언론장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맛이 좋으니까! 진정 백성을 위하는 정치가 있다면 아무 말 안 해도 사람들은 모여든다. 언론을 장악하려는 것은 못된 짓을 하겠다는 시사이다. 다시 말해서 패도정치(mightyruling)이다. 이미 공포정치라는 말도 나돌고 있다. 그의 모든 행위는 장래까지 생각한 무리수로 보여 진다. 그러나 물이차면 넘치는 법이다. 서양 사람들의 말에 "씹을 수 없을 정도의 큰 덩어리를 물지 말라"는 말도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강한 지도자들이 모두 측근에 사라졌다. 아무리 mb라 해도 자녀들 중에 똑똑한 자가 나타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는 먼저 자녀에게서 버림받게 되는 것이니 후생이 두려운 존재이다. 그러기에 항상 "후손을 마음에 두라(have pusterity in mind)" 라는 말도 알아둘 일이다."
이상 요약된 힌돌 강희남 목사의 글이 이제 와서 마치 유언처럼 읽히고 있다. 최후의 운명을 결행하시며 남기신 유언장에도 현 대통령에 강력한 질책의 글을 의미하면, 고인은 오래전 분단조국의 방향에 대하여 심사숙고 하시며 괴로워하신 것 같다.
이제 내일이면 향린교회에서 마지막 장례추모예배를 드리고 벽제화장장에서 육신을 열반하시고 늦봄 문익환 목사가 고히 잠들고 계신 모란 민주묘원으로 안장되신다. 힌돌 강희남 목사님! 부디 천상에 드시고 분단조국 통일 구구 살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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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살아남은자 저희들이 이따에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하렵니다. 천상에서 저희들의 평화통일운동을 굽어 살펴주소서. 그렇게 고인께서 바라시는 mb정권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역사적 안목에 다가가는 순간들이 도래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