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1200여 명 살해, 60여 년 만에 유해 발굴
진실화해위, 진주 명석면-문산읍 일대 민간인 학살매장지 9곳 발굴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전후 진주형무소 재소자와 진주지역 국민보도연맹 사건' 관련 희생자의 유해를 발굴하기로 한 가운데, 10일 오후 진주명석면사무소에서는 개토제가 열렸고 이후 유족회는 명석면 용산리 등 매장지를 둘러보았다. ⓒ 윤성효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전후 진주형무소 재소자와 진주지역 국민보도연맹 사건' 관련 희생자의 유해를 발굴하기로 한 가운데, 10일 오후 진주명석면사무소에서는 개토제가 열렸고 이후 유족회는 명석면 용산리 등 매장지를 둘러보았다. 사진은 개토제 때 초헌례인 김동춘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이 영가전에 술잔을 올리는 모습. ⓒ 윤성효
언제 왜 어떻게 죽었는지도 몰랐는데, 60여 년만에 유해를 발굴한다. 아버지가 죽을 때 뱃속에 있었던 아이는 환갑을 앞두고 선친의 유골이라도 찾기 위해 나선 것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 아래 진실화해위)는 10일 오후 경남 진주 명석면사무소 강당에서 '진주 유해 발굴 개토제'를 지냈다. 발굴을 맡은 경남대 박물관(관장 이종흡) 관계자를 비롯해, 진주유족회 회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올해 진실화해위가 유해 발굴하는 민간인 집단희생 지역은 네 곳(경산코발트광산, 함평 광람리 불갑산 주변, 공주 상왕동 산 일대)인데, 이날 진주에서 개토제를 연 것. 진주 매장지는 총 9곳(명석면 7곳, 문산읍 2곳)으로 추정된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2월 '부산경남지역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주형무소에서는 1950년 7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최소 1200여 명의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들이 진주지구 CIC와 헌병대, 진주경찰서 경찰들에 의해 집단 살해되었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희생자 가운데 70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이들의 유해는 명석면 용산리, 우수리, 관리지와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 등지에 매장되어 있다.
진주유족회는 증언 등을 통해 지난해 집단 매장(추정)지를 지정해 놓았다. 진주유족회는 이곳에 안내문도 세워 놓았다. 발굴팀은 앞으로 2주 정도 매장지에 대한 정비작업과정을 거쳐 6월말경부터 발굴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전후 진주형무소 재소자와 진주지역 국민보도연맹 사건' 관련 희생자의 유해를 발굴하기로 한 가운데, 10일 오후 진주명석면사무소에서는 개토제가 열렸고 이후 유족회는 명석면 용산리 등 매장지를 둘러보았다. 사진은 개토제 때 도승 스님(전 해인사 주지)이 종교의식을 하며 법문하는 모습. ⓒ 윤성효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전후 진주형무소 재소자와 진주지역 국민보도연맹 사건' 관련 희생자의 유해를 발굴하기로 한 가운데, 10일 오후 진주명석면사무소에서는 개토제가 열렸고 이후 유족회는 명석면 용산리 등 매장지를 둘러보았다. 사진은 개토제에 참석한 유족회 회원들이 두 손을 모으며 기도하는 모습. ⓒ 윤성효
개토제, "국가 공권력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개토제는 10일 오후 1시 30분 명석면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개토제는 매장(추정)지에서 열려야 하지만 지리적 여건 등으로 이곳에서 연 것. 김동춘 진실화해위 상임위원과 강병현 진주유족회장, 박선주 충북대 교수(민간인 집단희생 유해발굴 조사단장), 이종흡 경남대 박물관장, 윤용근 경남도의원, 김경인 전 튀니지대사, 김승일 광주대 학장 등이 참석했다.
개토제에 앞서 종교의식이 거행되었다. 도승 스님(전 해인사 주지)는 개토제의 취지에 맞춰 법문을 한 뒤 일암 스님(불교인권위원회 경남지부장)과 함께 반야심경을 외웠다. 이어 노용석 진실화해위 유해발굴담당의 사회로 개토제가 열렸다.
초헌례는 김동춘 상임위원, 축관은 정연조 진주유족회 총무, 아헌례는 신창수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상임이사, 종헌례는 강병현 진주유족회장이 맡았다. 김동춘 상임위원이 엎드리고 있는 동안 축관은 '개토축'을 낭송했다.
