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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는 엄청난 사회비용 초래  쌍용차·GM대우 합치면 살 수 있다"

[인터뷰] '쌍용차 전문가' 정명기 한남대 중국통상·경제학부 교수

등록|2009.06.11 09:07 수정|2009.06.11 09:07

▲ 정명기 한남대학교 중국통상·경제학부 교수. ⓒ 선대식


"시내를 돌아다녀 보면, 다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는 불가피한 것 아니냐'고 해요. 어떤 사람은 '회사가 어려우면 노동자가 희생해야 하지 않느냐',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 언성을 높이기도 하죠. 자기 일이 아니니까 100%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언젠가 이정아 쌍용차 가족대책위원장이 이같이 말했다. 쌍용차 평택 공장에 들를 때면 어김없이 만나는 그는 기자에게 사람들이 왜 '구조조정=정리해고'라고 생각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일자리가 중요하다면서 정리해고를 강행하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인건비 절감 방안은 정리해고뿐일까? 더 나아가 쌍용차가 다시 질주하려면 인력 구조조정을 통한 회생방안밖에 없는 것일까?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정리해고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명기 한남대 중국통상·경제학부 교수는 "다른 대안이 있다"고 강조한다.

"정리해고 관철되면, 모두 패자가 된다"

정명기 교수는 9일 오후 대전 한남대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나눈 인터뷰에서 "정리해고가 관철되면 모두 패자가 된다, 승자는 아무도 없다"고 강조했다. 엄청난 사회적 비용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고, 채권단조차 돈을 회수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노조는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회사보다 더 많은 인건비 절감액을 내놓았지만, 회사는 '현실성이 없다'고 일축했다"며 "회사는 대화를 통해 현실성 있는 부분은 받아들이고 정리해고를 최소화하는 게 상식이다, 국민들이 회사의 행태를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쌍용차 문제를 수수방관하는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상하이차는 투자를 하지 않고 신차 하나 만들지 않았다, 이는 쌍용차가 어려움에 빠진 큰 이유"라며 "많은 반대에도 쌍용차를 상하이차에 넘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정 교수의 말이다.

"산업은행이 대주주가 되어 운영을 맡아야 한다. 현재 관리인들은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독자생존이 어렵다면, GM대우와 묶을 수 있다. SUV와 디젤 엔진에 경쟁력이 있는 쌍용차와 소형차가 강점인 GM대우를 합치면 틈새시장을 뚫을 수 있다. 또한, 현대·기아차와 경쟁을 벌인다는 점에서 소비자 혜택은 더 커질 것이다."

정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현실성 없는 공허한 대안이 아니다. 이미 전 세계 각국은 자국의 자동차 산업을 살리기 위해 공적자금 투입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스웨덴 정부도 쌍용차와 규모가 비슷한 사브에 대해 서둘러 공적자금 투입을 결정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 두 가지 선택지를 내밀었다. 하나는 영국 모델이고, 또 하나는 독일 폭스바겐 모델이다. 위기 돌파 방안으로 영국 모델은 해외매각과 정리해고를, 폭스바겐 모델은 연구 개발과 일자리 나누기를 강조한다. 두 모델은 내용만큼이나 그 결과가 극명하게 갈린다.

"신자유주의적인 정책 아래 해외매각·정리해고 등이 이뤄진 영국 자동차 산업은 다 망했다. 2004년 영국의 자동차 산업 무역적자가 128억 파운드(26조원)에 달한다. 반면, 폭스바겐은 일자리 나누기와 연구개발로 위기를 돌파해 세계적 자동차 업체로 떠올랐다."

선택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노조 제안, '현실성 없다'고 일축하는 회사... 국민 이해하겠나"

▲ 정명기 한남대학교 중국통상·경제학부 교수. ⓒ 선대식


정명기 교수는 자동차산업 전문가다. 특히 쌍용자동차를 10년 가까이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2001년 대우자동차(쌍용차 포함)의 GM 매각과 쌍용차의 상하이차 매각에 반대 목소리를 높이면서 쌍용차에 관심을 두게 됐다.

이후 학부 특성상 상하이차를 깊게 연구할 수 있었고, 지난 2005년엔 쌍용차 노사 관계를 연구하기도 했다. 인터뷰에서 그의 마지막 말은 "쌍용차가 정말 잘됐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다음은 정명기 교수와 나눈 인터뷰를 간추린 것이다.

