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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의 암울함을 그린 소설 <국가의 사생활>

등록|2009.06.10 11:54 수정|2009.06.10 11:54

▲ 국가의 사생활 책표지 ⓒ 민음사



"2016년 통일 대한민국의 화창한 봄날. 한 사내의 장례와 그것을 둘러싼 여러 사내들이 있었다. 이미 죽은 자와 아직 살아 있는 자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었으나 아무도 울거나 하지는 않았다." p.18


'사내들'은 통일 대한민국의 남쪽에서 활동하는 '조폭'이다. 그들은 통일이전 북한의 인민군 출신이었고, 통일이 되어 인민군이 해체되고 졸지에 실업자로 전락하자 그들 자신의 특기(?)를 그나마 살리면서 생계를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 방안으로 다시 뭉친 것이다.

지하3층 지상6층의 '광복빌딩'은 그들의 아지트이다. '통일 대한민국 이남 상류층 남자들이 이북 여성 접대부들을 만끽하는 당대 최고급 룸살롱'이 있고 그 아래로는 그들이 '땅굴'이라 부르는 작업장이 있다. 그 곳에서 '작업'과 '소각'이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대동강'이라 불리고 그들이 참여한 장례식에서 소설은 출발한다.

통일. 통일? 우리의 소원. 꿈에도 소원이던 통일이 이루어졌다.

문제는, 그 통일이 우리가 바라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계층이 분화하고 계층 간 갈등이 심화되고 하층민의 일부가 범죄 집단화 하면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남과 북이 합쳐졌음에도 불구하고 남북 사람들의 출신에 따라 서로를 적대시하고 경시하는 행위가 버젓이 이루어진다. 과거 '블레이드 런너'나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 '공각기동대' 류의 영화를 봤던 이들은 뭐, 상투적 미래이야기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통일의 노래를 부르는 순수한 영혼들은 통일될 한국의 미래를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소설은 인민군 출신 폭력조직의 2인자 리강을 중심으로 흐른다. 리강이 평양에 다녀온 동안 생긴 동료의 죽음. 그 죽음을 둘러싼 음모와 배신, 약간의 사랑을 포함하는 스토리 라인은 이미 우리에게 영화적으로 익숙하다. 그 속에서 지은이의 유머와 현실 풍자의 목소리는 등장인물을 통해 읽는 이에게 전해진다. 국가의 '실세'에 기생하는 조폭. 조폭의 우두머리 밑에서 몸으로 '충성'을 다하는 조직원들. 그네들의 생활은 이미 영화 '넘버3'나 '초록물고기', '우아한 세계'가 보여주었던 삶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통령부터가 통일 대한민국의 국토를 대상으로 투기를 하는 놈'이고 환각성이 강한 마약, '백도라지'와 가판에서 파는 '레드아이'에 의지해서 밤을 보내는 국민들. 재미있는 인물은 통일한국에서 가판을 가장한 약장수(본인이 제조한 마약을 판매) 이선우이다. 본래 무명연극배우였던 그는 사회 하층민의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약장수'로 근근이 살아가는 신분이다. 조폭신분을 숨긴 채 이선우에게 약을 종종 구매하는 리강.  어느날, 그 둘이 술을 마시면서 나누던 대화 중 이선우가 이강에게 하는 말은 대한민국의 정치, 사회, 경제 전반을 아우르는 비판의 핵심이다.

"(좌파든 우파든) 회사원인거지. 양쪽 다 회사원. 현실에서 제 잇속만 챙기는 회사원. 잘리거나 진급이 안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회사원. 과자 던져주면 냠냠 좋아하는 회사원. 국회의원들만 회사원이 아니야. 종교인들과 예술가들까지 전부 회사원이니 나머지 놈들은 말 다 했지. 종교인은 거론하기가 귀찮다. 관두자. 예술가는 뿔 달린 수도승이야. 균열이 없는 가슴에서 나오는 미학을 어떻게 믿을 수 있어? 회사원이 되지 말아야 그 사회가 건강해지는 사람들이 있어. 그들이 진짜 회사원들보다도 훨씬 옹졸한 겁쟁이가 돼 버린 거지. 늑대여야 하는 자들이 모조리 애완견이 돼 버린 거라구.