"어두웠던 지난 시대에서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영문도 모른 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의로운 영령들이 이 땅에 묻힌 60년의 긴 세월, 그 기나긴 세월 동안 돌보는 이 하나 없는 이곳, 이름 모를 잡초더미 속에서 신음하게 되었다. 유족들은 그 긴 세월, 내 사랑하는 부모 형제 자매. 무엇 때문에 누구에 의하여 어디에서 죽임을 당했는지조차 모른 채 통한의 시대를 보내야만 했다. …"
김태호 경남지사는 "한국전쟁 전후 진주지역 희생자들에 대한 명복을 빈다, 유해발굴 사업이 큰 성과를 거두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사회자가 낭송했다.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전후 진주형무소 재소자와 진주지역 국민보도연맹 사건' 관련 희생자의 유해를 발굴하기로 한 가운데, 10일 오후 진주명석면사무소에서는 개토제가 열렸고 이후 유족회는 명석면 용산리 등 매장지를 둘러보았다. 사진은 박선주 민간인집단희생유해발굴조사단장이 경과보고를 하는 모습. ⓒ 윤성효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전후 진주형무소 재소자와 진주지역 국민보도연맹 사건' 관련 희생자의 유해를 발굴하기로 한 가운데, 10일 오후 진주명석면사무소에서는 개토제가 열렸고 이후 유족회는 명석면 용산리 등 매장지를 둘러보았다. 사진은 개토제 때 김동춘 상임위원이 인사말을 하는 모습. ⓒ 윤성효
"전국에 매장지 많은데, 유해발굴을 더이상 못한다니..."
개토제 때 인사말을 한 인사들은 전국 곳곳에 매장지는 많은데 유해발굴을 계속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박선주 단장은 "진실화해위는 2007년부터 전국 11곳에서 유해발굴을 했는데, 올해로 결정된 네 곳은 마지막 유해발굴이 될 것 같다"면서 "전국 수십곳의 매장지를 발굴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동춘 상임위원은 "전국적으로 150여 곳의 매장지가 남아 있음에도 극히 일부만 발굴하게 되었다"면서 "법적, 인적 한계와 사회적 무관심, 이데올로기 잣대로 진실화해위를 공격하는 속에 최선을 다했으나 유족들의 마음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늦었지만 진주 명석 일대에 끌려와 매장된 희생자들에 대해 발굴을 하게 되어 다행이다"면서 "앞으로 갈 길이 멀고 조사해야 할 내용이 많다"고 덧붙였다.
강병현 진주유족회장은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유족들은 불명예스럽게 보냈고, 이번 유해 발굴은 명예회복의 계기가 되어야 하고, 진실과 화해의 아름다운 마무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종흡 경남대 박물관장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짧은 시간에 희생되었다"면서 "그동안 유족들은 슬픈 나날을 보냈는데, 불행하고 치욕스러운 과거를 씻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전후 진주형무소 재소자와 진주지역 국민보도연맹 사건' 관련 희생자의 유해를 발굴하기로 한 가운데, 10일 오후 진주명석면사무소에서는 개토제가 열렸고 이후 유족회는 명석면 용산리 등 매장지를 둘러보았다. 사진은 개토제 때 강변현 진주유족회장이 인사말을 하는 모습. ⓒ 윤성효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전후 진주형무소 재소자와 진주지역 국민보도연맹 사건' 관련 희생자의 유해를 발굴하기로 한 가운데, 10일 오후 진주명석면사무소에서는 개토제가 열렸고 이후 유족회는 명석면 용산리 등 매장지를 둘러보았다. 사진은 개토제에 참석한 유족회 회원과 시민들의 모습. ⓒ 윤성효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추도사가 이어졌다. 정영석 진주시장의 추도사를 황양규 진주시 총무국장이 대신 읽었다. 정 시장은 "가슴 아픈 사건으로, 시민과 함께 애도하는 마음이다"면서 "국가 차원으로 진주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판정은 용서와 화해의 길을 열었다"고 밝혔다.