- 현재 회사는 정리해고를 강행했고, 노조는 회생 자구안 무효선언을 했다. 앞으로 쌍용차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보나?
"토끼도 사냥개에 쫓기다 보면, 사냥개를 문다. 왜 물었는지 생각 안 하고, 토끼가 사냥개를 물었다는 것만 부각하는 것은 잘못됐다. 정치권에서 적극 나서야 한다. 정부로서는 현 정국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서 강공(공권력 투입)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공장에는 시너 등 위험물질이 많다. 안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우려된다."

- 회사는 총 인원의 36%인 2646명을 구조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회사 쪽 주장을 어떻게 보나?
"비용절감 필요성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방식이 꼭 2646명 정리해고여야 하느냐다. 어떻게 책임 있는 경영자가 당장의 운영자금을 모두 정리해고를 통해 마련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나.

향후 1조 5천억 원을 투자해 5개 차종·신 엔진을 만든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자금 마련 계획도 없다. 결국 회사 방안대로 가면 승자가 없고 모두 패자가 된다. 채권단이 얼마의 돈을 건질 수 있겠지만, 그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다."

- 노조가 대안을 내놓았지만, 회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사의 인건비 1895억 원을 절감하겠단다. 노조는 임금을 담보로 1870억 원을 대출받고, 일자리 나누기로 759억 원을 절감하는 등 모두 2833억 원을 절감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회사는 '현실성이 없다'고 한마디로 일축했다. 회사는 대화를 통해 현실성 있는 부분은 받아들이고 정리해고를 최소화하는 게 상식 아니냐. 국민들이 회사의 이러한 행태를 이해할 수 있겠나."

-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원인을 알아야 한다. 쌍용차가 어려워진 이유는 무엇인가?
"원인은 복합적이다. 현대·기아차가 SUV 시장에 진입해 새로운 경쟁자가 생겼다. 여기에 세계 경제위기와 유가 상승으로 경유차 판매가 대폭 줄었다. 또한 2004년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한 후 단 하나의 신차도 출시하지 않은 것도 큰 이유다. 기업이 신제품을 만들지 않고 경쟁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다."

- 신차를 내놓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상하이차가 대주주 역할을 제대로 못 했다. 2005년 4천억 원을 투자해 평택공장 생산 능력을 연 30만 대로 늘리겠다고 했다. 2006년과 2007년엔 노사 특별협의에서 2009년까지 매년 3천억 원씩 투자해 신차를 개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하나도 실현되지 않았다.

경영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왜 쌍용차를 인수했는지 의문이 든다. 어떻게 4년간 R&D투자를 하지 않고, 쌍용차가 고사하도록 방치할 수 있나? 자신들이 필요한 기술만 얻어가려 했던 것 아닌가?"

- 많은 반대에도 정부는 상하이차에 쌍용차를 팔았다.
"쌍용차 문제에서 정부 책임론을 얘기하는 게 그런 이유다. 당시 정부는 구조조정 기업 주인 찾아주기와 공적 자금 회수에 주안점을 뒀다. 당시 쌍용차 주채권 은행이던 조흥은행에도 공적자금이 투입됐는데, 조흥은행이 돈을 회수하려고 서둘러 매각했다."

"대안은 쌍용차+GM대우... 틈새 시장 뚫을 수 있다"


- 하지만 보수 언론은 쌍용차의 어려움을 노동자 탓으로 돌리고 있다. 생산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쌍용차 판매가 급감한 2008년을 제외하면, 쌍용차는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이 결코 높지 않다. 2007년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이 현대차는 18.35%였는데, 쌍용차는 17.38%였다. 또한 쌍용차는 설비 자동화율이 떨어진다. 현대차 공장에 비하면 쌍용차 공장은 구멍가게 수준이다. 열악한 생산시설에서 그 정도로 생산한다는 게 기적이다."

- 또한 보수 언론은 파산 위기에 처한 미국 GM과 비교해, 쌍용차도 강성노조 탓에 어려워졌다고 지적한다.
"3월 미국 연구자료에 따르면, GM파산의 원인은 정부 규제 실패(40%)·기술 낙후성(30%)·경영 부실(15%)·높은 노동비용(15%) 순이었다. 미국 정부의 낮은 기름값 정책과 미흡한 배기가스 규제 결과로 미국 자동차 회사는 좋은 연비나 친환경 차를 만들지 않았다. 의료 개혁 실패로 의료비 부담 가중도 컸다. GM이 강성노조 때문에 망했다고 하는 건 사실 왜곡이다. 또한, 쌍용차 노조는 회사에 협조적인 노조였다. 파업도 많지 않다."