누가 키우고 있는 것일까? 물론 그렇게 알아서 기거나 길들여진 놈들이 더 한심하지만. 현실에서 죽음 이후를 겁낼 필요가 없는 사회는 희망이 전혀 없다. 너 말이야, 뭐하는 놈인 줄은 모르겠는데, 한국에서 출세하고 싶거든 절대 비판하지 마라. 비판은 곧 죽음이다. 죽음. 정 하고 싶은 얘기가 있거든 열라 큰 그림을 그려서 얘기해. 못 알아듣게. 회사 중역들이 기분 상하면 그날로 좆되는 거야. 정말 평생 죽기로 싸우고 나서 져도 절대 후회 안한다는 열정이 확고할 시에만 비판해. 지금은 비록 처절하게 당하고는 있지만 훗날 부관참시라도 해서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각오가 네 운명이 됐을 때나 비판해. 그럴 자신 없으면 비판하지 마. 당해." p.155

어디에서나 회사원처럼 살아야 하는 인생, 나라전체가 계급이고, 나이, 성별에 따른 계급과 고저차가 있으며 잘 보이기 위해 뇌물이 성행하는 세태와 맞닿는 비유다. 비판이 불가능한 사회. 참고 억누르는 법을 배우고, 계급 상층으로 상승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회적 인식을 비판한다.

'회사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싸움' 밖에는 없다. 그것도 내가 죽느냐 네가 죽느냐가 아닌  '나만 죽을지 모르는' 일방적인 싸움. 그런 싸움을 할 '바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다가 진짜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통일한국의 미래는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목 놓아 부르는 찬가와는 거리가 멀다. 어른이 되어버리면 주변의 모든 게 우울해 진다. 나를 나의 주변이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내 주변을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하지만 같은 현실 속에서 각자의 삶을 사는 사람들처럼 사람은 제 각기 다른 시각을 가지고 하나의 현상을 판단한다. 꿈을 꾸면서 살고 싶은 선우는 이렇게 말한다.

"내 과거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 멸종 직전의 언어를 처음부터 한 글자씩 정성스럽게 익혀 가면서. 내가 뭐하던 놈인지 묻지도 않고 내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책망 안 하는 그런 곳에서. 내가 추위를 무지하게 타거든. 그래서 극지방은 좀 그렇고. 아프리카가 괜찮겠다 싶어서. 나는 가난한데 걔들도 가난하니까 무시당할 것 같지도 않고. 태양이 용광로처럼 이글거리고 노을이 석류 같은 곳에서 살고 싶어. 그래. 암만 머리를 굴려 봐도 아프리카 오지 이상이 없는거 같아. 또 누가 알아? 정말로 추장 딸이 날 좋아해서 졸지에 팔자가 필지." p.158

나라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이는 결국 이민을 '꿈'으로 삼는다. 내가 어학연수를 위해 잠시 미국에 있을 때 그곳 교회에 다니는 나보다 나이가 대여섯 살 정도 많은 유학생이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넌 왜 한국에 있어. 여기가 얼마나 좋은데. 난 죽어도 한국엔 안가.'

책상머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10여년을 보상받는 시간, 대학 초년생인 나에겐 할 일도 많고 꿈도 가득했기에 그 유학생을 이해하지 못했다. 미국? 미국이 한국보다 뭐가 나아? 오히려 말과 문화가 달라서 더 이질감이 느껴졌고 나에겐 불편한 곳이다.

그럼, 어디가 좋을까. 아프리카는 풍토병에 더위, 모기,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거부감이 든다면, 복지국가 유럽의 핀란드나 노르웨이, 스웨덴? 상상의 날개를 펴고 떠날 생각만 하고 사는 '나'는 더 이상 그 안에 내가 없다. 정녕, 국가를 버리고 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내가 떠나서 당도하는 곳, 그곳에서는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덧붙이는 글 국가의 사생활 / 이응준 / 민음사 / 1만1000원 / 26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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