김영훈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 상임대표는 "유족들은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동안 후한이 두려워 입을 다물었고, 오랜 세월이 흘렀다"면서 "이명박정부는 진실화해위의 활동을 내년 4월에 모두 끝내려고 하는데, 과거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사업은 연장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동문 전국유족회 사무국장은 "60여 년만에 유해 발굴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개토제를 계기로 유족들의 한이 풀리기를 바라고,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인권 신장의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길 교수는 "진실화해위의 유해발굴은 법적 시한으로 올해로 끝날 것으로 보이지만, 앞으로 유해 발굴이 안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 같다"면서 "지방자치단체도 적극 나서야 하고, 무엇보다 아픈 과거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전후 진주형무소 재소자와 진주지역 국민보도연맹 사건' 관련 희생자의 유해를 발굴하기로 한 가운데, 10일 오후 진주명석면사무소에서는 개토제가 열렸고 이후 유족회는 명석면 용산리 등 매장지를 둘러보았다. 사진은 개토제 때 발굴 계획을 설명하고 있는 이상길 경남대 교수의 모습. ⓒ 윤성효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전후 진주형무소 재소자와 진주지역 국민보도연맹 사건' 관련 희생자의 유해를 발굴하기로 한 가운데, 10일 오후 진주명석면사무소에서는 개토제가 열렸고 이후 유족회는 명석면 용산리 등 매장지를 둘러보았다. ⓒ 윤성효
6월 말부터 본격적인 발굴작업 들어갈 듯
이어 이날 개토제 참가자들은 매장지를 둘러보았다. 명석면사무소에서 차량으로 5분 거리에 있는 명석면 용산리 야산으로 이동했다. 왕복 4차선 도로 옆에 차량을 세워 놓고, 100m 가량 떨어진 곳이다.
진주유족회에서 세워 놓은 안내판이 있었고, 야산에는 나무와 수풀이 우거져 있는데, 안내판이 세워진 주변에는 나무와 수풀을 베어낸 흔적이 보였다. 이상길 교수는 "지금 매장지 9곳은 증언 등을 통한 추정지에 불과하고, 각각 지역마다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더 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해 수습은 한 구씩 하게 되어 시간이 다소 걸린다"면서 "장비와 인부를 동원할 경우 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정확한 유해의 상태와 유품을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전후 진주형무소 재소자와 진주지역 국민보도연맹 사건' 관련 희생자의 유해를 발굴하기로 한 가운데, 10일 오후 진주명석면사무소에서는 개토제가 열렸고 이후 유족회는 명석면 용산리 등 매장지를 둘러보았다. 사진은 진주유족회 회원이 명석면 용산리 매장지에 꽃을 갖다 놓고 있는 모습. ⓒ 윤성효
김판규씨, 조카들과 매장지 나와 "생생하게 기억한다"
김판규(76. 진주 대평면)씨가 조카 2명과 먼저 와 있었다. 김씨는 10살 많았던 형을 당시 잃었던 것이다. 김씨의 형 김종규(지금 살아 있다면 86살)씨는 결혼해서 아이 둘을 두었고, 부인의 뱃속에도 아이가 있었다. 당시 뱃속에 있었던 아이는 지금 올해 환갑이 되었다.
당시 16살이었던 김판규씨는 형이 매장된 지역이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형은 다른 40여명과 함께 이곳에 묻혔던 것. 김씨는 부모와 함께 형을 찾아다니다가 이곳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 왔다가 시체를 옮기지 못하고 말았다.
"우리가 왔을 때는 죽은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였다. 트럭 한 대에 싣고 와 묻었다고 하더라. 40명 정도는 될 거야. 처음 왔을 때 구덩이를 파놓았고, 그 안에 사람을 포개서 눕혀 놓았더라구. 형을 다른 곳으로 옮겨 묻으려고 했지만 옮길 수가 없었지. 미끄럽고 해서 그냥 두었지. 그렇게 지낸 세월이 60년이야."
김종규씨의 부인은 지난해 세상을 떴다. 그의 두 아들은 올해 66살과 62살이고, 막내가 딸인데 올해 60살이란다.
김종규씨는 "형은 초등학교를 나오고 해서 똑똑했지, 당시 지역에서는 말 깨나 하는 사람들은 다 잡혀가다시피 한 것이지"라며 "좌익계열은 아니었는데, 북한이 들어오고 나서 땅과 돈을 준다고 하니 보도연맹원 가입에 도장을 찍어주었던 것이지"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이날 매장지를 둘러본 뒤 하루 빨리 유해를 편안하게 수습하고, 진실이 규명되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전후 진주형무소 재소자와 진주지역 국민보도연맹 사건' 관련 희생자의 유해를 발굴하기로 한 가운데, 10일 오후 진주명석면사무소에서는 개토제가 열렸고 이후 유족회는 명석면 용산리 등 매장지를 둘러보았다. 사진은 진주유족회 회원 김판규(76)씨가 명석면 용산리 매장지를 조카와 함께 둘러보고 있는 모습. ⓒ 윤성효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전후 진주형무소 재소자와 진주지역 국민보도연맹 사건' 관련 희생자의 유해를 발굴하기로 한 가운데, 10일 오후 진주명석면사무소에서는 개토제가 열렸고 이후 유족회는 명석면 용산리 등 매장지를 둘러보았다. 사진은 명석면 용산리 매장지에서 이상길 경남대 교수(왼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진주유족회 김판규씨의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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