- 회사는 과거 대우차처럼 우선 정리해고를 하고, 기업이 정상화되면 해고자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한다.
"넓게 봐야 한다. 전체 경제를 위해서 정리해고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지금 경제 위기는 'IMF 사태' 때보다 심하다. 수출도 안 된다. 좋은 일자리를 늘려 내수를 살려야, 경제가 빨리 회생한다. 또한 다른 나라들은 자국 자동차 산업에 적극적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쌍용차와 규모가 비슷한 사브도, 스웨덴 정부가 자금 지원에 나섰다."

-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대안은 하나다. 산업은행이 채권을 출자전환해서 대주주가 되어 운영을 맡는 것이다. 현재 관리인들은 쌍용차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금 구조조정을 한다고 해도 채무를 조정하지 않고서는 유동성 위기는 또 온다.

앞으로 세계 자동차 기술 개발의 흐름은 친환경 고효율 디젤(유럽), 플러그인 전기자동차(미국), 하이브리드카(일본) 등으로 나뉜다. 정부로부터 이미 디젤 하이브리드 연구비를 지원받은 쌍용차는 디젤 쪽에 경쟁력이 있다."

- 쌍용차의 독자생존이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쌍용차·GM대우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이 두 기업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 GM대우가 '뉴GM'에 들어간다고 하지만, GM은 유동성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 소형차 생산기지라고 하지만, 이제 미국에서도 소형차를 생산하고, 상하이GM은 더 싼 차를 생산할 수 있다.

SUV가 강한 쌍용차와 소형차에 강한 GM대우를 합친다면 틈새시장을 뚫을 수 있는 회사가 탄생할 수 있다. 한국에 현대·기아차만 있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지금도 사실상 현대·기아차의 독점으로 한국 소비자가 미국 소비자보다 비싸게 차를 사면서도 혜택은 더 적다. 경쟁이 되면 소비자 혜택이 커질 것이다."

폭스바겐 모델과 영국 모델... 우리 사회의 선택은?

▲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내부에서 컨테이너박스 등으로 엮은 바리케이드가 마련됐다. ⓒ 선대식

- 한국과 비교할 만한 외국 사례가 있는가?
"한국은 대우·쌍용차 등을 외국 기업에 팔았다. 쌍용차의 경우 앞으로 정리해고까지 단행할 예정이다. 이는 실패한 영국 모델을 좇는 것이다. 영국은 1980년대 신자유주의적인 대처 정부가 국유화된 자동차 기업들을 민영화시켜 랜드로버·미니·재규어 등을 다 외국에 팔았다.

외국회사들이 구조조정을 했고, 결국 영국의 자동차산업은 망했다. 2004년 영국의 자동차 산업 무역적자가 128억 파운드(26조 원)에 달했다. 금융과 서비스산업을 키우면서 제조업을 등한시한 결과다. 한국도 이러한 영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따라가고 있다."

- 올해 1/4분기 자동차 판매 세계 2위(143만 대)를 차지한 폭스바겐의 사례는 쌍용차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폭스바겐 모델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다. 1990년대 일본자동차 회사들이 승승장구하자 1993년 폭스바겐은 위기에 빠졌다. 위기 돌파를 위해 폭스바겐은 노동자들을 주4일 32.5시간만 일하게 하는 대신, 이후 7년간 정리해고를 하지 않았다.

이후 생산이 늘어났지만, 일자리를 나누기 위해 전체 노동자의 5%에만 주당 40시간 근무를 허용했다. 이를 통해 2004~2006년 9만9천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현재 폭스바겐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 독일 폭스바겐 사례는 정리해고를 밀어붙이는 한국과 비교된다.
"폭스바겐은 결코 한국처럼 정리해고를 구조조정의 주요 수단으로 삼지 않았다. 기술개발과 일자리 나누기로 위기를 돌파했다. 현재 BMW도 정리해고를 하지 않고 오히려 연구직 노동자를 더 뽑기로 했다. 독일 자동차산업의 연구개발비는 독일 산업 전체의 37%에 달하는 189억 유로(33조 원)다. 자동차 강국 독일은 2005년 12.6%였던 실업률이 8.6%로 떨어졌다.

쌍용차 노조도 폭스바겐 모델을 따라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인건비 감축을 제안했다. 노조는 임금이 30~40% 줄어드는데도 '5+5'(주·야간조 하루 5시간씩 노동) 시스템을 한국에 적용하자고 했다. 한국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도 일자리 나누기를 주창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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